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도쿄 긴 교토 (22) - 07.08
안 올 것만 같던, 마지막 날입니다. 드디어 내일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17박 18일(도쿄 3박)의 긴 여정이 드디어 끝나네요. 오늘이 드디어 17박째입니다. 오늘의 계획은 '쇼핑'입니다. 여행하면서 쇼핑을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조카가 생긴 이후에는 쇼핑을 스케줄에 넣게 되더군요. 그리고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마실 니혼슈도 한 병 사가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
카모(鴨) 강을 건너 교토가와라마치(京都河原町) 역에서 가라스마오이케(烏丸御池) 역까지 열차를 한 번 갈아타고 갑니다. 장마 기간이라던 교토는 오늘도 맑네요.
가라스마오이케 역 주변은 뭔가 세련되고 번화한 느낌입니다. 고급 맨션들도 많고요. 이 동네 곳곳에 숨은 맛집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이미 중국인들에게는 유명한 곳인지 중국인 관광객들이 골목골목에서 나타나더군요.
어쨌든 지난주에 점찍어놨던 야마야(やまや)에 도착했습니다. 규모가 큰 리커샵이었으니까 괜찮은 니혼슈도 한 병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습니다. 야마야는 와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긴 했지만 니혼슈나 쇼츄는 보유량이 적더라고요. 그리고 고급(?) 니혼슈는 더더욱 적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안주만 좀 샀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프리미엄 니혼슈를 취급한다는 SAKE CUBE라는 가게를 찾아갔는데, 거기서도 마음에 드는 니혼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마음에 드는' 니혼슈라는 게 문제였습니다. 니혼슈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은데 도대체 뭘 사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머릿속에 아라마사, 지콘, 나베시마 같은 니혼슈의 이름은 들어 있는데, 이건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니었어요.
아주 쉽게 니혼슈 한 병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땡볕 아래 계속 걸어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골목을 걸어 다니다가 찜해놓은 우루루(閏, うるう)라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가벼운 런치 코스(스프+샐러드+파스타)가 1600엔이니까 꽤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냉스프와 샐러드는 아주 좋았습니다. 헌데 파스타가 너무 짰어요. 일부러 날 엿 먹이려고 이렇게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짰어요. 빵을 밥처럼 먹으면서 짠 기운을 극복했습니다.
좋은 니혼슈를 사려면 어디를 가야 하는 걸까요? 급하게 검색을 좀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교토에서 가장 규모가 큰 리커샵이면서 프리미엄 니혼슈도 많이 취급하는 가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열차를 타고 고조(五条) 역으로 갔습니다. 고조 역 앞에는 예전에 야간 개장을 가봤던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가 보이더군요. 단풍이 물드는 계절에 멋진 조명들을 켜서 야간 개장을 하는 곳입니다.
교토에서 가장 큰 리커샵 중의 하나인 타키모토 메이슈칸(タキモト 名酒館)입니다. 그 바로 옆에 보이는 와인 샵도 사실 같은 가게입니다. 내부에서 다 연결되어 있어요. 정말이지 엄청난 규모입니다. 사진으로 다 담기가 좀 어려울 정도.
프리미엄 섹션도 커다란 냉장고로 한쪽 벽면이 꽉 차 있습니다. 니혼슈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720ml 작은 병을 기준으로 1,000~1,500엔 정도가 일반적인 니혼슈고 2,000엔이 넘어가면 프리미엄 취급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5,000엔, 10,000엔 등등 비싼 것들은 한계가 없고요. 결국 여기서 친구들과 마실 적당한 니혼슈를 구매했습니다. TAX FREE는 안 돼요.
날이 너무 덥고, 술병도 들었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러 갔다가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잡아 탔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탄 택시네요. 부지런히 전차, 버스를 탄 나 자신 칭찬해~
일단 숙소에 들어가서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땀을 좀 식히고선 다시 쇼핑하러 나왔습니다. 이번엔 아버지와 조카의 선물입니다. 조카의 선물은 이미 정해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쇼핑을 했는데, 아버지 선물은 좀 어렵더군요. 뭘 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동생과 카톡 하면서 적당한 걸 골라서 하나 구매했습니다. 그럼 오늘의 할 일이 끝난 거네요. 쇼핑 끝~~
자, 그럼 이제 마지막 저녁은 뭘 먹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별생각 없이 우주라야(うずら屋)에 한 번 더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5시에 한 명! 예약이 되더군요. 도착해서 바로 생맥주 작은 것으로 하나 먹고, 샴페인을 한 잔 주문했습니다.
이어지는 야채구이의 행렬. 야마이모(참마)와 시로네기(흰 대파). 시로네기는 소금만 뿌린 것과 간장 소스를 뿌린 것 두 가지로 나옵니다. 확실히 이 집이 잘 굽는다는 게, 재료마다 굽는 방법이 모두 달라요. 대파는 손이 좀 많이 가는 스타일인데, 자르지 않고 대파 그대로 우선 직화로 굽습니다. 그러면 바깥 부분이 새까맣게 타는데, 탄 부분을 다 벗겨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릅니다. 쿠킹 호일로 작은 그릇을 만들어 그 위에서 자른 대파를 다시 한번 굽습니다. 파 안의 달달한 채즙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방법이죠. 그래서 저 대파는 엄청난 채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걸 먹고 나면, 다른 꼬치집에서 대파를 먹을 수가 없어요. ㅠㅜ
모모(다릿살)와 사사미 와사비(가슴살+와사비). 사진을 찍지 못한 세세리(목살)가 구석에 보이네요. 이날의 세세리는 전에 와서 먹었던 것보다 통통함이 좀 덜했습니다. 하지만 다릿살이 끝내줬어요. 그리고 소세지는 확실히 요기가 됩니다. 물론, 전 입이 짧기 때문에 굳이 소세지가 없어도 배를 채울 수 있지만, 궁금했어요.
자연산 에노키(팽이버섯)와 나스(가지). 에노키가 자연산이라 그런지 향이 엄청납니다. 나스는 그 크기와 모양이 익히 알고 있는 가지와는 좀 달라요. 교토의 야채라 그런 가요. 이것도 채즙이 많아서 그런지 시로네기처럼 두 가지 버전으로 나오는데요. 하나는 소금만 뿌린 것이고 하나는 타레소스를 뿌린 것입니다. 바깥쪽은 엄청 촉촉하고 심 쪽은 살짝 단단해서 식감이 느껴져요.
잉카노메자메(감자 종류)에 버터를 발라 먹으면 그것도 맛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와(껍질)로 마무리했죠.
오늘 니혼슈를 사러 돌아다니느라 고생하다 보니 나베시마(鍋島)의 메뉴판을 봤을 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게 그렇게 구하기 힘든 술이야? 그렇다면 마셔봐야지!!
나베시마 섬머문을 시작으로 총 4 종류의 나베시마를 마셨습니다. 사진에 찍힌, 잔에 담긴 양이 반잔(半合)입니다. 맛보기에 부족한 양이 아니어요. 종류마다 조금씩 뉘앙스가 달라지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반적인 퀄리티가 매우 높은 술이더군요. 왜 그렇게들 찬양하는 술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라마사는 두세 종류 마셔본 적이 있고, 나베시마도 마셔봤으니 이제 지콘이 남았네요. 지콘은 어떤 맛이려나.
지난번에 들렀을 때 브루고뉴 루즈가 너무 잘 열려 있었어서 한 잔 주문을 했는데, 아뿔싸 눈앞에서 새로운 병을 오픈하시네요. 아,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닌데. 역시 화사한 향을 내뿜던 지난번의 한 잔과는 아주 다른 한 잔이었습니다. 아쉽게도.
마지막 잔은 가고시마의 이모(고구마) 쇼츄인 하치만(八幡)을 소다와리로 마셨습니다. 배도 꽤 부르고, 술도 좀 취하더라고요. 문제는, 술에 좀 취하면서 '방에 들어가서 짐을 싸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그동안 신세 진(?) 가게에 들러 작별 인사를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다섯 시부터 시작했더니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은 시간이네요. 내일 비행기를 타야 하니 짐을 싸야 하는데... 더 마시기로 결심을 하다니...
미나미좌(南座) 극장은 오늘도 화려합니다. 그리고 저는 건널목을 건너 이제 숙소 근처의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쿠시카츠 가게인 이로도리()에 도착했습니다. 한번쯤 마시고 싶었던 덴키 브란을 주문했습니다. 어떻게 마시는 게 좋냐고 물어보니까 진저에일을 섞어 마시는 게 좋다고 하셔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요. 배가 부르니 평소에 시키지 않던 토마토를 안주로 시켰네요.
화장실에 갔더니 쥔장 두 분을 그려둔 그림이 있더라고요. 너무 똑같아서 혼자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니혼슈를 한 잔 주문했어요. 구루마자카(車坂)라는 술이었는데 준마이긴죠지만 준마이다이긴죠보다 맛있다고 설명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이미 취해서 맛은 기억이....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내일 돌아간다고 얘기했더니, 다음에 교토에 오면 또 들르라는... 뭐 그런 형식적인 인사들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숙소 2층의 르부아르(REVOIR). 어쩌면 가장 많이 들렀던 집입니다. 칵테일은 잘 못하지만 마셔 보지 못했던 위스키 보틀들이 있어서 한 잔씩 마시는 재미가 있었죠. 무엇보다도 손님이 적어서 저랑 대화를 해주는 마스터가 고마웠습니다.
오늘도 처음 보는 보틀을 한 잔 합니다. 티니닉 10년. 하이볼로 한 잔, 니트로 한 잔. 마시기 편한 스타일의 위스키였다고 기억해요. 그리고 과감하게 하큐슈 12년을 한 잔 합니다. 예전엔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였는데 이제는 가격이 너무 올라서 함부로 마실 수 없었거든요. 술 취한 김에, 오랜만에 교토에 온 김에, 오늘이 마지막인 김에 주문했어요. 역시 비싸더라고요. 그리고, 역시 맛있습니다. (그 가격을 지불할 맛은 아니지만)
이 정도 했으면 이제 짐 싸고 자야 하는데, 배가 좀 고프더라고요. 숙소 근처에 항상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교자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게 문 닫기 전에 달려갔어요. 에비스가와 교자나카지마(夷川餃子なかじま)라는 가겐데요. 아슬아슬하게 포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서 냉장고에 남아 있던 맥주들과 교자를 함께 먹고, 그걸로 부족해서 컵라면도 하나 끓이고, 거기에 마지막으로 디저트도 하나 먹었습니다. 특히 저 디저트! 저거 엄청 맛있습니다. 얼마 전에 트와이스 나연의 인스타에도 올라온 것 같았는데, 어쨌든, 아이스크림 브륄레라고 해야 할까요?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설탕 코팅이 브륄레처럼 올라가 있어서 그걸 부수면서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는 건데요. 진짜 맛있습니다. 모든 편의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세븐 일레븐에서 샀어요.
뭐, 이렇게 교토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습니다. 물론 짐은 잘 싸두고 잤고, 다음 날 택시를 타고 교토 역까지 가서 JR 하루카를 타고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간사이 공항은 너무나 비행기가 몰려서 그런지 한 시간 정도 출발 지연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별 탈 없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아마 다음 편에 에필로그를 쓰게 될 텐데요.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들이 좀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두 번째로 다녀온 여행인데요. 첫 번째로 다녀온 가고시마 여행과는 좀 다른 것들을 느꼈어요. 그리고 앞으로 '나의 여행'이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도요.
어쨌든, 오늘의 얘기는 여기서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