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시(Halsey)
양극성 장애와 양성애, 지독한 가난과 어린 시절의 자살 시도까지. 할시 자신이 밝힌 것이지만 그는 스스로 그것들에 규정되지 않기를 바랐다. 정규 3집 < Manic >에 다다르기까지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디스토피아를 토해냈다. '황무지'를 뜻하는 첫 번째 정규작 < Badlands >로 내면의 어두움을 표출했고, '로미오와 줄리엣' 콘셉트를 담고 있는 두 번째 정규작 < Hopeless Fountain Kingdom >으로 절망에 찬 이들의 사랑을 노래했다. 이렇듯 할시의 음악은 그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할시가 세 번째로 내놓은 정체성은 앨범 제목에 있다. Manic, 조증과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두 가지 뜻을 내포하는 이 단어는 양극성 장애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앨범은 'Ashley'로 그 시작을 알린다. 할시(Halsey)는 그의 본명인 애슐리(Ashley)의 철자를 조합해 만든 예명인데, 뮤지션으로서의 할시와 본래 자신의 모습인 애슐리 사이의 괴리감을 노래한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이들 사이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었지 / 어찌 된 일인지 매일이 더 힘들고 고단해'라는 가사로 괴로움에 빠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 음반이 이야기하는 것은 '혼란'이다. '사랑이 오히려 나를 망가트린다'는 가사의 'Graveyard'는 16비트로 쪼개지는 급박한 리듬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대중성까지 놓치지 않는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You should be sad'는 간주에서 강렬한 일렉 기타를 가미해 감정의 고조를 연상시키며, 두 곡 다 절망과 분노를 노래하지만 터질 듯 터지지 않는 편곡이 곡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반면 '다 싫어'라는 뜻의 'I hate everybody'는 메이저 코드 진행을 사용해 비교적 밝은 분위기를 띠며 변덕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재치있게 풀어낸다.
'불행을 딛고 성공한 팝스타' 같은 서사 담긴 수식은 그의 앞에서 무색하다. 상처를 극복하기보다, 이를 영리하게 음악적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할시는 분명 영향력 있는 팝스타가 됐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절망이 잠재한다. 다만 이것들이 그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할시 특유의 암울한 기운은 오히려 그의 음악적 색깔로 자리 잡았고, 대중성도 충분히 확보했다. 절망을 전면에 내세운 담대함이 실(失)이 아닌 득(得)이 됐다.
- 수록곡 -
1. Ashley (추천)
2. Clementine
3. Graveyard (추천)
4. You should be sad (추천)
5. Forever ... (is a long time)
6. Dominic's Interlude
7. I HATE EVERYBODY (추천)
8. 3am
9. Without Me
10. Finally // beautiful stranger
11. Alanis' Interlude
12. Killing boys
13. SUGA's Interlude
14. More
15. Still learning
16. 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