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당신의 상처를 인정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순 있겠다 싶었다.
내게 난 상처를 무시할 순 없어도 미뤄둘 순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당신을 향했던 배려와 인내는 고작 실망과 미움으로 돌아왔고,
스스로를 간과한 이타적 희망은 결국 곪아버린 외로움을 가져왔다.
나는 신을 닮고 싶었지만 신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을, 그리고 당신도 담고 싶었지만 잔은 넘쳐버렸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당신의 아픔을 모두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당신의 상처를 모두 견뎌낼 수 없는 것도 내 못남이 아니다.
당신이 가진 세상과 기준들에 꼭 맞을 수 없는 것은,
스스로 좇던 그럴듯한 세상과 기준들에 꼭 닿을 수 없는 것도.
그래, 그럼에도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