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제리 갈등으로 드러난 국가와 민족의 경계
프랑스와 알제리의 갈등, 민족주의의 반항
2024년 프랑스 마르세유와 리옹, 파리 슈퍼마켓에서 알제리의 누텔레인 El Mordjene(엘 모르젠)이 갑자기 사라졌다.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의 식품수입 기준을 문제로 해당 제품 통관을 중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알제리와의 외교적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엘 모르젠 수입 규제, 보수와 진보의 시각 차이는?
알제리 산 초콜릿 스프레드인 엘 모르젠이 프랑스에서 수입 금지 처분이 내려진 이유는 EU 규정을 위반하는 유청 및 분유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알제리는 유럽연합이 지정한 유제품 수출 허가국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고로, 이는 정치적 판단이 아닌 통상적인 통관 절차에 따라 처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엘 모르젠(El Mordjene) 제조사인 알제리 기업인 Cebon 은 즉각 반발했다. 제품에 사용된 유청과 분유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합법적으로 수입한 EU산 원재료라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생산공정 또한 식품안전관리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의 시각이 엇갈린다.
보수적인 입장으로 엘 모르젠(El Mordjene) 수입 금지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일관된 무역 규제의 일환일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식품 규정은 국가의 공중보건뿐만 아니라 시장 질서 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질서다. 설령 재료가 프랑스산이었다 하여도, 제3국에서 가공된 제품이 위생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수입 상품의 기준은 감성이나 추억이 아닌, 법령과 위생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좋다. 하지만 과도한 문화적 수용은 오히려 공공질서를 훼손할 뿐이다.
진보적인 입장으로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엘 모르젠(El Mordjene)은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고향의 맛이자 정체성의 상징처럼 소비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가 내려졌다는 건 단순한 행정적인 절차로만 보기 어렵다고 본다. 이는 마치, 일본에서 한국산 김치 수입을 금지 조치를 내렸을 때의 제일교포 한국인들의 입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진보적인 입장으로는 이를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라면, 프랑스 내 북아프리카 이민자 내에서 자신의 민족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식품은 엘 모르젠이었다. 그런데 이 초콜릿 스프레드가 통제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배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사실 프랑스 내에서 벌어진 엘 모르젠(El Mordjene) 논란은 단순 식품 안전 규제로만 설명할 수 없다. 현재 프랑스 사회가 균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권에서 수입된 식품을 넘어,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수많은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민족적 상징이었다.
보수적인 입장으로는 제품 라벨에 그려진 히잡을 쓴 여성 이미지를 문제로 삼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광고 디자인을 넘어, 공화국의 세속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바라본 것이다. 다시 말해 히잡을 쓴 여성의 이미지를 문화적 시위로 본 것이다. 특히 프랑스 지방 소도시나 중산층 교외 지역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상당히 강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공공질서와 국민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입장으로는 프랑스 내 이민자 공동체의 문화적 자산을 공적 공간에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를 명백히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본 것이다. 세속주의란 없앨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닌, 공존을 조율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고로, 이번 조치는 다문화 자체를 봉쇄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프랑스와 알제리 갈등
2024년 7월 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모로코 국왕인 무함마드 6세에게 공식 서한을 보냈다. 내용은 서사하라 지역에 모로코 주권을 명시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시하라는 원래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1975년 스페인이 철수한 뒤, 이 지역의 소유권 문제는 국제사회의 난제로 자리했었다. 모로코는 해당 지역에 대한 역사적 주권을 주장하며 점령을 감행했다. 이에 반발한 현지의 민족주의자들은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을 선언하면서 무장 투쟁을 이어갔다. 이에 알제리는 이들을 분리 독립 세력으로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오늘날까지도 RASD를 공식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알제리 정부는 이 분쟁을 탈식민 저항의 연장선으로 간주하고 있다. 서사하라의 독립을 단순 외교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식민지 잔재에 대한 투쟁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알제리의 탈식민 정체성 서사 그리고 민족주의 정치의 핵심이다. 내정 안정성 그리고 정권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한 셈이다. 여기서 프랑스가 모로코 편에 선다는 건, 알제리 외교 전략의 중심축을 정면으로 침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프랑스의 이러한 입장은 경제와 안보에 이익이 되는 현실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로코와의 관계 강화를 위한 선택인 셈이다. 실제 모로코는 자국의 안보 역량 그리고 대테러 협력, 이민자 통제 등을 통하여 유럽과의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프랑스 기업들에게도 안정적인 시장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에 알제리는 모로코에 비하여 불확실한 파트너로 평가받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알제리 정부가 언론과 시민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하며 검열하고 있다는 점, 이주민 송환 문제 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스 보수 진영은 이번 결정이 안보적 이익과 외교적 실리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선택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우파에서는 알제리를 정치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국가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로코를 향한 시각은 유럽 안보 질서와 저 긴밀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국제외교에서 효율적인 협력은 감정보다 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프랑스 진보 진영은 이에 대해 우려한다. 마크롱 정부가 중립성 그리고 국제법 준수라는 프랑스 외교의 기초를 내려놓았고, 단기적 이익만을 좇았다는 것이다. 현재 유엔은 아직까지도 서사하라는 자결권 미이행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유럽 내 대부분 국가들은 아직까지도 모로코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가 먼저 인정했다는 점에서 책임 회피로 보았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대해 정치적, 도덕적,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 부알렘 살상 체포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갈등은 어느 작가의 발언으로 인하여 다시 확장되기도 했다. 부알렘 상살(Boualem Sansal)이라는 프랑스 국적을 보유한 알제리 출신의 작가는 <야만인의 맹세>를 통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과거 알제리 내에서 이슬람주의 세력, 권위주의 정권을 날카롭게 비판한 이력이 있다. 그는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온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부알렘 상살은 프랑스 극우 매체 인터뷰에서 "알제리 서부는 역사적으로 모로코 왕국의 일부였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곧바로 알제리 정부의 강렬한 반발을 초래했다. 그렇게 그는 귀국 직후 알제리 보안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렇게 '영토 보전 위협 ', '외세와의 공모'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는 어느 한 문인의 체포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와 국가 정체성, 식민지에 대한 기억과 외교 주권을 둘러싼 사건이다.
부알렘 상살은 알제리 내 보수층 특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진영에서 악당처럼 여겨졌다. 그는 모로코 왕정의 역사적 정당성을 강조했고, 알제리 서부를 모로코의 일부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알제리의 아픈 기억을 다시금 소환하게 했다.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일 때, 자신들의 역사적 영토를 자의적으로 제단하고 강탈했었기 때문이다. 고로, 부알렘 상살의 발언은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서사하라 분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발언인 것이다. 이는 알제리가 핵심 외교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을 지지하는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렇게 알제리 정부는 부알렘 상살이 프랑스 국적을 가졌다는 점, 프랑스 극우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 점을 바탕으로 외세와의 공모를 통한 국가 정체선을 훼손한 것으로 간주했다.
프랑스에서는 부알렘 상살의 체포를 두고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 하에 논쟁이 펼쳐졌다. 유럽연합은 2025년 1월 경 부알렘 상살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또한 외교 경로를 통하여 알제리 측에 문제 제기를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내부에서도 부알렘 상살에 대한 시각은 보수와 진보는 전체적으로 동일했으나 이민자를 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보였다.
보수적인 시각으로는 알제리 체제의 반민주성, 인권 억압 사례로 보고 있다. 나아가 강한 보수적인 시각으로는 이제 더 이상 알제리 정권과 역사적 화해를 시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알제리 출신 이주민 송환을 강화하고, 알제리 이민협정 파기를 촉구하자고 주장한다.
진보적인 시각으로는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았다. 부알렘 상살이 고령이고 병환 중인 지식인인데, 문화적 상상력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는 건, 과잉 반응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알제리 정권은 아직까지도 비판적인 세력을 억압하고 있으며, 프랑스 내부에서 알제리 출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위축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마치며
민족은 국가의 토양일 수 있다. 하지만 민족이 국가의 방향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정서는 법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기능해야 하며, 국가는 감정을 관리하되, 감정이 국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의 엘 모르젠, 부알렘 상살 체포 사건에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엘 모르젠은 문화적 정체성을 국가 규범의 이름으로 배제했다면, 다른 한쪽은 자유로운 발언을 영토 주권의 위협으로 간주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두 경우 국가와 민족의 균형을 잃었을 때 어떤 불균형이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프랑스 내에서 발생한 알제리산 초콜릿 스프레드인 엘 모르젠과 부알렘 상살 체포 사건은 민족이라는 정체성 문제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 여기서 우리도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 최진석의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를 보면, 민족과 국가를 명확하게 구분 지었다. 민족은 문화와 언어, 혈연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의 기억과 상초를 통해 결속되는 정서적 공동체다. 반대로 국가는 법과 제도 하에 작동하는 실체적 공동체다. 질서와 국경, 주권, 통치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민족에 비하여 냉정하고 배타적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북한을 하나의 민족으로 중국의 조선족을 형제로 보는 습관적인 시선이 있다. 그런데 현재 북한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국가적 이해를 중심으로 외교, 군사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북한이 대한민국과의 대화를 끊고 러시아와 손을 잡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만 민족적 정서에 매몰되어 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을 과소평가하거나, 잘못 판단하는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민족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국가 중심의 시선으로 넘어가야 할 차례다. 다시 말해, 제대로 된 국가관을 정립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