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오로라를 찾아 나선 첫날밤 이야기
킬로파에서의 첫날 저녁.
저녁식사를 먹고 9시쯤 미러리스를 꺼내 들었다. 옷을 잔뜩 껴입고 삼각대를 챙겨서 숙소 건물 앞 주차장으로 갔다. 일단 하늘에 오로라는커녕 별도 잘 안 보인다. 사방이 어둠이다. 혼자 춥고 어두운데서 찍으려니 살짝 무섭기도 하다. 날이 안 좋아서 주변에 나 밖에 없다. 구름 낀 하늘.
어제랑 오늘 오전까지 비가 내렸어서 하늘이 맑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나 보다. 별도 안 찍히니 사진 찍을 맛도 안 난다. 어차피 엎어지면 코 다을 곳이 숙소니 들어가서 좀 쉬다가 이따가 다시 나와야겠다.
방으로 돌아와서 내일 뭐하고 놀지 고민도 하고 미러리스 충전도 하고 별 찍는 법 좀 찾아보다가 밤 10시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역시 나무밖에 안 나온다. 노출을 오래 해서 찍다 보니 어두운 주차장의 생김새가 사진을 통해 나온다. '아 이렇게 생겼구나.' 어두울 때 체크인해서 몰랐던 숙소의 대략적인 생김새가 눈에 그려졌다.
다시 방에 들어와서 쉬면서 오로라 공부 좀 했다.
오로라는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북반구의 유럽인들은 노던 라이트(nothern light)라고 부르기도 한다. 위도 60~80도의 지역에서 관측이 가능하다. 북반구는 물론 남반구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오로라 현상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면, 태양에서 나온 플라즈마가 지구의 자기장에 끌려 극지방에 있는 반알렌대에서 충돌하여 빛을 방출하는 현상으로 황록색, 붉은색, 황색, 오렌지색, 푸른색 등이 있다고 한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에서는 오로라가 보이는 이유는 지구의 자기장이 지구를 잘 보호하고 잘 작동하고 있다는 표시라고도 했다.
오로라는 라플란드 지역만 놓고 보면 8월부터 5월까지 보인다고 한다. 다만 하늘이 얼마나 맑으냐에 따라 관측이 되고 안되고가 갈린다. 하늘에 별이 육안으로 선명히 보여야 오로라도 육안으로 보인다.
밤 11시쯤 또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까처럼 주차장에서 나무들을 찍는데 별이 처음으로 찍혔다.
처음에는 미러리스 카메라에만 별이 보이더니 점점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별만 찍어도 신났다.
주차장에서 나무들 쪽은 어두운 하늘이지만 반대쪽 숙소 쪽은 불빛들이 있어서 조금 밝았다. 그래서 어두운 곳을 찾아 올라갔다. 나중에 밝을 때 보니 국립공원 안쪽에 있는 크로스컨트리 코스였다.
주차장보다 어두운 곳을 찾아가서 동서남북 돌면서 사진을 찍는데 처음에는 붉은 하늘에 별이 보이더니 어느 순간부터 연둣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저게 오로라인가? 싶었는데 생전 본 적이 없어서 아리송했다. 옆에 아무도 없으니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런데 하늘에서 붉은빛이 조금씩 연둣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붉은빛 뒤에는 별이 안 보이는데 연둣빛 뒤에는 별이 보였다.
'아 이게 오로라 맞구나'
신이 나서 사진을 계속 찍었다. 이쪽저쪽 온 하늘을 다 찍었다.
육안으로 볼 때는 희미한 구름인지 오로라인지 구분 안되던 하늘이...
점차 확신이 들 정도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간 북쪽을 중심으로만 있던 오로라가 이제 온 하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aurora dancing이었다.
정말 경이로웠다.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오로라를 실제로 보고 있는 것도 안 믿기는데 오로라가 춤을 추고 있었다.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웠다.
산속에 나 혼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로라가 춤을 추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에서 비명들이 터졌다. 오로라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말이 안 나온다. 비명과 환호성. 이것이 오로라를 본 사람들의 오로라를 대하는 본능이다. 오로라 앞에서는 영어도 중국어도 필요 없다.
한참을 찍고 구경하다가 숙소로 들어와서 찍은 사진들을 봤다.
내가 찍었지만 말도 안 된다. 거짓말 같았다.
이걸 내가 봤어? 이걸 내가 찍었어?
와...
농담으로 오로라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보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날씨 운이 없는 사람은 일주일을 기다려도 못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내가 사리셀카에서 킬로파로 왔던 오늘 날씨가 최악이었다. 아침까지 비가 내렸다. 툭하면 영하 30도라던 킬로파가 영하 5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인 오늘은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5박 6일 동안에 딱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첫날부터 봐버렸다. 앞으로 남은 날동안 사실 안 봐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경 앞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이곳까지 왔던 여정이 다 사라졌다. 나는 그저 오로라라는 대자연 앞에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오로라를 본 사람과 본 적이 없는 사람.
나는... 오로라를 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