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책임자로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불안이라는 감정은 마치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혹시 내가 무언가를 놓친 건 아닐까', '혹시 오늘 큰일이 터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현장을 둘러볼 때도, 회의를 할 때도,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마음 한켠에는 늘 무거운 돌덩이 같은 것이 얹혀 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이게 그냥 직업병이라고 생각했다.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니까 당연히 더 걱정이 많은 거라고, 이건 내 일이 특별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데 나만 유독 이렇게 불안한 건, 내가 하는 일이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꼭 안전 업무를 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산다는 것을. 회사원도 불안하고, 선생님도 불안하고, 의사도 불안하고, 학생도 불안하고, 부모도 불안하고, 아이들도 불안하다.
불안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크든 작든 불안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을.
다만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나한테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만 유독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불안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사실 불안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불안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고, 조심하고, 대비할 수 있다. 불안이 전혀 없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불안이 진짜 문제가 되는 건, 당장 위험한 일이 없는데도 마음이 먼저 겁을 먹을 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받아들이고, 곧 무시무시한 일이 닥칠 거라고 확신해버리는 순간,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머릿속에서 최악의 상황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지고, 그게 진짜로 일어날 거라고 믿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심장은 콩닥콩닥 빨라지고, 숨은 가빠지고, 손바닥에는 땀이 나고, 생각은 점점 흐릿해진다. 차분하게 판단해야 할 순간에 머리가 하얘지고, 해야 할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고, 몸이 굳어버린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온통 무섭고 끔찍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 사람한테, 좋은 기분이 찾아올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모든 일이 다 잘될 거라고 억지로 믿을 필요도 없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이런 말을 억지로 되뇌어봤자,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안다.
인생에는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 해가 뜨면 해가 지고, 봄이 오면 겨울도 온다. 이 단순한 사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기대하면,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더 크게 무너진다. 반대로 나쁜 일만 생길 거라고 믿으면, 좋은 일이 와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냥 삶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섞여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가장 건강한 마음가짐이다.
불안을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힘을 쏟기보다,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쪽이 훨씬 더 지혜로운 선택이다. 불안을 완전히 몰아내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은 더 크게 돌아온다. 마치 손으로 물을 움켜쥐려고 하면 할수록 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나는 불안을 가끔 최악의 길로만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에 비유하곤 한다.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내비게이션을 켰는데, 이 내비게이션은 좀 이상하다. 빠른 길도 안 알려주고, 예쁜 경치가 보이는 길도 안 알려주고, 오직 사고가 날 수 있는 길, 막히는 길, 위험한 길만 골라서 안내한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저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이 길로 가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가장 나쁜 결말만 친절하게 알려준다.
문제는 그 안내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갈 때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만 가면,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무섭고 어둡고 외로운 곳에 혼자 서 있게 된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방법은 딱 하나다. 목적지를 새로 입력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면 된다. 내비게이션이 아무리 이 길이 위험하다고 말해도, "잠깐, 나는 다른 길로 갈래" 하고 직접 핸들을 돌리면 된다.
불안이 알려주는 길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되찾는다. 불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그 목소리에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불안이 이렇게 하라고 해도 나는 저렇게 할 수 있다.
그 선택권은 언제나 내 손에 있다.
살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내일 날씨가 어떨지, 다음 달에 무슨 일이 생길지, 1년 뒤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우리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어쩌면 인생이란, 삶의 불확실함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완전히 뒤흔들지 않도록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조금씩 균형을 잡는 것처럼, 우리도 살면서 흔들리고 또 흔들리면서 조금씩 불확실함을 다루는 법을 익혀간다.
아무리 준비하고 대비해도 불확실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고도, 실패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도 언제든지 나타난다. 오늘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다고 해서 내일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지난달에 괜찮았다고 해서 이번 달도 괜찮을 거라는 약속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딱 하나다.
불확실한 것들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불확실한 것들을 견디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마치 근육을 키우듯이, 매일 조금씩 불확실함을 견디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작은 불확실함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큰 불확실함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불안과 스트레스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불확실한 일이 생겨도 "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길 수 있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져도 "일단 해보자" 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인생에는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정말 많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다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지 내가 정할 수 없다.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동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상사가 무슨 말을 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어떤 정책을 펼칠지도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경기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이런 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우리는 참 작고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그 모든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마음으로 대처할지는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비가 오는 건 내가 정할 수 없지만, 우산을 쓸지 말지는 내가 정한다.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는 건 막을 수 없지만, 그 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내가 선택한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주저앉을지 일어설지는 내가 결정한다. 이게 바로 사람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을 바꿀 수 있다.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어도 상황에 대한 내 태도를 통제할 수 있다.
완벽하게 불안하지 않은 삶은 세상에 없다. 하지만 불안해도 마음이 여유로운 삶은 분명히 있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웃을 수 있고, 걱정을 안고 있으면서도 오늘 하루를 즐길 수 있고, 두려움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삶이 가능하다.
여기서 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옛말을 자주 떠올린다.
한자로 쓰면, 다 할 盡(진), 사람 人(인), 일 事(사), 기다릴 待(대), 하늘 天(천), 목숨 命(명)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다음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 말은,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몫을 다하는 것까지다. 그 이후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우리 손을 떠난 일이다.
결과까지 내 손으로 다 통제하려고 할 때 불안은 점점 커진다. "이렇게 해야 저런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왜 안 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야"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반대로 과정에 집중하면 마음은 훨씬 가벼워진다. "결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 —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점검을 하고, 필요한 조치를 다 하고, 확인해야 할 건 확인하고, 말해야 할 건 말하고, 그 다음은 그냥 맡기는 것이다. 하늘에 맡기든, 운명에 맡기든, 시간에 맡기든, 어쨌든 내 손을 떠난 것은 내려놓는 것이다.
이게 안전관리 책임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내가 선택한 자세다.
모든 걸 다 쥐고 있으려고 하면 손이 아프다. 쥐고 있어야 할 것만 쥐고, 나머지는 놓아주면 손이 편하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주 오래전 그리스에 에픽테토스라는 철학자가 살았다. 이 사람은 원래 노예였는데, 나중에 자유를 얻고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힘든 삶을 살았지만, 그래서인지 삶의 지혜에 대해 깊이 생각한 사람이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일어난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이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어떤 사람은 크게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은 담담하게 넘긴다. 비가 오면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고 어떤 사람은 비 오는 소리가 좋다고 한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떤 사람은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하고 어떤 사람은 다음에 다시 도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일 자체는 똑같은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불안도 똑같다. 불안은 미래에 정해진 사실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자란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마음의 무게는 달라진다.
물론 생각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만 생각해왔다면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씩 연습하면 된다. 오늘 조금, 내일 조금, 모레 조금.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작가가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책을 쓴 사람인데,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쓰고 지혜로운 말도 많이 남겼다.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평생 수많은 걱정을 했지만, 그중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 중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일 발표에서 실수하면 어쩌지" 하고 밤새 걱정했는데 막상 발표는 잘 끝난다. "이번 프로젝트 망하면 어쩌지" 하고 한 달 내내 걱정했는데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건강검진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지" 하고 일주일 동안 걱정했는데 결과는 정상이다.
물론 걱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전체 걱정 중 아주 작은 부분이다. 대부분의 걱정은 그냥 걱정으로 끝난다.
이 말은 불안의 핵심을 정확하게 찌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미리 마음을 다 써버리는 것, 이게 바로 불안이 하는 짓이다.
우리는 종종 존재하지도 않는 무서운 일에 힘을 다 써버린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 때문에 오늘을 망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소중한 시간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데 쓴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려고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는 미리 불안해하지 않기로.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건 내일 걱정해도 된다. 다음 주에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지만, 그건 다음 주에 대처해도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기로.
오늘 점검해야 할 기계는 무엇인지, 오늘 나눠야 할 대화는 무엇인지, 오늘 반드시 확인해야 할 위험한 것들은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만 하면 충분하다.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면 그걸로 된 거다. 그 이상은 내 몫이 아니다.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할 것이고, 다음 주 일은 다음 주의 내가 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지금의 일만 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모든 걸 한꺼번에 짊어지려고 하면 무거워서 쓰러진다. 하나씩 하나씩 들면 충분히 들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불안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은 잘 다뤄야 할 신호다.
자동차에 경고등이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경고등이 있다. 불안은 그 경고등 중 하나다. 경고등이 켜졌다고 해서 자동차를 버리지는 않는다. 경고등이 왜 켜졌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면 된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불안이 찾아왔다고 해서 무너지지 않아도 된다. 불안이 왜 찾아왔는지 살펴보고,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불안을 느낀다는 건 내가 지금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은 불안할 이유가 없다. 불안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신경 쓰는 일이 있다는 뜻이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불안은 나쁜 게 아니다.
다만 그 불안에 끌려다니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불안이 찾아왔을 때 "아, 불안이 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잠깐 멈추고, 숨을 쉬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불안이 말하려는 게 뭘까. 내가 지금 뭘 해야 할까.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불안이 훨씬 작아 보인다. 코앞에 있을 때는 엄청 크게 느껴졌는데, 조금 떨어져서 보니까 그렇게 크지 않다. 충분히 다룰 수 있는 크기다.
그래서 오늘도 걸어간다
할 수 있는 일은 성실하게 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으면서.
현장을 돌아볼 때 꼼꼼하게 보고, 위험한 것이 보이면 바로 조치하고, 동료들과 소통하고, 필요한 교육을 하고, 기록해야 할 건 기록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내 손을 떠난 일이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된 거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내 몫을 한 것이다.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이 마음을 매일 다진다. 그리고 불안해도 충분히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도 한 발 한 발 걸어간다.
완벽한 삶은 없다. 불안 없는 삶도 없다.
하지만 불안과 함께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삶, 걱정을 안고 있으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삶, 두려움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 그런 삶은 분명히 가능하다.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
그게 내가 찾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