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소재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시도하기’

<유도라 웰티의 소설 작법>(엑스북스, 2018)

by readNwritwo

소설가의 이야기는 탄탄한 구조를 갖고 있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구조가 논리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소설의 등장인물이 내면에서 창조되어 각자 고유한 삶이 주어진 존재이듯, 플롯 역시 생생한 원칙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고유한 모양을 형성해 나간다. 소설의 플롯을 만드는 것은 의견을 주장하는 것보다 천배는 더 복잡하며, 주장에는 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플롯에는 정답이 없다.

물론 플롯은 일정한 패턴이 아니다. 플롯은 내면의 감정이 겉으로 연출된 결과다. 플롯은 비록 제멋대로일지언정 인위적이지 않다. 매우 비현실적인 플롯이라면 이를 환상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플롯과 플롯의 소재에는 언제나 유기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비현실적인 플롯은 결국 환상이 현실화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소설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소설가는 증거가 아닌 본질을 추구한다——―을 얻기 위해 주변 세상을 다양하게 다뤄본다. 실제로 소설가는 자신의 소재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한다. 어떤 모양을 만들어 보고, 끊어질 때까지 잡아당겨 보고, 두 배로 늘려 보고, 거꾸로 사용하기도 한다.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에서 알 수 있듯, 어떤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소설가는 그 무엇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도 소재를 조작하지는 않는다. 소설가는 소재를 그 자체로 무한히 존중한다. 이는 소설가가 소재에서 통찰력을 얻고, 그 통찰력을 통해 어떤 소설을 쓸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소설가들은 비록 완벽한 소설을 쓰지는 못하지만 대신 매번 소설을 통해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목적이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여러 편의 소설을 쓸 필요가 없다. 무엇하러 한 가지 사실을 여러 번 증명한단 말인가?

올바른 신념을 지닌 소설가들은 서로 비슷비슷한 소설을, 아니 전부 똑같은 소설을 써내고 말 것이다. 그러면 기존 작가들은 작가 활동을 이어 나갈 이유가, 신진 작가들은 작가 활동을 시작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왜 철의 장막 뒤에서 소설을 쓰지 않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추측건대 그 사회에서 용인되려면 모든 소설이 하나에 순응하고 획일화되어 결국 소설이 그 가치를 잃어버려서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비전이 누군가의 지시대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작가와 독자는 일상의 씨실과 날실이 우리 개성대로 지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남들과 똑같이 삶을 이해하고, 그것에 그럭저럭 만족할 것이다. 위대한 소설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그를 그리워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삶이 소설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는 그 삶이 살아 볼 가치가 없음을 보여 주는 첫 번째 징조라고 생각한다.(p.14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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