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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Feb 25. 2023

그녀는 왜 스스로
거미줄 안에 걸어 들어갔나?

영화 <성스러운 거미> 리뷰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옛 속담처럼, 자신을 ‘거미’라 지칭하는 살인범을 잡기 위해 한 여성이 그가 쳐 놓은 거미줄 안으로 들어간다. 경찰을 부르면 되지 위험하게 혼자 걸어 들어갔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녀가 살고 있는 나라는 ‘이란’이라고. 



| 경계선에 선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이란

영화 <성스러운 거미> 포스터


이란의 종교 도시 ‘마슈하드’에서 연쇄 살인이 발생한다. 타깃은 성매매 여성. 자칭 ‘거미 살인마’라 불리는 범인은 자신의 범행과 시체를 버린 장소를 언론사 기자에게 알려주는 등 대담함이 극에 달한다. 이 잔혹한 범행을 취재하기 위해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마슈하드로 떠난다. 취재 첫날, 경찰은 소극적인 수사를 반복하고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찾듯 그녀는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성스러운 거미>는 <경계선>(2018)을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알리 아바시 감독의 신작이다. 오드 판타지인 경계선>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성스러운 거미>가 데칼코마니처럼 맞닿아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것 하나만은 닮았다. 바로 경계선에 놓인 여성(타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영화 <경계선>의 주인공 티나(에바 멜란데르)


<경계선>의 주인공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다른 종족으로서 인간들의 무리에서 살아간다.(영화 초반까지 그녀는 자신이 인간이라 생각한다) 후각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녀는 인간들이 숨기고 싶은 허물이나 본 모습을 감각적으로 안다. 공항 세관 직원으로 성범죄자들을 잡아내는 그녀의 능력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영화는 그녀의 눈을 통해 당시(지금도 심각한 문제) 극악 무조한 성범죄 문제, 그리고 이민자 갈등 등을 건조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는 알리 아바시 감독의 성장 과정이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이란 출생으로 덴마크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스웨덴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컸다고 한다.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유럽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그로서 언제나 경계선에 선 느낌이었다고. 어쩌면 경계선>은 그동안 고민해왔던 자신의 이야기와 주류에 섞이지 못하며 언제나 타자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본 그의 시선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란인이지만 비주류로서 타자회된 시선으로 일관하는 라히미


<성스러운 거미>에서도 여주인공 라히미를 통해 이 특징은 이어진다. 라히미는 티나처럼 다른 종족이나 다른 나라 사람은 아니다. 이란 출신의 여성으로 직업은 기자다. 특별한 게 하나 있다면 종교 규율에 따른 여성 억압에 반항적이다. 이를 종교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는 이란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 이내 쌓이는 건 열패감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흡수되지 못하는 공포감이다. 이런 특성상 극 중 남편, 사회, 종교에 순응하는 여성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감독은 라히미를 통해 또 한 번 타자의 눈, 객관화된 시선으로 이란 사회를 들여다보고, 또 한 번 관객을 이끈다. 



살해 장면을 디테일하게 담은 이유는?

살인범은 밤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범행을 시작한다


<성스러운 거미>는 지난 2000년 8월부터 약 1년간 마슈하드에서 벌어진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다. 연쇄살인범은 사이드 하네이로 총 16명의 성 노동자 여성을 살해한 인물이다. 그가 이들을 죽인 이유는 사회 정화를 위해서다. 신의 이름으로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 생각하는 성 노동자 여성들을 처단한 것. 영화에서도 살인범은 똑같은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살인의 정당성을 말하며 자신은 할 일을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그 당당함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더 충격적인 건 한 가족의 가장이자, 나라를 위해 싸웠던 전직 군인, 그리고 살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행했다는 것이다.  


살해 방법은 단순하다. 오토바이로 성 노동자를 태워 가족이 없는 자기 집으로 유인하고 목 졸라 죽인다. 때로는 손이 아닌 히잡을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영화 시작과 동시에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살인범이 어떻게 여성을 유인하고 죽이는 과정을 보는 이로 하여금 즉시 하게 만든다. 마치 감독은 이 사건을 더 이상 피하지 말고, 이 믿기지 않는 사건이 이란에서 벌어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살인범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라히미. 그녀의 표정에 주목하시길.


이 장면은 리얼함을 전하는 동시에 라히미가 미끼가 되어 살인범의 집에 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게 만든다. 열정적인 기자이지만 남자보다 힘이 약한 여성인 그녀가 과연 살인범을 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죽임을 당할지 호기심과 긴장감은 극대화된다. 백미는 집에서 벌어지는 육탄전이 아닌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의무감과 공포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일관하는 라히미의 얼굴이다. 클로즈업으로 잡은 그녀의 표정이 짙은 인상을 남기는 건 그 뒷좌석에 타고 이후 죽임을 당한 성 노동자들의 얼굴이 겹쳐기 때문. 더불어 살인범 아들의 얼굴도 보인다.  


영화 초반, 살인범은 오토바이에 아들을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점점 속도를 내는 동안 아들은 무서워하지만 이내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이동 수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비운의 이동 수단이라는 점에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끼고, 더 나아가 신의 가르침이 누군가에게는 올바른 삶을 인도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잘못된 삶을 인도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 그녀는 왜 거미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나?

극중 재판은 무늬만 재판으로 진행된다.


처음부터 라히미가 직접 살인범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했지만, 만나는 이들 모두 비협조적이었다.(조력자인 지역 기자만 빼고) 심지어 경찰도 손을 놓은 상황. 시간은 흐르고 사망자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녀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며 스스로 범인이 쳐 놓은 거미줄에 직접 들어간다. 


그녀의 용기가 연쇄살인의 마침표를 찍게 했다는 점에서 위대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를 영웅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여성이 범인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보여주며 이란 사회의 무능함을 비판할 뿐이다.


잘못된 신념이 그 아들에게 전이되는 순간, 가장 큰 공포를 경험한다.


살인범이 잡히고 난 후 법정 과정이 그려지는 후반부에는 그 비판 강도가 더 세다. 신의 이름으로 범행을 저지른 그는 벌을 달게 받아야 함에도 오히려 종교 보수 인사들에게 영웅으로 추대되었고, 무죄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오면서 긍정적 여론까지 퍼진다. 어렵사리 범인은 잡았지만 무죄를 받을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놓인다. 라히미의 눈을 통해 비친 이 현실은 곧 잘못된 신념이 낳은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을 용인하는 폐쇄적인 이란 사회의 민낯이다. 어쩌면 살인범의 범행 행각보다 그를 잡기 위해 거미줄에 들어간 라히미의 두려움보다 신도 버린 듯한 이란 사회를 들여다보는 게 더 두렵다. 그리고 마지막 살인범의 잘못된 신념이 아들에게 전이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로 공포 그 자체. 이럴려고 라히미는 거미줄에 들어간 것인가!  



라히미 역을 맡은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를 통해 2022년 제75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란 배우로는 최초 수상이라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환대는 없었다. 되려 배우와 감독에게 강도 높은 비난과 협박만 있었을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란의 현주소를 가늠케 한다. 공교롭게도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유명을 달리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이후 이란 여성들이 주축 되어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가 같은 해에 벌어졌다. 영화 속 현실보다 영화 밖 현실이 더 참혹해보이는 가운데, 를 본 1인으로서 지금도 이란에서 목숨을 걸고 거미줄에 스스로 들어가는 제 2, 3의 라히미들을 응원한다. 




별점: ★★★★(4.0)

한줄평: 잘못된 신념은 사회를 붕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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