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언 형제 : 부조화와 난센스>(마음산책, 2009)
영화는 조연 캐릭터들의 다채로운 전용을 자랑하는데, 이 기묘한 조연 캐릭터들은 코언 형제 영화의 꽃―일부 사람들에게는 오작동―으로 자리잡아왔다. 조엘과 이선은 흥미로운 캐릭터들을 맘껏 창조한 대가로 종종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전 정말이지 그걸 이해 못하겠어요.” 그들이 노골적으로 전형적인 타입의 캐릭터들을 사용했다며 항의 편지를 보내오는 것에 대해 조엘이 말한다.
“재미있는 게, 사람들은 우리가 만든 캐릭터를 우리가 업신여긴다고 종종 항의를 해 와요. 제게 이런 점은 뭐랄까, 불가사의하게 느껴져요. 영화를 만들다 보면 어떤 캐릭터들을 조롱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그 캐릭터 자신에게 또는 그가 행동하는 방식에 뭔가 우스꽝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캐릭터를 조롱했노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캐릭터는 창작의 산물이에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거죠.”
형제는 미네소타인들에서부터 남부 지역 사람들, 그리고 베트남 참전 군인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적절하게 그려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중포화를 맞곤 했다.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캐릭터가 민족적으로, 또는 출신 지역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경우, 그러니까 예를 들어, 그가 미네소타 출신이다. 또는 그가 유대인이다. 또는 그 캐릭터가 오마하에서 온 유니테리언 파의 사람이다. 그러면 그 캐릭터는 모든 유대인, 모든 오마하 출신의 유니테리언들, 전체 미네소타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거예요. 말할 필요도 없이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그가 설명한다. “캐릭터를 만들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다루는 인물은 구체적인 한 개인일 뿐이에요. 그 부류의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말이죠.” “우린 괴물들을 창조하고, 이제 그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죠.” 그와 동생을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비유하는 이론이 있다는 얘기에 조엘이 웃으며 받아 넘겼다. “아뇨, 정말 그래요. 창작자는 자신의 모든 캐릭터들을 사랑해요.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조차도요. 캐릭터를 미워하면서 어떻게 창작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 있을지 저로선 상상이 안 돼요. 부조리하게 느껴지죠.”(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