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 들여다보기

by 밝을 여름


심장이 쿵쾅쿵쾅, 나 스스로 느껴지는 두근거림이다.

긴장될 일도, 기쁠 일도, 슬플 일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나의 이 두근거림은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라는 것.




거울 속 내 표정은 나쁘지 않지만, 마음속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무엇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루 종일 잘 먹고, 잘 수다 떨고, 잘 놀다 들어왔으면서 왜 이런 기분인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이런 기분이 시작됐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오늘 오전,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점심 약속이 있어 분주히 움직였다. 약속 시간에 맞춰 서둘러 나갔고, 엄마들과 만나서는 희희낙락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브런치 카페에 가서는 처음 먹어본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웃었고, 또 자리를 옮겨 카페로 가서는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 아이 학교 방과 후 과정 참관 수업이 있는 날이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땀을 삐질삐질 흘린 채 조용히 교실로 들어가, 의자를 빼서 앉았다. 그리고 아이의 수업을 구경했다.


아이와 함께 학교를 나와서는, 카페 데이트하자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학교 근처 카페로 갔다. 아이에게 핫도그와 음료를 사주고, 잠깐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J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분홍색 자전거 사진 한 장과 함께, 필요하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마침 딸아이 두 발 자전거가 필요해서 냉큼 달라고 했다.


그러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는 지인이 자전거 준다고 하는데, 생각나서 연락했어요. 우리 아파트 윗동네 아파트 있죠? 거기 207동이래요."


"아, 그래요?"


나는 사진만 보고 당연히 우리 아파트라고 생각했는데, 윗동네라니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자전거가 필요했기에, 내가 받으러 가겠다고 했다.


"지금 시간 되니까, 괜찮으면 지금 받으러 갈게요."


"알겠어요. 그럼 제가 지인한테 자전거 받으러 간다고 전화해 놓을게요."


"네,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아이에게는 집에 있으라고 말한 뒤, 다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조금 걷자 또 카톡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자전거를 집 밖에 내놓았으니 알아서 찾아가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직접 아는 지인이 아니기에, 나를 배려해 준 행동 같았다.


산에 오르듯 오르막길을 올라 윗동네 아파트에 도착했고, 207동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현관 앞에 분홍색 자전거 한 대와 기웃거리며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눈치상 자전거 주인 같았다. 그분도 나를 보더니 느낌이 왔는지 “자전거?”라고 물었고, 나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맞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내려왔다.


올라갈 때와는 달리, 집으로 갈 때는 내리막길이었다. 자전거를 단단히 잡고 천천히 내려왔다. 우리 아파트 쪽문에 들어서서는 자전거를 내가 직접 탔다. 끌고 가기 무겁고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냥 타버렸다. 누가 봐도 어린이 자전거를 어른이 타고 지나가니, 평소 눈인사하던 다른 학부모들과 큰아이 친구들 모두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봤다. 이상하게 봐도 어쩔 수 없었고, 상관없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문 뒤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들어왔다.


“엄마, 왔어요?”


그 ‘왔어요?’라는 말에 담긴 특유의 기분 좋은 끝올림.
아이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곧바로 손을 씻고, 저녁거리로 쓸 닭볶음탕용 닭을 씻고 쌀을 씻어 불렸다. 그리고 잠깐 여유를 가지려고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앉았다.




휴. 평소와 다르다면,
아이 친구 엄마들과 오랜만에 식사를 했다는 것,
아이 학교 방과 후 수업을 참관했다는 것,
아이와 카페 데이트를 했다는 것,
그리고 자전거를 받으러 갔다는 것뿐이었다.


기분이 나쁠 일은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오히려 다른 날보다 더 좋아야 마땅한 하루였다.
하지만 이유 없는 기분 저조함에, 나는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래야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렇다고 하기엔 복잡 미묘한 감정.
들쭉날쭉한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나이기에, 오늘 나의 이런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한낮 땡볕에 아이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 더워서?
그래서 땀을 많이 흘렸고, 그 땀이 옷에 젖어 비쳐서 기분이 나빴던 걸까?


점심 식사 자리에서 음식에 대한 평가가 내 생각과 달라서 불편했던 걸까?


하굣길에 아이가 별거 아닌 일로 나에게 짜증을 내서 속상했던 걸까?


아니면, 자전거가 우리 아파트가 아니라 윗동네라 귀찮게 느껴졌던 걸까?


집에 오자마자 느껴졌던 두근거림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도 전에, 배고프다는 아이의 성화에 주방으로 가서 저녁 준비를 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거의 다 끝나갈 즈음 휴대폰 진동 소리가 울렸다.


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순간 반가웠다. 나는 냉큼 전화를 받으며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오늘 기분이 안 좋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언니의 말이 가관이었다.


"왜? 오늘 사람들 만났어?"


"어! 어떻게 알았어?"


"딱 보니까 알겠구먼."


언니의 신통방통한 통찰력에, 나는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전까지 내 기분 저조의 이유를 다른 데서 찾으려 했던 내 모습이 우스워질 만큼, 언니의 말은 명쾌했다.


"너는 꼭 그렇더라. 기운 안 맞는 사람들 만나고 오면 꼭 기분이 안 좋아지더라. 내일은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힐링해."


언니는 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가끔은 나도 나 자신을 모를 때가 있는데, 아니 사실은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 언니는 그걸 콕 집어 말해주곤 한다.


물론 오늘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가 꼭 그거 하나 때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앞서 언급한 모든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 내 기분을 가장 크게 끌어내린 핵심은 언니가 말한 그 부분이라는 것이다.


나는 나와 결이 다른, 기운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 사람들이 나쁘거나 싫은 건 아니다. 분명 좋은 사람들이다. 다만 나와 에너지의 결이 달라서, 만남 이후 느껴지는 감정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뿐이다.


그럼 안 만나면 되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래서 자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 그것도 내가 먼저 연락하지는 않는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있으니, 내 마음대로만 살 수는 없다. 거절하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물론 그 순간엔 분명 즐겁다. 웃으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기분 저조함은 이상할 정도로 나를 뒤흔들어 놓곤 한다.


글로 치유받는 요즘.
감정을 들여다보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썼지만, 정작 해답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쾌했다.


언니의 말 한마디에, 나의 마음은 어느새 사르르 녹았고 기분은 다시 업되었다. 나도 내가 참 별스럽다고 느낄 만큼, 기분이 확 바뀌었다. 시원한 냉수 한 잔 들이켠 것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힐링해야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