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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Jan 26. 2023

밥 잘 챙겨 먹어, 아픈 나를 위한 밥상

밤에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집 밖을 나왔다가 찬 공기에 깜짝 놀랐다. 낮 공기를 생각하고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치고 나왔더니 꽤 추웠다. 최대한 추위를 피하려고 점퍼를 단단히 여미었다. 나까지 감기에 걸릴 순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주변에 반갑지 않은 손님, 감기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콧물을 훌쩍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우리 아이들과 같은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꼬박 한 시간을 대기하고 나서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열흘간 감기를 앓았다. 그동안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반찬들을 만들어주고, 약도 잘 챙겨 먹였다. 특히 둘째는 기침이 심해서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이 좀 나을 무렵, 이번엔 내가 기침이 나오고 코가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어른이니 금방 낫겠지, 생각하고 종합감기약을 먹으며 사흘을 버텼다. 하지만 나흘째가 되어도 감기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집 근처 병원 문을 두드렸다.


“감기 증상이 심하시네요. 밥 잘 챙겨 드시고요, 약은 식후에 드시면 됩니다.”


코로나 재감염일까 우려했으나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라고 했다. 의사는 증상이 심해진 지 꽤 된 것으로 보이는데 괜찮냐고 물으셨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이상하게 아이들이 아프기 시작하면 바로 병원에 가면서, 엄마인 내가 아프면 병원 가는 것에 인색해지는지 모르겠다.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받은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눕고 싶고, 자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엉망인 집 상태를 뒤로하고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렇게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약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빈속이었다. 약을 먹으려면 뭐라고 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플 땐 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일이다. 뭘 시켜 먹어야 하나? 혼자 먹을 건데 배달료가 좀 아깝네. 그냥 집에 있는 거로 대충 만들어 먹을까? 그렇다면 뭘 먹지? 죽? 죽은 먹기 싫은데. 그럼 라면? 아픈데 라면은 좀 그렇지 않나.

 

몸은 좀체 이불 안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고민만 계속됐다. 아프니까 입맛도 없는데, 그냥 먹지 말까. 그러다 문득, 냉동실에 얼려둔 고깃국이 생각났다. 국에 밥 한술 말아먹는 거면 속도 편하고, 밥 차리기도 편할 것 같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가스레인지 불 앞에 서서 국을 끓였다. 지난 추석에 엄마네 집에 갔다가 받아온 소고기 뭇국이었다. 아이들이 워낙 좋아해서 이미 다 먹은 줄 알았는데, 엊저녁에 냉동실에서 한 덩이 남아있는 걸 발견했더랬다. 솔솔 풍겨오는 국 향기가 좋았다.


밥과 국, 김치로 구성된 단출한 점심 메뉴가 완성되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국을 호호 불어 한 숟갈 떠 넣었다. 속이 뜨끈해졌다. 분명 입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밥은 생각보다 잘 넘어갔다.


밥을 먹다가 문득 주말에 친구와 한 약속이 생각났다. 감기에 걸려서 아무래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곧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많이 아파?’

‘응. 생각보다 감기가 심하네. 오늘 아침엔 꼼짝을 못 하겠더라고.’


워낙 친하고 편한 친구라 괜찮다는 말 대신에 나 정말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아쉽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였기에 나 또한 손꼽아 기다리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미안해할 필요 없다며, 우리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쓰는 사이였냐고 했다.


나는 그새 야금야금 밥 한 그릇을 다 비워가고 있었다. 밥을 먹으니 좀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이게 어릴 적 엄마가 그토록 강조하던 밥심이라는 건가. 밥을 먹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래도 일어나 밥 챙겨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 건강은 내가 챙겨야지.


조금 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확인해 보니 죽 교환 쿠폰이다. 아까 그 친구가 보내온 것이었다. ‘아플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 너 잘 먹고 안 아픈 게 제일 중요한 거야. 알았지?’


갑자기 멀리 있는 친구가 가까이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오늘 밥상도 엄마가 끓여준 국이 팔 할이었다. 엄마도 분명 내가 아픈 걸 알면 내 친구와 같이 말해주셨으리라. 네 건강이 최고라고. 나 말고도 내 몸을, 내 끼니를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고 축축 처지는 느낌은 계속됐다. 그렇지만 나는 부지런히 밥을 챙겨 먹었고, 약도 빼먹지 않았으며, 아이들과 내 일정이 없는 시간이면 틈틈이 눈을 붙였다. 며칠 뒤,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많이 호전되었다고 반가워하셨다.


사실 아픈 날 홀로 챙겨 먹는 밥상은 좀 버겁다. 차리기도, 먹기도, 치우기도 힘들다. 하지만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휴식만큼이나 영양소도 중요하니까. 좀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친구가 나에게 전해준 마음처럼, 나도 무거운 몸을 붙들고 밥상 앞에 겨우 앉은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플 때일수록 잘 챙겨 드세요. 잘 먹고 안 아픈 게 제일 중요한 겁니다. 빨리 회복하세요.’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분야 기사로도 발행되었습니다.

https://omn.kr/21h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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