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투정이었을 뿐이다

It was nothing more than a complaint

by 찐빵

단어 암기에 애를 먹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막연함'이 지배적인 원인이었다.

한두 번 깔짝인다고 해서 외워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숱하게 공부를 해왔지만, 통암기만큼 답답한 공부 방식이 있을까 싶다.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정신 개조도 아니고,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는 걸 무작정 달달달달..

(그래서 역사 사회 도덕같은 과목을 가장 싫어한다. 으.)


뭐든 긍정적인 피드백이 없으면 흐지부지되기 마련이다.

일도, 인생도, 게임도.

모두들 나를 볼 때마다 공부를 취미로 하는 게 신기하다고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구름을 하나씩 걷어내듯 알아가는 과정에 흥미를 느낀 덕분이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대개 둘 중 하나다.

아직 마음이 꺾이지 않아서 머지 않아 관둘 준비를 하는 상태라던가,

성적, 봉급같이 결과론적인 보상에 일희일비한다던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후자에 가까웠다.

결과가 없으면 죄다 무슨 소용이냐며.


하지만 '완료'라는 한 번의 뛸 듯한 도파민에 기분이 충전되다가도 점차 시들해지곤 했다.

그래서일까.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예민해지고 속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건 없었겠지만 스스로 무지하게 속을 썩였다.




그러다 어제 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오늘만 사는 것처럼 행동해라.


이미 그걸 경험해 본 내 입장에서는 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오늘만 살 거면, 탱자탱자 놀면서 쾌락에 절여지는 게 낫지

뭐하러 자기계발을 하고 보이지도 않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가.

그렇게 되물어보자 그는 말했다.


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의 차이겠지만

과정에 만족하는 삶은 적어도 결과에만 만족하는 삶보다 행복하다.


설령 결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가치를 이뤄내도록 최선을 다한 매일이었기에

과정마저도 가치있었다고,

그래서 후회없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 그런걸까.

태도로든 능력으로든 스펙으로든 보이는 변화가 있어야 인정받는 세상인데도

후회없는 과정이었다면 그거로 된 걸까.

누구보다 바쁘고 처절하게 버텨왔던 대학생활이었는데

난 왜 후회만 되고 우울하기만 할까.


그래. 난 왜 우울할까.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니 이유는 별 것 없었다.


정말 과정에 가치가 있다면

난 이제야 답을 낼 수 있을 듯하다.


입대를 준비하던, 대학생이던, 고등학생이던 내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마주하는 것. 그게 내 첫 번째.

인정하는 것. 그게 내 두 번째.

바꾸려는 것. 그게 내 세 번째.


그 과정에 있었을 뿐이다.

단지 투정이었을 뿐이다.


그런 것도 인생이라고 불러줄 만하잖아.


이제서야 우울을 줄여갈 수 있는 것 같다.

글도 좀 긍정적으로 쓰고, 마인드셋도 조금씩 바꿔나가고 싶다.

몇 년동안 중독된 것처럼 뱉었던 비관을

이제는 좀 치울 때가 됐다고 믿는다.


말이라도 긍정적으로 뱉다 보면 신기하게 마음도 바뀌더라.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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