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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2018 선농인문학서당 #후기

by 기픈옹달

https://www.youtube.com/watch?v=_zU3U7E1Odc


1.


지난 8주간 수고했습니다. 뒤늦게 다시 마침표를 찍자면 이 동영상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화 <헤드윅>의 한 장면입니다. 제목은 'Origin of Love' 보면 알겠지만 내용은 플라톤의 <향연>에서 빌려왔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고 이야기한 내용을 어떻게 변주했는지를 살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래도 좋고, 메시지도 좋다 생각합니다. 그러니 꼭 꼭꼭 씹어 보세요. 두 번 보세요!!



2.


이 동영상을 나누는 이유는 '읽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입니다. 본 강좌의 제목을 '말과 철학'이라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명의 '철학자' 공자소크라테스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소개했듯 저는 철학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제가 철학과를 나왔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누군가 철학이 당신 삶에 끼친 영향이 얼마냐 묻는다면 1할은커녕 1푼도 채 되지 않을 거라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이른바 철학 공부, 개념의 값을 배우고 그 역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런 건 나중에 철학과에 들어가 배워도 된다 생각합니다. 아니, <윤리와 사회>와 같은 과목에서 배우면 되겠지요. 불행하게도 제가 <윤리와 사상> 내용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혼동을 주는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인', '이데아' 등과 영 주소가 다른 이야기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혹시 시험을 치르거든 제 이야기는 잊고 시험에 몰두하세요. ㅎㅎ 그런 것보다 '철학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철학하기'란 다르게 말하면 '생각하기'라고 할 수 있고, 더 쉽게 말하면 '질문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말과 철학'을 배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각과 질문의 대상으로 삼아보고 싶었습니다. 맞는 말인지 따져보고, 딴죽도 걸어보고, 질문해보고, 반론을 제기해보기도 하는 등.


다시 돌아오는 숙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질문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생각과 질문에도 경험이 필요하다고. 제도권 학교라는 공간이 과연 적합한 환경일까.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과 질문에도 도구가 필요하다고. 개념 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그래도 맨몸으로 두 텍스트와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두 철학자를 만났어요.


이것은 고집이기도 하고 믿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 낡은 지식의 사다리 혹은 계단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식으로 지식을 위계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배경을 간략하게 다루고 텍스트 자체로 들어가 보려 했습니다. 여러분의 독서가 어떻든 간에 텍스트와의 만남은 늘 어떤 경험을 선물해주리라 믿습니다. 설사 그것이 좋지 않은 경험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은 세계를 경험해낼 준비가 되어 있고, 텍스트는 다양한 결과 주름을 가지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

글쓰기가 적잖이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글쓰기가 힘든 것은, 글쓰기가 진정 힘들기 때문이다'라고. 맞습니다. 글쓰기가 쉽다는 것은 거짓말이예요. 글을 쓰려면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읽고 생각한 밑천이 별로 없을 때는 얼마나 곤혹스러운가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매 시간 자신의 바닥을 확인하며 글쓰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을 것입니다.


돌아와, 제가 생각하는 '읽기'란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과정입니다. 텍스트를 만나고 경험하며 이를 자기 식으로 정리 표현해보는 과정 전부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읽기란 결코 간단치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읽기란 거의 힘들고 매번 실패하기 십상이겠지요. 읽기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 수업에서 과연 무엇이 남았느냐 묻는다면 쉬이 답하기 어렵습니다.


허나 소박하게 생각하면, 여러분의 손에는 두 권의 책이 쥐어졌습니다. 또 다른 손에는 8편의 글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을 좀처럼 책장에서 꺼내 볼 일이 없다는 것을. 누군가는 이사 갈 때나 책이 있음을 발견하겠지요. 그러나 언제가 이 텍스트를 다시 만냐야 할 때에는 보다 덜 낯설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느 날 이 텍스트를 다시 만나는 날을 맞는 것이겠지만.


8편의 글을 여러분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할 만한 글인지 묻는다면 그 역시 쉬이 답할 수 없습니다. 매 시간 올라오는 과제에 일일이 댓글을 달았지만 얼마나 읽는지는 저 스스로도 의문입니다. 과제를 써놓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댓글도 잘 읽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을 텐데... 그래도 댓글은 여러분과 소통하고자 하는 제 스스로의 의지였습니다. 늦지 않았으니 댓글 달아주세요. 긍휼의 마음으로.


글쓰기의 필연적인 조건은 써야 실력이 는다는 사실입니다. 8주간 매주 글을 썼는데 저마다 조금씩 발전이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막막하던 것이 조금은 길을 잡기도 했고, 요령이 생기기도 했고, 가끔은 핵심을 찌르는 글을 써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써낸 글은 잊히고 사라지지만 썼다는 사실은 몸에 남아 또 다른 글을 써내는 귀한 토대가 됩니다.



4.


저에게 공자와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궁금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더 솔직하게 말하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강의 자료에도 그런 취향(?)이 적잖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공자의 삶이, 그의 말이, 그의 행적에 관심이 많습니다. 뭐랄까요. 인간다움이랄까 하는 것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논어>는 그 흔적일 것입니다.


요즘에는 예, 효, 인 따위를 접어두고 고전을 읽겠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도 이러한 이야기는 가능한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보다는 공자라는 인간에 더 주목을 하려 했지요. 소크라테스에서는 그의 철학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하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부분도 있고 영 다른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둘 차이를 선명하게 전하면 좋았겠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른 기회에 다른 자리에서 나눌 수 있기를.


이 둘을 읽은 저의 읽기는 어느 정도의 변주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의 오독이기도 합니다. 변주라는 것은 뻔하게 읽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이고, 오독이라 함은 잘못 읽었던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왜곡'이라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읽기란 역시 본디 이렇다 생각합니다. 읽기란 누군가 읽은 것과 다르게 읽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얼마간 오독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불행히도 저는 정통 해석에 밝지 못합니다. ㅎ


맨 위에 소개한 <헤드윅>의 노래 역시 변주이기도 하고 오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저 노래가 좋습니다. 수천 년 전 플라톤의 사유를, 어쩌면 소크라테스와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그 대화를 빌려와 멋진 노래로 만들었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잘 읽었기에 저런 가사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공부한 이 경험을 토대로 다른 것을 용기 있게 읽어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공자건 소크라테스 건 접어두더라도 읽기라는 보편적인 행동은 늘 여러분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어떤 텍스트를 만나게 될 것이고, 어떤 철학을, 생각을, 개념을 분명히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이 시간의 경험이 부디 그때 적잖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독을 두려워하지 말고, 읽기를 쉬지 말 것.


5.


연이 있으면 다시 만납시다. 제가 여러분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보다(그러면 교문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습니다. ㅎ) 여러분이 저를 찾아오는 게 좋겠지요. 시험 끝나고 방학이 되면, 혹 해방촌이라는 동네가 궁금하면, 머리 식히러 갈 곳이 필요하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따뜻하게 환대해드리겠습니다. ^__^


마지막으로 위 노래의 다른 버전을 붙입니다. 시간 나면 영화를 한번 보세요. 건전한(!) 영화라 하기는 어려우나 참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제 옛 친구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영화라 했는데... 저도 참 좋아합니다. 시험 기간이라 바쁘다구요? 본디 시험기간에 읽는 책처럼 재미있는 게 없고, 시험기간에 보는 영화만큼 흥미진진한 게 없는 법입니다.


아래는 조승우의 뮤지컬 버전입니다. 우리말인데, 전 영화를 더 좋아하긴 합니다.


다시 인사합니다. 무더운 여름까지 수고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Eloqxvx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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