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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ntta Nov 24. 2018

우주를 가르는 노스탤지어 #13

147일째



넓은 들판에 우주선이 홀로 서 있었다.
연료를 채우고, 테스트도 모두 마쳤다.
나는 우주복을 입고 사람들과 인사했다.
초기 멤버 알레그로 씨, 피를로 씨, 모니카 할머니, 그리고 토티 씨.
토티 씨는 나를 끌어안고 우주복에 눈물을 훔쳤다.

안젤리니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3일이나 남았는데....

과일 가게 딸 소피아는 운석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고, 

수선집 며느리 지나는  행운을 빈다며 안아주었다. 

과수원집 이사벨라는 아즈라엘을 안고서 말했다.
-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아즈라엘은 어울리지 않게 저음으로 울어대며 나를 불편하게 했다.

마도의 할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은 채로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귀를 대고, 몇 번을 되물었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 마르코에 대한 얘기였을 거다.

마도는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그녀와 나는 말없이 손을 잡고 서로의 눈빛을 확인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잘 있어요 마도>

미구엘은 창고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건네주었다.
- 판 씨가 만든 폭죽 보고 싶었는데 낮이라 안 되겠네요

미구엘은 씩씩거리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가슴을 한 대 치고는 웃어 보였다.
미구엘도 내 가슴을 한 대 치고는 웃었다.

우주선은 들판을 거대한 연기로 뒤덮었다.

<이제 지구를 떠날 시간이다>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우주선은 하늘로 전진했다. 이제 뒤를 돌아볼 기회는 없다.
우주선은 푸른 하늘을 지나 하얀 구름을 뚫고, 짙은 어둠으로 나아갔다.
그곳은 어둠이 지배하는 곳, 죽은 자들의 고향.

수많은 별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의 실체를 확인하니 내가 있던 세계가 허구처럼 느껴졌다.
비좁은 공간의 공기들이 나를 짓누르듯 가슴이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이제 여기서 마지막을 준비하자> 

나는 지구에서 가져온 커다란 캡슐을 열었다.
그 안에 타이머가 달린 커다란 기기의 모습이 드러냈다.
나는 이 녀석을 볼 때마다 경외와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실렌티오>

나는 거추장스러운 우주복을 모두 벗어버렸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그 기기의 타이머를 2시간 후로 세팅했다.
이러면 섬에서 정확히 볼 수 있을 거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췄다.

 - 지지직 -

- 서부지역 평화기원 방송 WPB 긴급 방송을 시작합니다
- 이하 내용은 전 주축국 소속 판 바르크 대위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 그는 <실렌티오> 통칭'밤의 태양' 개발에 참여한 인물로 현재는 지구 궤도 어딘가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1시간 후 서부 지역 상공에....

나는 마도가 준 비스킷을 한입 깨물었다.
이제 곧 밤이 될 것이다.
나는 그 타이머를 맞춘 기기를 우주로 떠나보냈다.

<이제 별들을 깨울 시간이다>



마도는 마을 사람들과 창고 앞에 모여 있었다.
안젤리니도 마도의 손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아도, 지나도, 이사벨라도, 미구엘, 토티 씨, 마고의 할머니, 모두 어두운 하늘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누치 씨는 시계를 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하늘에서 빛이 떠올랐다. 
그 빛은 육지와 닿지 않고 하늘 한가운데를 뚫고 나왔다.
그 어느 때 보다 밝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 파장도 없이 그저 거대한 별이 지구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이전보다 훨씬 환하게 섬을 밝혔다.
그리고 빛은 곧 사방으로 흩어졌다. 
빛들이 쪼개져 지구를 향했다.
수많은 별똥별이 지구로 쏟아져 내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토티 씨는 눈물을 흘렸다. 

마도 할머니는 그 별똥별들을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 마르코... 마르코가 돌아왔어

미구엘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빛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  판 씨, 대단해....



- 지지직 -

- 나는 주축국 소속 대위 판 바르크입니다
- 내가 저질렀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전쟁을 멈추기 위해

- 주축국, 동맹국 모두에게 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 지지직 -

- 경고합니다
- 첫째, 또다시 실렌티오, 즉 '밤의 태양'을 사용할 경우,
- 둘째, 즉시 전쟁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 나는 <실렌티오>의 제조 기술을 상대 진영인 동맹국에 전달하겠습니다
- 끔찍한 보복을 원하지 않는다면 주축국은 <실렌티오> 사용을 즉각 중단하십시오


- 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 죽은 자들을 위해, 또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 우리는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 부디 나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 나는 이미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고 있습니다
- 나는 지금 죽은 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메시지가 흘러나오던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고, 나는 미구엘이 준 사진을 꺼내 보았다.
마도는 모든 사진에 나와 함께 서 있었다.

<좀 더 일찍 사진을 찍었다면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사람들의 사진을 우주선 안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펜던트를 꼭 쥔 채 창 너머 지구를 바라봤다.
지구를 바라보다 나는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라디오에서는 처음 듣는 재즈 음악이 들려왔다.
풍경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 당신은 마을 사람들에게 추억을 주었어요

- 그리고 나에게도 

-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 이 펜던트가 인도하는 대로, 당신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돌아와요 

- 잘 가요 방랑자여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꿈을 꾸며....





















- 우주를 가르는 노스탤지어를 마치며  -



모자란 글과 그림 끝까지 지켜봐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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