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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통흑인 Oct 04. 2023

내 친구, 죽마고우를 소개합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즐거워했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했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도 함께 있기에 든든했다.


영원할 것 같은 우리 관계는 입시라니 지옥문을 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입시라는 경쟁 속에 뛰어들면서 친구들도 모두 경쟁자라 느꼈고 그 속에서 친구들을 스스로 밀쳐냈다.


'친구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할 텐데...'

'내가 더 공부를 많이 하는 거 같은데 왜 친구들보다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힌 채, 친구들에 대한 열등감은 점점 커져가고 친구들을 경쟁자라 칭하며 나만의 동굴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나만의 동굴 속에서 조심스레 나올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친구들과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친구들은 인문계열, 이공계열, 나는 체육계열 진학을 희망했기 때문에 서로 경쟁자도 아니었거니와 서로 잘하는 영역(과목)이 달랐기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시험 기간 친구들은 나와 같이 공부하며 자신들이 필기한 내용들을 내게 서슴없이 보여 주기도 했다.


입시라는 경쟁 속 불필요한 열등감 때문에 친구들과 20대 시절 함께 보내지 못했다. 같이 여행을 다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끈끈한 우정을 쌓아가는 지금의 젊은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면 어김없이 지난날 나의 행동이 생각나고 후회만이 남는다.


철없던 시절 잘못된 나의 행동 하나로 난 친구들과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을, 기회를 모두 날려 버렸다.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 한없이 뛰놀고 미친 듯이 공부하는 시간 속에서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다.


지금은 친구들이 모두 타지로 흩어져 있어 일 년에 한 번 다 같이 얼굴을 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자주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다들 개인사가 있어 녹록지 않다. 만나는 횟수가 뭐가 중요한가 싶지만 지난 후회가 아직은 커서 그런지 자주 만나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긴다.


난 친구들을 소개할 때 '죽마고우'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죽마고우라는 단어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 켠이 아린다. 마음이 찔린 듯한 느낌이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고등학생 때 언어를 쓰고, 평소 하지 않던 장난을 치고, 행동이 더 유치해지고 격해지는 건...

어쩜 친구들을 만날 때만큼은 내가 여전히 고등학생 때 시절 속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린 죽마고우가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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