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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또비됴 Dec 17. 2023

믿음과 사랑, 그리고 연대만이 살길!

영화 <나의 올드 오크> 리뷰 

난민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5년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온  난민이 유럽에 몰려왔고, EU는 이들을 수용했다. 인도적 수용이긴 하지만 모두가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수용하는 난민의 수가 많아질수록 반이민 정서는 높아져 갔다. 경제 성장 둔화와 일자리 문제 등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이뤄진 수용이라는 점에서 내국인들의 분노가 커진 것. <나의 올드 오크>는 난민과 내국인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2016년 영국 북동부 마을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리고 연출을 맡은 켄 로치 감독은 전작과는 좀 다르게, 하지만 현시점에서 꼭 필요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연대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영국 북동쪽 더럼에 위치한 폐광촌. 이곳에 낯선 차가 들어온다. 내리는 이들은 히잡을 쓴 시리아 난민 가족이다. 주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모이고, 급기야 화가 난 한 주민은 이들을 보며 비아냥거린다. 난민 가족 장녀인 야라(에블라 마리)는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이를 본 주민은 카메라를 내동댕이친다. 마을의 유일한 술집인 ‘올드 오크’ 주인 TJ(데이트 터너)는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고, 중재에 나선다. 이후 올드 오크를 방문한 야라는 TJ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TJ는 미안함을 담아 카메라를 고쳐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국경을 초월한 우정과 연대를 시작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는 켄 로치 감독의 은퇴작이자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에 이어 발표한 영국 북동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감독의 시선은 노동자 계급으로 향해 있는데, 영국 북동부는 과거 철강, 석탄 산업이 번성했다가 쇠퇴 후 급격히 사회 경제 시스템이 무너진 곳이다. 켄 로치는 2014년 <지미스 호>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이곳읠 실상을 목격하고 2016년 번복했다. 그리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발표, 그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나의 올드 오크>는 전작처럼 영국 북동부 지역의 문제와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사뭇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희망’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도 사회 시스템의 변방에 위치한 이들의 연대와 작은 행복을 그리지만, 결국 비극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3부작의 갈무리 영화답게 희망을 그린다. 물론, 이 밝은 빛을 만나기 위해선 감독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인물들은 지난한 과정을 겪는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난민 가족이 들어온 후, 먹고 살기 힘들어진 상황에 놓인 주민들의 화살은 정작 정부가 아닌 이 가족들로 향한다. 약한자가 더 약한자를 공격하는 행태에 1980년대 이곳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을 승리로 이끈 것을 보고, 마을 부흥을 위해 노력했던 TJ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간판의 마지막 철자인 K가 삐뚤어져 이를 나무 막대기로 고정시키지만 이내 원상 복귀되는 것처럼, 절망이란 삶의 늪에 빠져 모든 걸 다 내팽겨치고 술만 마시는 어른들에겐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이런 주민들은 혐오자가 아닌 또 한 명의 피해자인 셈이다.  


TJ도 이들과 결은 다르지만 피해자인 건 마찬가지다. 과거 마을을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가족의 죽음과 경제적 힘듦이 겹치면서 그는 한발 물러선다. 돈이 없어 간판도 못 고치고, 건물 보험도 해지한 상황이니 그 또한 절벽 끝에 놓인 상황. 이때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 노인 난민 가족은 과거 자신이 열정을 담아 일을 했던, 그리고 1980년 자기 부모 세대가 이룬 파업 성공의 열정을 다시 샘솟게 한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그 시작은 술집 뒤편에 마련된 공간이 열리면서 시작된다. 이곳은 1980년대 파업 운동 때부터 마을 커뮤니티 공간. TJ의 안내에 따라 공개된 이곳에는 과거 공동체 생활을 했던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 있고,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라는 문구도 보인다. 이 공간을 확인한 야라는 TJ와 난민에게 우호적인 이들과 함께 온 마을 사람들이 무료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든다. 저마다 생활의 궁핍함을 겪는 이들 모두와 함께 밥을 먹으며 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이 공간을 열면서 마을엔 생기가 돈다. 학교 내 싸움을 벌였던 주민, 난민 아이들도 함께 밥을 먹고,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던 마을 어른들도 마음의 문을 연다. 켄 로치 감독은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단순하지만 힘 있는 문구와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일수록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극 중 올드 오크 나무가 새겨진 피켓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의 올드 오크>가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영화적 완성도와 감흥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이전 작품에서 느껴졌던 비극, 즉, 국경과 민족을 넘어 작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한 삶의 슬픔이 이 영화에서는 오롯이 다가오지 않았다. 비극 보단 희망과 연대라는 주제를 담고자 하는 그 의도가 되려 현실과의 거리감을 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스틸 /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그럼에도 켄 로치의 은퇴작이자 영국 북동부 3부작의 마지막 영화, 그리고 영국을 넘어 현 유럽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잘 담아낸 작품으로서의 의의와 의미는 강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86세 고령의 노 감독이 힘든 세상에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뭉치면 사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담이 어느때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평점: 3.5 /5.0

한줄평: 먹어야 산다! 연대해야 산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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