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의 일은 정말 헬이다. 쿠팡 물류센터가 헬이라고 불리듯, 4050대의 '알바천국'이라 불리는 다이소 역시 그 명성(?)에 걸맞은 헬인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세 번씩 찾아오는 '물류 대재앙'의 날이면, 쿠팡 물류센터 못지않게 물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고 지고 나르고, 모든 건 4050대 아주머니들의 몫이다. 박스를 일일이 뜯고 옮기다 보면 무릎은 비명을 지르고 손목은 항의한다.
그런 와중에도 20대 알바생들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포스기 앞에서 온갖 사람들을 상대하며 계산을 하려면 머리회전도 빨라야 하고 손도 재빨라야 한다. 그래서 20대 알바생 한 명 한 명이 참으로 귀한 보석 같다. 그들의 번개 같은 두뇌회전과 스펀지 같은 기억력은 우리 4050대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다. '역시 청춘이 답인가' 하는 씁쓸한 깨달음이 밀려온다.
그 많은 알바생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청년이 있다. 첫 알바라고 했는데, 입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달고 산다. 뭘 해줘도 "감사합니다", 심지어 한 번에 두 번씩 말한다. 때로는 너무 기계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 마음가짐만큼은 금메달감이다. 내가 2층에서 열심히 물건을 정리하고 무거운 박스를 들고 내려오면, 오직 그 청년만이 내 박스를 밖으로 옮겨준다. 다른 청년들은 포스기 앞에서 마치 그곳이 자신만의 영토인 양 의기양양하게 서 있을 때 말이다.
다른 청년들이야 포스기 업무가 본업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가끔 현타가 밀려올 때가 있다.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박스를 나르는 내 모습을 보며 자격지심이 스물스물 기어오른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찌질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5시간 내내 온갖 박스와 씨름하며 물건을 정리하고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에어컨 바람이 더 강한 1층이 그야말로 천국처럼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에어컨이 쌩쌩 나오는 사무실에서 정장 치마와 재킷을 입고 커리어 우먼의 포스를 뿜어내며 일하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그때는 '그런 일을 하면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을까' 하는 호사스러운 고민부터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에어컨이 나와도 내 몸의 열기와 땀의 온도가 더 높아서, 결국 땀범벅이 된 빨간 다이소 유니폼을 입은 나다. 우아함과는 광년 거리에 있는, 생생한 삶의 현장 말이다.
그 청년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재고조사를 할 때의 글씨체였다. 글씨가 참 바르고 정직한 느낌이었다. 반면 다른 청년의 글씨는 태풍에 날아가는 수준이었는데, 알고 보니 손톱 뜯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글씨와 마음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글씨를 하나의 인간 품평 척도로 삼게 되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 쓰는 마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글씨가 점점 더 단정해지고 있다.
3개월간 성실히 일한 그 청년이 마지막 날, 다이소 유니폼을 사무실에 반납하러 왔다. 다행히 나는 그때 쉬는 시간이었다. 작별인사를 나누며 그에게 말했다. "항상 내가 박스 들고 내려올 때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늘 '감사합니다' 말을 달고 살아서 나도 많이 배웠어. 군대에서도 잘할 거야."
그때 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아들의 엄마는 어떻게 교육을 시켰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