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손>을 보고
만삭의 여자가 바닥에 앉아 전을 부친다. 극 중 날씨는 32도다. 할매, 에어컨 좀 틀자! 소리쳐도 할매는 달달거리는 선풍기를 여자 쪽으로 밀어줄 뿐이다. 성진이는 언제 온다노? 설명이 없어도 알 수 있다. 이 집의 장손, 모두가 기다리는 큰아들의 큰아들. 할매는 성진이가 오자마자 외친다. 성진이 덥다~ 에어컨 좀 틀어라!
영화 <장손>에서 도드라지는 이 도입부를 나는 크면서 보고 자랐다. 영화가 생경하지 않았다. 오자마자 어른께 절을 하는 장면, 두루마기를 입고 제사를 지내는 장면, 만든 음식은 절대로 제사 전엔 먹어선 안된다는 할머니의 잔소리. 우리집에도 장손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들이 오면 앉혀놓고 족보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살면서 제사, 차례, 문중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의 아빠는 둘째 아들이다. 큰아들만 대학 보내고 큰아들만 상경했다. '쌔가 빠지게' 둘째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일을 하고 나면 큰집 식구들이 비행기를 타고 왔다. 김포에서 사천공항에 내려 진주에 버스를 타고 왔다. 반갑기도 했고 얄밉기도 했다. 할아버지에게 제일 중요한 손자는 자주 보는 우리 자매가 아니라 서울 사는 사촌오빠였다. 어린 눈에도 그게 보였다.
장손이 이 세상에 전부 인 줄만 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할머니도 안 계신다. 늙어서 아팠고 힘들어했지만 업어 키운 큰아들과 큰아들의 아들은 돌봄에서 자유로웠다. 장손의 단물은 쏙 빼먹고 책임과 의무는 비장손들이 했다. 그 단물의 양이 비록 적었을지라도 인간 된 도리로 장례식장은 밤새 지킬 줄 알았는데. 앞다퉈 장례식장 꼭대기층 유족 침대를 두 사람이 차지하고 코를 골며 자는 걸 보니 할아버지가 불쌍할 지경이었다.
영화 <장손>에서도 누군가의 죽음으로 가족은 붕괴된다. 가업인 두부공장도 대를 잇는 게 희미해지고 짱짱하던 할아버지도 쇠락한다. 잘 부서지고, 빨리 쉬는 두부 같은 모습으로 가족이 무너진다. <장손>의 장손도 서울에 산다. 새벽에 택시를 타고 가는 모습이 익숙하다. 그 배웅은 할아버지 할머니다. 극 중 할아버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며 통장을 준다. 장손은 가업을 잇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알면서도 준다. 서울로 내다 빼는 장손이라도, 장손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에도 장손이 있을까. 아이 자체를 낳지 않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