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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y 03. 2019

애호박이 되고 싶다

오글거리는 예찬론을 넘어

애호박이 되고 싶다.
애호박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애호박이 부럽다. 조미료를 더하지 않아도 고유한 맛을 가진 너처럼 말이다.
깊고 풍성한  사람이 되고 싶다. 타자를 아우르며 넘어가게 하는 사람이고 싶다.


갑작스러운 고백 행보에 공방 구석 사무 실책 상위 반찬통에 조골 조골 하게 기름칠된 애호박이 놀랄 일이겠다.

애호박아, 갑작스러운 고백에 많이 당황했지?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당황스럽단다. 세속 풍랑에 향방을 잃은 범인들에게 너를 널리 알리고자 두 팔을 걷고 외치려 한다.  멋진 일이듯 하다.


-잠시 버퍼링 중(도시락을 2/3 먹다 말고 애호박의 맛에 심취했다가 허기가 불러 다시 식사를 마무리함)


진작 이맛을 알았더라면 나의 식탁이 얼마나 풍성했을까 생각한다. 어떤 열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 애호박의 색감은 미학 그 자체다. 창조주가 식물을 만들 때 이런 채소를 구상한 지혜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어릴 때 몰랐고 젊었을 때도 애호박은 나의 괄시의 대상이었다. 야채를 그리 즐기지 않았다. 그나마 영양의 균형을 위해 섭취하는 야채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던 애호박이 나의 최애로 급부상한 이유는 따로 있다. 딸아이가 티브이 앞에서 간이 도마 위에 애호박을 썰기 시작하던 풍경부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딸아이는 저 혼자 밥을 차려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중2병 환우다. 햄버거 피자 치킨을 즐기는 동시에 한식 상차림에 열혈 반응하는 식도락가다. 저 혼자 밥상을 차릴 때면 꼭 곁들이는 야채가 있으니 애호박이다.

장보는 날이면 미리 다짐을 시킨다. 애호박 마~~~ 니 사놓으라는 부탁이다. 마트가 코앞인데도 미리 사놓아 당장 먹고 싶을 때 꺼낼 수 있도록 냉장고에 상시 배치를 부탁한다.


그녀의 요리 수순은 이렇다. 가스레인지 불을 댕기고 기름을 둘러 예열을 한다. 애호박은 일반적 두께보다 두껍게 썬다. 그만하면 식감도 살고 살캉거리는 맛이 찰지다. 내가 안 가르치고 스스로 저의 혀가 알아챘으니, 그녀의 진로는 음식 관련이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적당한 예열에 호박을 넣어 빠르게 볶고 수분이 다 빠지기 전 불을 끈다. 첨가물은 넣지 않는다. 소금을 넣지 않아도 단맛과 짠맛이 난다는 사실을 아이를 통해 알았다. 그녀의 식탁은 햇양파볶음, 애호박볶음에 내가 쟁여놓은 반찬과 국으로 진수성찬이다. 이렇게 자세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내 딸이지만 스스로 차려먹는 게 너무 기특해서라고 대놓고 자랑질해본다. 우리나라에 중2 자식을 이렇게 기특해할 수 있다는데 감사의 기도를 드려본다.



     

그녀의 식탁과 반대로 나의 식탁은 간소하다. 하루 두 끼를 도시락으로 대체한다. 내면의 어떤 신념 때문인지 배달음식을 불신하기도 하고, 높은 칼로리로 늘어질 중년 뱃살을 염려한 조치다. 간소하지만 간단한 반찬 한두 가지로 한 그릇 비우는 것은 순삭이다. 찬의 부족으로 목이 메이지 않는다. 목표가 있다면 새 모이만큼 먹어도 기쁜 것이다.

     

오늘 본의 아니게, 어제 그녀가 썰어놓고 쟁여둔 애호박을 아침에 볶아 반찬으로 싸왔다.

텁텁한 돈가스 한입 잡곡반 한 숟갈에 목이 메는데 애호박 몇 점 곁들면 금상첨화요 화룡 점점이다. 천연의 맛과 밥의 조화는 대체 불가다. 목구멍에 미끄러지듯 넘어갈 때 속이 시원해진다. 막힌 것이 뚫리는 최고의 기분에 다음 숟가락이 저절로 입술 앞에 대기하고 있다.


     


  

     

보통의 것이 보통이 아닌 만족감을 주는데 가격 또한 저렴하다는 사실에 고개를 숙여 감사한다. 애호박 너는 나의 마음 모르리~

     

애호박을 향한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눈치챈 독자 몇이 있을까 해서 몇 줄 덧붙이고 싶다. 두 끼를 공방에서 환기를 해가며 먹는 이유를 앞에서 밝혔지만 더 근원적인 이유는 시간 때문이다.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일분일초도 아깝다. 30대를 육아라는 노동으로 탕진한 것만 같다. (가치가 있었지만 목표 없이 버텨낸 사실이 안쓰럽다는 관점에서 탕진이다) 늙음이 머잖았다는 현타를 몸소 느낀다. 매일 아침 방문을 열기 전 노쇄함이 문 앞에 엎드려 있을 것만 같다. 시간은 화살처럼 빠른데 그 꽁지라도 붙들고 멈추게 하고 싶다. 식사라는 포만감을 위한 헤맴이 사소롭게 보여서 공방에 시작부터 끝까지 하루 14시간 가까이 붙어있다. 정성스러운 식사가 주는 정서적 가치는 이미 알고 실천했었다. 지금, 여기, 나에게는 다른 문제다.

     


목표가 있다면 내가 선택한 소박함은 결코 누추하지 않다.

옷을 살 시간도 없지만 구색에 맞게 입으려 쇼핑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렇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깔맞춤 하기 위한 현대인의 대가 지불이 너무 크다.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으면 익숙한 옷이 나의 스타일이 된다. 나는 타인의 시선과 나의 자유로운 마음의 간극을 공방 앞치마로 이어 본다. 공방 앞치마가 3벌. 원피스형 앞치마를 장착하고 아이들 앞에 서면 아이들은 말을 건물 짓듯 지으려 한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지어보려고 달려든다. 공방장의 앞치마의 위력이다. 그리고 나는 그 뒤에 나의 유행에 둔감한 스타일을 가린다. 좋은 일이다. 내게 좋으면 좋은 것이다.


  


도시락을 빛나게 해 준 애호박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목 넘김을 시원하게 하는 기껏 야채지만 궁중요리의 품격을 선사하는 고결한 애호박이 되고 싶다.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각종 맛의 향연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애호박이 그렇다. 매일 밥상에 애호박을 올려 깨달음을 되짚을 참이다. 애호박 사러 지금 나선다. 공방 문을 얼른 닫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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