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사회평론, 2005)
먼 옛날부터 건축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온기와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순수 실용적인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목적으로써 어떤 이념을 돌로 웅대하게 표현해서 인류에게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를 통해 충족되었다. 그러나 신전이나 왕국은 하늘의 신들과 그들이 지상에서 총애하는 자들에게 경외감을 일으킬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개별 군주가 아닌 공도체가 미화된 경우도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나 로마의 캐피틀라인 힐은 종속국들과 연합국들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당당한 제국주의 도시국가의 위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공공 건물 지을 때는 미적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고 후기로 오면서 부호들과 황제들의 성에도 이와 같은 기준이 적용되었다.
중세에는 사회구조가 크게 복잡해졌음에도 건축에서의 예술적 동기는 과거와 비슷한 정도로, 아니 훨씬 더 제한되었다. 그 이유는 귀족들의 성이 군사력 강화를 목적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시 아름다운 성이 있다 해도 그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중세 시대에 최고의 건축을 세운 것은 봉건주의가 아니라 교회와 상업이었다. 성당들은 신과 주교들의 영화를 과시했다. 영국과 북해 연안 저지대를 오가던 모직 무역상들은 영국의 왕들과 부르군디의 공작들을 돈으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휘황찬란한 천을 두른 연회장들과 플랑드르 시영 건물을 지어 오만함을 과시했고 수많은 영국의 도시에도 장대한 건물을 지었다.(5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