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

by readNwritwo

소설의 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주식을 거부하고 간식만으로 버티는 다이어트 흡사한 글쓰기는 결국 영양실조와 아사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소설이 한 시대의 공론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먹고 실재를 토해낼 수밖에 없다.

이 기율의 실효성은 특히 성공적인 장편소설의 경우 거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예외가 없다. 우리가 검토한 세 편의 문제적 소설이 그것을 실증한다. 그 성과야 평자에 따라 천차만별로 평가되겠지만, 여하튼 <빛의 제국>이 한반도 분단체제의 현실을, <라나>가 한반도 주변 동아시아의 현실을, <핑퐁>이 전지구적·전인류적 현실을 무대화하여 오늘날 우리 삶을 근저에서 좌우하는 실재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환기하려 애썼다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혹은 이 세 작가는 적어도 오늘날 작가들이 반드시 대면해야 할 21세기의 스핑크스 앞으로 기꺼이 나아갔고 갱신된 수수께끼를 힘껏 풀었다고 인정해도 좋아 보인다.

스핑크스가 묻는다. 아침에는 전근대이고 오후에는 근대이며 저녁에는 탈근대인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한국이다. 본질적으로 근대적 국민국가 만들기에 실패한 분단체제 하의 땅이다. 현상적으로 근대적 일상의 난마 속에서 허덕인다. 편집증으로 탈근대의 정신적 우주를 유영한다. 이렇게 세 겹의 시간대가 착종되어 있는 곳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괴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두 아픈데, 왜 아무도 병들지 않았는가.(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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