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고민’
글쓰기를 배우고 영화와 책을 보고 읽기 전까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은 ‘농구’였다. 학창시절, 가장 몰입할 수 있는 단 하나. 운동해서 프로 선수가 될 길 원했다. 철없는 어린 시절 업으로 삼고 싶은 일이라고 믿었다. 중학교 2학년 소년에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높았다. 아버지가 축구를 했다는 이유와 가정 형편 탓에 재능이 있음에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아직도 후회가 된다. “좀 더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기에 나는 생각하기를 잊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부를 왜 해야 하며 대학은 꼭 가야하는지 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호기심에 이끌리는 과정조차 잃어버렸다. 나의 학창 시절은 닫힌 문 같았다. 운동을 못 했다는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괴롭혔다. 후회로 가득 찬 과거와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장 힘들어 한 20대 초반, 일기장에서 처음으로 비관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낙관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텅빈 도서관에서 그 문장을 읽었을 때 어떤 게 옳은 선택인지 몰랐다. 비난과 냉소의 태도에서 벗어나고 변하고 싶었다. 내가 어려워하는 일부터 도전했다. 바로 '사람대하기'(사람과 사람이 눈을 보고 마주 하는 대화)였다. 그런 이를 많이 만날 수 있는 명동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일을 했다. 옷을 팔고 고객을 응대하는 매장 세일즈였다. 1년 정도 돈을 모은 끝에 호주워킹홀리데이를 갈 수 있었다. 설렘으로 떠난 여행은 기대 이하였다.
현실의 벽. 항상 내 발목을 잡는 지독한 놈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육체적인 노동을 했다. 첫 번째는 고기공장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뜨거운 물에 굳어버린 손을 넣어가며 풀어줘야 출근할 수 있었다. 7-8시간을 냉기로 가득 찬 공장에서 딱딱하게 얼어버린 소고기를 썰며 하루를 보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준비를 하며 틈틈이 운동을 했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영어 공부도 했다. 잠자기 전, 무뎌진 칼을 갈고 나서야 나의 긴 하루는 끝이 났다. 매일해도 익숙하지 않은 낯선 타지에서의 일상이었다. 내가 원하는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았다. 머릿속의 상상은 그저 치기어린 망상에 불과했다. 나는 '낙오자'라는 딱지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죽을만큼 싫었다. 그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지금에서야 내뱉은 글. 극복이 아니라 회피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 여유로워진 '나'. 단지, 그 뿐이다.
"트라우마는 말의 가장 오래된 뿌리는 '뚫다'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트라우마에 의해 인간은 꿰뚫린다. 정신분석 사전은 그 꿰뚫림의 순간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충격의 강렬함, 주체의 무능력, 효과의 지속성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는 실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젠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을 때에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트라우마를...'이라는 문장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트라우마는 나를...'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p.42-43)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육체노동의 두 번째 역시 고기공장이었다. 처음 간 곳보다 돈을 더 많이 준다던 대만 친구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슬라이서로 면접을 봤지만 나의 보직은 청소로 바뀌었다. 친구들 역시 달라져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은 고된 노동이 아니었다. 소들의 잔해를 치우는 청소 담당이었다. 섬뜩했다. 공장의 소들은 매일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점심 때까지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울타리를 지나 죽으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소들이 죽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머리에 총을 쏘면 그걸로 끝이 났다. 총소리와 함께 이들의 육체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먼저, 소의 뒷다리가 갈고리에 걸렸다. 가죽을 벗기는 기계는 소의 발끝을 시작으로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벗겨진 가죽은 한 곳으로 버려지고, 머리는 잘리며, 몸은 반으로 갈라졌다. 이 작업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기계가 모든 일을 처리했다.
나는 떨어져 나간 살점이나 가죽으로 막힌 배수구를 뚫는 일을 했다. 피를 내려 보내는 일뿐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소의 머리를 기계에 거는 것까지 내 몫이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의 일부분이 아니었다. 몇 분전, 죽어버린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신체의 가장 중요한 일부였다. 그곳에서 해체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아직까지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치 사람이 기계에 걸려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앞을 바라봤다. 모든 행위에 익숙해져버린 공장노동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