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1>(알마, 2014)
중세시대 그러니까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한 이후에도 문자 해독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자기 책을 권력자에게 헌정하곤 했습니다.
예컨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도 당시의 실력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 것입니다.
문학작품들도 주로 정치 권력자나 돈이 무지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헌정합니다. 그 책이 팔리진 않아요. 우선 읽을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인세가 발생할 소지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파트롱, 즉 후원자가 그 책을 헌정받고서 저자를 먹여 살려주는 겁니다. 인세로 먹고사는 게 아니라 책을 써서 누구한테 헌정을 하면 그 사람이 ‘오! 이걸 나한테 헌정했구나!’ 해서 저자에게 경제적으로 보답하는 거지요.
사회학 중에서 문학사회학이란 분야가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문학에 관련된 사회학입니다. 문학사회학자들이 저런 이야기를 흔히 합니다. 시민 혁명과 함께 귀족계급이 사라지고 문자 해독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책의 저자가 자기 후원자에게 종속되는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 종속된다. 그전에는 후원자에게 절대적으로 기댔는데 이제 후원자로부터 완전히 자율성을 획득했다.
이제는 파트롱이 없다. 이런 얘기죠.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전해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신문들, 그러니까 언론 매체들이 옛날의 귀족을 대신해 새로운 파트롱이 된 겁니다. 그 파트롱이 독자들을 만들어내니까요. 지금은 네이버 초기화면에 뜨는 게 <조선일보>에 열 번 뜨는 것보다 판촉에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이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