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루쉰읽기

‘중국’과 중국 무국적자 루쉰의 길

by 기픈옹달

‘중국’에서 변방으로


우리는 중국을 잘 모른다. 더 정확히는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게 옳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바로 옆에 이웃한 커다란 대륙, 지구 총인구의 약 20%가 사는 그 거대한 세계를 모른다는 게 가능한가? 억지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 우리는 억지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점이 루쉰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첫번째 걸림턱이다.


루쉰은 중국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루쉰이 중국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건 루쉰을 이해하는데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그가 살았던 시대가 중국의 변화와 크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루쉰의 삶은 ‘중국’이 끝나는 자리에 있었고, 새로운 중국이 꿈틀거리는 자리에 있었다.


중국은 나라 이름이 아니다. 우리야 쉽게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는 약칭일 뿐 실제로 중국이라는 나라는 없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간단히 중국이라 칭하고, ‘중화민국’을 대만이라 칭한다. 그러니 어디에도 중국은 없다.


‘중국中國’은 오래된 말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모르나 <맹자>에도 보이는 것을 보면 꽤 오래전부터 쓰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莅中國而撫四夷也’ 흥미롭게도 맹자는 ‘중국’과 ‘사이四夷’를 대립적으로 쓰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이란 ‘사이-사방 오랑캐’로 둘러싸인 공간을 가리킨다. 오랑캐가 아닌, 문명인이 살아가는 곳. 그곳이 ‘중국’이었다.


따라서 ‘중국’이란 국명이 아니라 중앙에 있는 지역을, 다르게 말해 중앙이라 부를 수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옛사람은 ‘중국’이 곧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물리적으로도 중앙이라 생각했으며, 문화적으로도 중심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생각이 한 때의 망상이었음을.


중국은 더 이상 중앙도 중심도 아니다. 둥근 지구의 발견은 중앙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낳았다. 세계는 생각보다 넓었고, 고대인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편 바다를 건너온 서구인은 매우 낯선 존재였다. 양이洋夷, 바다를 건너온 오랑캐는 이전에 상대했던 오랑캐와는 전혀 달랐다. 이들에게는 강력한 힘이 있었고, 무엇보다 ‘중국’을 압도할만한 문명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중국’은 중앙도 중심도 아니게 되었다. 어느 서구인의 평가처럼 ‘중국’은 낡은 과거에 붙잡힌 미개한 땅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영원한 과거’만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 정신도, 어떤 가능성도 부재한 낡고 황폐한 땅. 중국이 이 사실을 자각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계의 참모습을 안 뒤에도, 서구와의 만남 이후에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세계의 중앙과, 중심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 오래되고도 오만한 정신이 무너지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충격이 필요했다.


아마 그 충격의 시작은 아편전쟁(1840~1842/1856~1860)이었을 테다. 아편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차례의 전쟁에서 ‘중국’, 청은 무참히 패배했다. 압도적인 힘의 크기는 ‘중국’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2차 아편전쟁은 수도 베이징에까지 서양 군대를 이르게 만들었다. 황제는 도망갔고, 궁은 불탔다. 이제 이 넓고 큰 땅은 서양 열강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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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려진 만평은 ‘중국’이라는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서로 칼을 들고 중국을 갈라 차지하려는데 중국은 두 손 들고 이를 지켜볼 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턱을 괴고 이 판을 노리는 익숙한 이가 있다. 비록 손에 칼을 들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게임에 곧 동참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준다. 흰 피부의 다른 참여자들과 달리 그의 피부는 누렇다.


일본, 동쪽 변방의 오랑캐가 서구와 함께 중국을 갈라 먹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낯선 서양 오랑캐의 강력한 힘이야 그렇다 치자. 키 작은 오랑캐(倭)에게까지 털린다는 것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되는 법. 1894년 청일전쟁은 그나마 남아있던 ‘중국’의 자존심마저 철저히 짓밟았다. 이제 ‘중국’은 명백한 변방이 되었다. 이게 현실이었다.



외친다 하여 무엇이 달라질까?


1881년 루쉰이 태어났다. 그는 제법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었다. 할아버지는 중앙 관료였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면서 집안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린 시절 부유한 집안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루쉰은 커다란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루쉰은 어렸을 때에 고문古文, 옛글을 배웠다. 과거시험을 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오래된 왕조는 기울고 있었고, 세상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당시의 정신 가운데 하나는 ‘양무洋務’, 서구 오랑캐를 배우자는 것이었다. 특히 서양의 강력한 힘을 배우고자 했다.


루쉰은 1898년 남경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한다. 이 학교는 해군학교였다. 그러나 루쉰은 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같은 해 10월 남경의 강남육사학당 부설 광무철로학당에 입학한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 학교는 탄광개발을 위한 학교였다. 지금이야 해군학교에서 철도학교로 옮기는 것이 이상할테지만 루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바다 위에 뜬 철선과 들판을 질주하는 기관차는 새로운 문물의 상징이었다. 루쉰은 무언가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지간한 생활을 하다가 밑바닥으로 추락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길에서 세상인심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리라. 내가 N으로 가서 K학당에 들어가려 했던 것도 다른 길을 걸어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찾아보고자 함이었을 게다. 어머니는 방법이 없었는지 팔 원의 여비를 마련해 주시며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울었다. 이는 정리情理상 당연한 것이었다. 그 시절은 경서를 배워 과거를 치르는 것이 정도正道요, 소위 양무洋務를 공부한다는 것은 통념상 막장 인생이 서양 귀신에게 영혼을 파는 것으로 간주되어 몇 갑절의 수모와 배척을 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 <외침: 서문>, 루쉰전집, 그린비


이후 루쉰은 일본으로 떠난다.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과거 변방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의 중심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당시 적지 않은 중국인이 일본을 찾았고 루쉰도 마찬가지였다. 루쉰은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한다. 이는 손쓰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그의 가슴 아픈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학이야말로 이 낡은 세계를 깨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유명한 환등기 사건으로 전환을 맞는다. 슬라이드로 해부 사진을 보는 수업이 있었는데 종종 시간이 남으면 신문에 나오는 사진 따위를 함께 보여주고는 했다. 당시에는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로 전쟁 사진이 많았다. 그 가운데는 중국 포로의 사진도 있었다. 포로로 잡힌 중국인을 구경하고 있는 그 사진, 그리고 그 사진을 보는 또 다른 사람들. 루쉰은 그 구경꾼의 경험 이후 공부를 마치지 않고 학교를 나왔다. 이제 루쉰에게는 정신을 뜯어고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강력한 해군의 무기도, 탄광에서 쏟아져 나오는 값비싼 자원도, 첨단 의로기술도 소용이 없다는 게 루쉰의 판단이었다.


사람들의 정신을 뜯어고치기 위해 그는 펜을 들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좌절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문예지 운동이 한창이었다. 잡지를 출간하여 글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을 바꿔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망가지고 말았다. 원고를 담당한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사람도 사라졌다. 그는 이 순간 느낀 것을 ‘적막’이라 이름 붙였다.


그가 느낀 적막이란 단순히 도모하던 일이 어그러졌다는데 오는 실망 따위가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어둡고 탁한 시대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중국’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저마다 해결책을 찾았다. 과연 그것이 적절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루쉰의 질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내놓는 해결책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중국’이라는 세계가 끝난 뒤에 찾아온 광활한 혼돈, 그 심연을 그는 적막이라 불렀다.


당시 시대를 이끄는 목소리는 ‘진보’였다. 옌푸의 <천연론天演論>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루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은 영국의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옛글로 번역한 것이었다. 사실 ‘번역’이라는 표현을 쓰기 좀 조심스러운데 왜냐하면 옌푸 본인의 생각이 많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는 진화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약육강식의 이 세계에서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진화-진보는 당위였다. 그는 다양한 서구 문헌을 이렇게 번역하였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찌감치 영국 해군학교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1880년 중국으로 다시 돌아와 북양수사학당의 교사가 된다. 그러나 1895년 청일전쟁으로 북양해군은 몰락하고 만다.


청일전쟁의 경험은 진보를 위해 적지 않은 자기 변신이 필요하다는 깨우침을 주었다. 그 가운데는 낡은 ‘중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중국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청조淸朝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 그러나 이 새로운 나라는 이전과는 달라야 했다. 황제제가 아닌 공화제야 했고, 만주족의 나라가 아닌 한족의 나라여야했다.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한 노력은 신해혁명(1911)을 낳는다. 드디어 청조가 무너졌다. 황제가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낡은 구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신해혁명의 주역 가운데 하나였던 위안스카이는 대통총에 취임하고 곧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1915) 황제를 끌어내렸던 이가 다시 황제가 되었다. 그 이후 중국은 적지 않은 혼돈에 휩싸인다. 그토록 어지러운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사람들의 정신이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왔다’며 호들갑 떨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구경꾼이었다. 루쉰이 환등기 사진에서 경험했던 그 구경꾼.


그 구경꾼은 언제든 짐승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루쉰의 글을 읽어보면 당시 혁명가의 죽음을 구경하였을 뿐만 아니라 혁명가가 흘린 ‘피’를 구하러 돌아다닌 대중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의 피가 약이 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희생 앞에 군침을 삼키는 사람들. 정말 사람의 정신을 바꿀 수나 있을까? 이 두터운 시대의 심연을 어떻게 건너가야 할 것인가?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는 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그렇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이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 보겠노라 대답했다.
- <외침: 서문>, 같은 책


루쉰에게 실려 있는 것은 냉소에 가깝다. 그는 희망보다 절망을 먼저 생각했다. 눈 앞에 있는 두터운 적막의 벽을 깨뜨릴 희망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거꾸로 어디 없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루쉰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처럼 조심스러운 희망일 뿐이다. 그의 말을 곱씹어 보면, 희망이란 있다고 하기보다는 없다고 할 수 없다는 데 가깝다. 나름의 확신, 깨울 수 없다는 확신이 있으나 그 확신이 희망을 다 집어삼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문인의 삶을 시작한다.



무지에서 방황하려 하오


1918년 <광인일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문인의 삶을 시작한다. ‘본격적’이라 함은 그전에 쓴 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19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쓰고 논쟁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관 위에는 ‘민족혼民族魂’이라는 커다란 걸개가 덧씌워졌다. 그 이후 루쉰은 새로운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신으로 불리었다. 새로운 중국의 정신으로 루쉰이 공자를 대신하게 되었다 평가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신중국의 얼굴, 마오쩌둥이 루쉰을 글을 사랑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루쉰의 면모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한 번쯤을 던지기 마련이다. 루쉰이 살아있다면 마오를 보고 무어라 말했을까? 마오 역시 루쉰의 이런 면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루쉰 사후 20년이 지나 누군가 마오에게 지금 루쉰이 살아 있다면 어땠을까를 물었다 한다. 이때 마오는 감옥에서 글을 쓰고 있거나 어떻게 되는지 알고 가만히 있었을 거라 말했다고.


흔히 루쉰은 중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거꾸로 루쉰의 글에서 중국을 읽어낼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말하듯 나 역시 루쉰의 죽음, 1936년의 죽음은 역사의 추이를 보았을 때 그 개인에게는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벌어진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을뿐더러, 신중국의 폭력적인 문화탄압(문혁)을 겪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중국이 그를 ‘민족혼’이라 부르며 그를 중국인,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그 중국인으로 부른다 하지만 과연 그를 중국인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도리어 그는 낡은 ‘중국인’에서 벗어나려 했던 인물이지만 중국인이 되지는 못한 인물이다. ‘중국’과 중국 사이 절묘하게 끼어 있는 삶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그의 생몰연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이 때가 어느 때인지 모르게 잠들어 있을 때 그림자가 다음과 같은 말로 작별을 고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천당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내가 싫어하는 것이 지옥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내가 싫어하는 것이 미래의 황금 세계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그런데 그대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오.
동무, 나는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소. 나는 머무르지 않으려오.
나는 원치 않소!
오호오호, 나는 원치 않소. 나는 차라리 무지無地에서 방황하려 하오.



동무, 때가 되어 가오.
나는 암흑을 향하여 무지無地에서 방황할 것이오.
그대는 아직도 나의 선물을 기대하오. 내가 그대에게 무얼 줄 수 있겠소? 없소이다. 설령 있다고 하여도 여전히 암흑과 공허일 뿐이오. 그러나, 나는 그저 암흑이기를 바라오. 어쩌면 그대의 대낮 속에서 사라질 나는 그저 공허이기를 바라오. 결코 그대의 마음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나는 이러기를 바라오, 동무 —
나 홀로 먼 길을 가오. 그대가 없음은 물론 다른 그림자도 암흑 속에는 없을 것이오. 내가 암흑 속에 가라앉을 때에, 세계가 온전히 나 자신에 속할 것이오.
- <들풀: 그림자의 고별>, 루쉰전집


그의 말을 빌리면 이는 적막의 공간, 미쳐 무엇이라 이름 붙이지 못하는 그러나 혼돈의 골짜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말로 옮기면 무지無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무지에 방황하는 삶이었다. 천당도 지옥도 황금 세계도 아닌. 다만 이 어둠과 공허 속에 가라앉을 것을 이야기한다. 이런 그가 어찌 저 신중국의 국민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중국’과 중국 사이 거대한 심연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흔히 전통과 근대로 역사를 나누지만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절망과 희망 사이, 희망도 절망도 아닌 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따라서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이야기할 때조차 그것이 허망함을 이야기한다. 허망한 희망이라니 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아직도 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허망’ 속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면 나는, 여전히, 저 스러져 버린, 애닯고 아득한 청춘을 찾아야 하리라. 그것이 내 몸 밖의 것이어도 좋다. 몸 밖의 청춘이 소멸하면 몸 안 늘그막한 기운도 시들고 말 것이기에.
그렇지만 지금, 별도 없고 달도 없다. 말라 죽은 나비도, 웃는 것의 막막함도, 사랑의 춤사위도 없다. 그러나, 청년들은 평안하다.

나는 몸소 이 공허 속의 어둔 밤과 육박하는 수밖에 없다. 몸 밖에서 청춘을 찾지 못한다면 내 몸 안의 어둠이라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어둔 밤은 어디 있는가? 지금 별이 없고, 달빛이 없고, 막막한 웃음, 춤사위치는 사랑도 없다. 청년들은 평안하고 내 앞에도, 참된 어둔 밤이 없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 <들풀: 희망>, 같은 책


절망도 희망도 모두 허망하다. 허망이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다. 그는 어둠을 몰아내고자 하나 빛으로 투항하지 않는다. 그의 삶은 빛을 향하지 않는다. 켜켜이 쌓인 어둠에 깊이 감싸여 있을 뿐이다. 암흑 속에 가라앉을 때 세계가 온전히 자신에게 속하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이 어둠 속에 그는 평안하다. 그의 글에서 밤이 그토록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밤이란 빛이 사라진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빛이 어둠을 몰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낮과 낮, 그 ‘사이’의 시간. 그러나 거꾸로 어둠이야 말로 본질이 아닐까? 그림자가 늘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아무리 밝은 빛이라 해도 그림자를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저 옛날 철학자의 말처럼 그림자는 더 큰 그림자에 들어갈 때에만 사라진다. 어둠을 몰아내려는 자, 그는 세계를 몰아내려는 사람이다. 어둠에, 암흑에 가라앉을 때에만 세계가 온전히 자신에게 속한다는 그 말을 기억하자.


따라서 그가 ‘길’을 이야기할 때 그 길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길이 아니다. 거기에는 지도도 표지판도 없다. 당연히 특정한 지향도 없다. 길은 다만 임시적이다. 따라가야 할 길이 먼저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 길이다. 길-道의 새로운 발견. 그것은 있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길이 여기 있다.


몽롱한 가운데 바닷가 푸른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 검푸른 하늘엔 노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외침: 고향>, 같은 책


그가 말하는 땅이란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대지를 일컫는다. 아마도 그 땅은 앞서 그가 방황하려 했던 무지無地에 가까울 것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 본연의 대지. 그래서 나는 그를 ‘무국적자’라 이름 붙였다.



값싼 희망을 버리자


루쉰은 청년을 이야기했던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청년은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문제는 늘 이야깃거리에만 머문다는 데 있다. 누구나 청년을 이야기 하나 거기에는 청년이 빠져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낡은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도 아팠으니 너희도 아픈 게 당연하다는 꼰대들의 청년론은 이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으라는 인고론忍苦論, 노력만이 결실을 맺는다는 노오력론努-力論, 희망을 품으라는 희망론希望論까지 이야기는 늘 닮아 있다. 청년의 문제는 그들이 배제되어 있다는 현실에서 출발하는데 이들은 유령 같은 낡은 청춘을 들먹이며 너희가 주인이라 말한다.


저들은 헬조선 청년이 가진 박탈감을 모른다. 한 사회의, 국가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이 어떤 박탈감은 낳는지 별 관심이 없다. 한 때의 정상적인 삶이 구성되지 않는 현실을 모른다. 한 저자의 말처럼 정말 이 땅에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아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청춘을 위한 사회도 없다>


지난 100년, 루쉰의 삶에서 오늘 우리의 삶까지 국가 만들기를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현실을 보면, 과연 그것이 성공했는지 의문이다. 건국 100년, 어떤 이들의 말을 빌리면 6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나라다운 나라’를 이야기한다. 여기 하나의 질문을 더하자. 지금까지 피땀 흘려 이루었다는 이른바 ‘조국’이란 누구의 것이었는가? ‘나의 나라’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더 익숙한 것을 보면 여전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누군가의 나라’를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린다.


최근 한 철학자는 <네가 나라다>라는 책을 내었다. ‘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이라는 부제와 함께. 그는 ‘타율적 강제에 의하지 않은 능동적 주체로서의 국가와 그것을 구성하는 주체적 개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 척박한 땅에서! 한 번도 주인이 되어보지 못한 세대가 ‘능동적 주체’가 된다는 건 무슨 말인가?


적막함과 허망함이야 말로 이런 어지러운 시대를 담아내는 적절한 말이 아닐지. 어디로 달려가기 전에 우선 멈춰보아야 한다. 쉽게 값싼 희망을 이야기하지 말 것. 허망한 시대에 던지는 희망은 허망을 지우기는커녕 희망의 허망함을 드러낼 뿐이다. 밝은 미래의 주인공은 결코 오지 않을지 모른다. 노오력이 성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대학 졸업장이 안정된 직장을 선물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껏 실패해도 좋은 자유를 가져봅시다.
실패해도 멈추지 말고 다시 도전해봅시다.
성장하는 짜릿함을 이기는 즐거움을 알아갑시다.
이곳은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한 플레이 그라운드.
플레이를 멈추지 마세요. 즐거움을 플레이하세요.

시대의 잠언이라 할 저 말 뒤에 붙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Google Play’ 오늘날 도전은, 성장은, 함께 함은, 즐거움은 대체 어디에 있는지 묻게 만드는 잠언이다. 하긴 게임이야 말로 희망의 화신 아닌가. 하는 만큼 얻는다. 레벨이건 보상이건.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기에도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현질’, ‘가챠’ 따위가 이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리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모르겠다. 결코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지를 방황한, 허망을 노래한, 어둠 속에 침잠한 루쉰을 만나보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의 발걸음은 주저하는 우리의 발걸음과 닮았다. 그의 방황에 우리도 공명하는 삶이 있을 것이다. 그가 길이라 불렀던 무엇, 허망한 희망, 절망을 끌어안은 희망, 절망을 절망하지 않는 법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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