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이 되는 일

by 호세

얼마 전 회사에서 조금 특별한 교육이 있었다.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안전한 행동으로 바꾸기 위한 말하기 방법을 배우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사장님도 있었고 경영진도 있었고 관리자도 있었고 현장에서 매일 땀 흘리며 일하는 작업자분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말을 처음부터 함께 익히는 시간이었다. 직급이 높다고 해서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니었고 현장에서 오래 일했다고 해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날 같은 출발선에 섰다. 돌이켜보면 그 출발선에 함께 선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안전은 누군가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껴지는 그런 메시지 말이다.

교육의 내용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위험한 행동을 보더라도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잠깐 멈춰서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고 이미 잘하고 있는 안전한 행동을 먼저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었다. "지금 작업 전에 주변을 한번 살피신 게 정말 좋았습니다."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하고 계시네요." "손이 끼일 수 있는 곳에서 장갑을 빼고 작업하신 건 아주 좋은 판단이셨어요." 이런 말을 먼저 건넨 다음에야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다. 단순하다고 했지만 막상 해보니 단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것을 내려놓는 일이라 더 어려웠다. 손에 익은 도구를 버리고 새 도구를 쥐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다. 그동안 습관처럼 잘못된 점부터 콕 집어서 말해왔기 때문이다. 현장을 돌다가 위험한 행동을 보면 반사적으로 입이 먼저 열렸다. "거기 위험해요."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보호구 착용하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규정에도 맞고 원칙에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의 표정은 늘 비슷했다. 굳어 있거나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네 알겠습니다" 하고 짧게 대답한 뒤돌아서는 뒷모습에는 어딘가 억눌린 기운이 있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내가 할 말을 다 했으니 상대방은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게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내 역할은 지적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역할은 고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소통이 아니었다. 일방통행이었다. 내 말은 상대방의 귀를 스쳐 지나갔을 뿐 마음에 닿지는 못했던 것 같다.


칭찬을 먼저 건네자 상대방의 표정이 달라졌다. 몸이 굳지 않았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말문이 막히지 않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 그랬나요,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에 긴장이 풀려 있었다. 어깨가 내려가고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 뒤에 이어지는 안전 이야기도 훨씬 편하게 받아들여졌다. "아 그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하고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 "다음부터는 신경 쓸게요" 하고 자발적인 다짐이 이어졌다. 지적이 아니라 대화가 되었고 명령이 아니라 제안이 되었다. 같은 내용인데 말의 순서만 바꿨을 뿐인데 결과가 완전히 달랐다.

안전이라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날 현장에서 다시 한번 배웠다. 규정집에 적힌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험으로 배웠다.


하루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무슨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닌데 그냥 모든 게 힘겹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어나기가 싫고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고 점심을 먹어도 맛을 모르겠고 퇴근 후에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날 말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보려 해도 딱히 손에 잡히는 게 없다.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날이 있다.


그때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 대단한 위로도 아니고 조언도 아니다. 그냥 "요즘 어때, 괜찮아?" 하고 안부를 묻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잠시 옆에 머물러 주는 사람이다. "힘내라"는 말도 안 하고 "다 잘 될 거야"라는 말도 안 한다. 어설픈 해결책을 내놓지도 않고 "네가 뭘 잘못한 거 아니야?" 하고 원인을 분석하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 있어 준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옆에 앉아 있어 준다. 그 존재만으로 하루의 온도가 조금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인생에는 그렇게 꼭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단번에 확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스승이 나타나 제자의 인생을 바꾸고 멘토가 나타나 청년의 미래를 열어주고 누군가의 한마디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 장면 말이다. 음악이 깔리고 조명이 바뀌고 주인공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그런 장면.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드물다. 적어도 내 경험에서는 그랬다. 대부분의 변화는 조용히 일어난다. 천둥 번개가 치지 않는다.


작은 말 한마디가 마음 한구석에 남고 작은 태도 하나가 기억 어딘가에 새겨지고 그것들이 쌓여서 어느 날 문득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언제 바뀌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냥 돌아보니 예전과 다른 내가 있다. 하루가 바뀌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하나씩 쌓여서 인생의 방향을 조금씩 움직인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작은 것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일을 위대한 사랑으로 할 수는 있습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 말의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작은 친절이 가진 힘은 늘 너무 가볍게 여겨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숫자로 측정되지 않고 보고서에 적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말 평가에 "올해 몇 번의 친절을 베풀었습니다"라고 쓰는 사람은 없다. 승진 심사에서 "이 사람은 동료들에게 따뜻한 말을 많이 건넸습니다"라고 발표하는 일도 없다. 하지만 그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받아본 사람은 안다. 힘들 때 누군가 건넨 말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 기억에 남는지. 그 말 한마디가 무너지려는 하루를 붙잡아 줬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힘들 때 어깨 두드려준 선배가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작은 행동이 그날 하루를 버티게 해 줬다. 실수했을 때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하고 웃어주던 동료가 있었다. 잔소리를 하거나 "왜 그랬어?" 하고 캐묻지 않았다. 그냥 웃어줬다. 그 웃음이 쪼그라든 마음을 다시 펴줬다. 지치고 돌아온 날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던 가족이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밥 먹어" 하고 수저를 내밀었다.


그들이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다. 드라마처럼 내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누군가에게 그런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냥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한 일은 쉽지 않다. 안전관리라는 일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결과가 바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영업처럼 숫자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 달 매출 얼마 달성했습니다" 하고 발표할 게 없다. 개발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지도 않는다. "이번에 만든 제품입니다" 하고 보여줄 게 없다. 사고가 없으면 그냥 당연한 것처럼 지나간다. "원래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에 대해 고마워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왜 못 막았느냐"는 질문이 날아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는 추궁이 이어진다. 안전 점검은 했느냐, 교육은 제대로 했느냐, 왜 미리 알아채지 못했느냐. 그 질문들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분명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 최선이 부족했다는 사실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하던 시간들은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매일 현장을 돌고 위험 요소를 점검하고 개선안을 만들고 교육을 하고 또 현장을 돌던 그 반복되는 날들은 사고가 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허무할 때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건지 스스로 묻게 되는 밤도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일이 내게 매력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한 판단과 내가 실천한 것들이 누군가의 오늘을 무사히 지나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한 사람이 저녁에 다치지 않고 퇴근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다. 공장 안에는 수많은 기계가 돌아가고 있고 무거운 물건들이 옮겨 다니고 있고 뜨거운 것과 날카로운 것과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 사이를 지나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매일매일이 기적이다.


그 기적을 만드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이 퇴근 후 다시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만든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아빠 언제 와?" 하고 현관문을 열어보는 아이가 있다. 함께 저녁을 먹을 배우자가 있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물어봐 줄 사람이 있다. 안부를 묻는 부모님이 있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을 무사히 돌려보내는 것. 그것이 내 일의 본질이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 보고서에 적히지 않는 성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안전이라는 가치는 늘 결과로 증명되지 않는다.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전국의 모든 공장에서 사고가 없었습니다"라는 기사는 어디에도 실리지 않는다. 아무도 그런 기사를 쓰지 않고 아무도 그런 기사를 읽지 않는다. 당연하니까. 박수도 잘 나오지 않는다. 시상식도 없고 트로피도 없다. "올해 가장 안전한 회사를 만든 공로로 이 상을 드립니다" 하는 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다. 매일매일의 노력은 조용히 사라진다.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오늘 아무 일 없이 퇴근한 누군가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평범한 하루가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그렇게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평범한 하루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건강할 때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듯이 무사할 때 무사함의 소중함을 모른다. 하지만 그 하루가 사라졌을 때 얼마나 큰 구멍이 생기는지는 모두가 안다. 어제까지 옆에 있던 사람이 오늘 없다는 것. 그 공허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그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사람이고 싶다. 구멍이 생긴 뒤에 수습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멍이 생기기 전에 막는 사람이고 싶다.


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진정한 고귀함은 책임을 지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눈에 띄지 않는 책임을 묵묵히 떠안는 일, 그 안에 일의 의미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매일 현장을 돌고 위험 요소를 체크하고 작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이다. 화려하지 않다. 드라마틱하지 않다. 하지만 의미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알고 있으면 된다. 오늘 내가 점검한 그 설비가 누군가를 지켰을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건넨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행동을 바꿨을 수도 있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믿고 있다. 그 믿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친절만으로 세상이 바뀌겠느냐고. 맞는 말이다. 친절 하나로 세상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는 구조적인 해결이 필요하고 시스템의 결함은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고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친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친절이 사라진 세상은 분명 더 위험하다. 서로를 향한 관심이 사라지면 위험 신호를 놓치게 된다. "저 사람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나?" 하고 살피는 눈이 없으면 문제가 커질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 서로를 향한 배려가 사라지면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 조금만 주의했으면 막을 수 있었던 일이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아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안전을 다루는 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규정과 시스템은 기본이다. 없으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을 향한 관심과 다정함이 빠진 안전은 오래가지 못한다. 규정집은 책장에 꽂혀 있다. 하지만 그 규정집을 펼쳐서 읽고 실천하는 것은 사람이다.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다. "저 사람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구나" 하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안전 수칙이 몸에 배게 된다. "저 사람은 규정을 들이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 안전을 생각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있을 때 사람은 움직인다.

이번 교육의 핵심도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현장을 돌다가 위험한 행동을 목격하더라도 곧바로 잘못을 짚어내지 않는다. 먼저 그 사람이 이미 하고 있는 안전한 행동을 눈여겨보고 그것을 말로 꺼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으면 힘이 빠진다.


안전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알아봐 주지 않으면 굳이 계속할 이유가 없어진다. "귀찮은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봐주고 말로 표현해 주면 달라진다. "아, 이게 맞는 거구나" 하는 확신이 생긴다. "내가 하고 있는 게 의미 있는 일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계속 이렇게 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긴다. 누군가 알아봐 준다는 것. 그것만으로 사람은 달라진다.

"그 자세로 작업하신 건 정말 좋았습니다." "주변을 한 번 더 살피신 게 인상 깊네요." "작업 전에 장비 점검하신 거 봤습니다, 아주 좋은 습관이에요." "보안경 착용하고 작업하시는 거 보기 좋습니다." 이런 말 한마디가 먼저다. 칭찬이 먼저다. 인정이 먼저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는 행동을 함께 이야기한다. "한 가지만 더 신경 쓰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하고 부드럽게 꺼낸다. "혹시 이 부분은 이렇게 해보시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명령이 아니라 제안인 것이다. "너 틀렸어, 고쳐"가 아니라 "이미 잘하고 있어, 여기만 조금 더 하면 완벽해"가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방식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 그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 못 했네요" 하고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볼게요" 하고 자발적인 다짐이 이어졌다. 강요받아서 하는 안전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안전이 되었다. 현장에서의 한 번 더 멈춤과 한 번 더 확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강요가 아니라 자각으로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냥 내 주변 사람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당연하게 무사한 하루가 이어진다면 더 좋겠다. 오늘 무사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 할 만큼 무사함이 일상이 되면 좋겠다. 안전이 공기처럼 당연해지는 것.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현장의 모습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행복해졌다면, 그것이 성공이다." 성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돈이고 누군가에게는 명예이고 누군가에게는 권력이다. 큰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성공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해졌다면 그것이 성공이라는 말. 범위가 좁다. 단 한 사람이면 된다. 그 한 사람이 꼭 대단한 사람일 필요도 없다. 내 옆에서 일하는 동료일 수도 있고 현장에서 매일 만나는 작업자일 수도 있고 복도에서 스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하루가 내가 있음으로 해서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공이 멀리 있지 않다. 오늘 당장 손에 닿는 곳에 있다.

인생의 빛은 멀리 있지 않다. 대단한 재능이나 극적인 사건 속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천재만이 빛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 좋게 기회를 만난 사람만이 빛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매일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조금 더 책임감 있게 해내는 태도 속에 있다.


출근해서 내 자리에 앉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현장을 돌며 위험 요소를 살피고 개선하는 것. 작업자와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묻는 것. "요즘 어떠세요, 불편한 거 없으세요?" 하고 말을 거는 것. 거창하지 않은 일상의 반복 속에 빛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빛이 있다.


오늘 내가 건넨 말 한마디와 오늘 내가 막아낸 작은 위험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오래 기억될지도 모른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심코 한 말이었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한 행동이었으니까. 하지만 받은 사람은 기억한다. "그때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해줬지" 하고 문득 떠올리는 순간이 있다. 힘들 때 그 기억이 버팀목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기억되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시 한 걸음 내딛을 힘이 생긴다. 지친 하루의 끝에서도 내일 다시 출근할 이유가 생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지는 못해도 하루를 밝힐 수는 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한 알의 모래가 모여 사막이 되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하루하루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내가 밝힌 하루가 그 인생의 일부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을까.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 내 자리에서 내 일을 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만으로 충분하다.


누군가는 알아주고 누군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늘도 모두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도 현장을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걷는다. 내일도 걸을 것이고 모레도 걸을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는 더 안전한 현장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고 오늘도 첫 발을 내딛는다.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내일의 걱정은 내일의 내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