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일맞이 가고시마 여행 #2 - 키리시마 신궁
이번 여행은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이 아니었지만 딱 한 군데! 들르고 싶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키리시마 신궁(霧島神宮)입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곳이더라구요. 가까운 곳에 키리시마 신궁 역(霧島神宮駅)은 있지만 버스 배차 간격이 너무 길고 막차가 빨리 끊깁니다. 그래서 언젠가 렌터카를 빌려서 가고시마 만 주위를 빙~ 도는 여행을 계획할 때, 그때 키리시마 신궁도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번 여행 계획을 짜던 중, 키리시마 신궁 액세스 버스(霧島神宮アクセスバス)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고시마 공항 → 키리시마 신궁 → 키리시마 신궁 역으로 이어지는 버스인데요. 이것도 하루에 세 편 밖에 없습니다만, 두 번째 버스를 타고 신궁에 가면, 세 번째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갈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면 약 두 시간 정도 키리시마 신궁을 구경할 시간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걸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고시마 공항에 내려서 키리시마 신궁 액세스 버스의 티켓을 구매했습니다. 가고시마 공항버스 안내소에 가면 자동 발매기들이 있는데요, 그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직접 구두로 구매하면 됩니다. 이 티켓은 키리시마 버스 1일 탑승권이라서 한 장만 사면 몇 번이고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가고시마 공항에서 키리시마 신궁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리는데요, 버스가 굉장히 편안합니다. 특이하게 3열이나 4열이 아니라 2열!! 짜리 버스예요. 좌석 하나하나가 아주 여유롭습니다.
비록 일본어이긴 하지만 버스 주위로 지나가는 관광 명소들을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키리시마 온천지구를 지나갈 때 '사카모토 료마와 그의 부인이 요양하던 곳이라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지로 불린다'는 설명도 해주더라고요.
아름다운 숲 속을 달려 드디어 키리시마 신궁 앞의 로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진짜 여행의 시작이네요.
아직 호텔에 체크인을 한 것이 아니라서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있거든요? 키리시마시 관광 안내소에서 1,100엔에 짐을 맡아준다는 걸 검색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관광 안내소 방향으로 트렁크를 끌고 내려가는데, 어라? 바로 앞의 카페에서 단돈 300엔에 짐을 맡아준다는 안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안내소까지 갈 필요가 없네요.
가벼운 몸으로 이젠 키리시마 신궁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빨간 다리를 건너자 높은 계단이 보이고, 그 옆에는 '키리시마 신궁'이라는 한자가 쓰여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고, 넓은 광장을 지나서, 높다랗게 자란 나무들 사이의 길을 따라 키리시마 신궁까지 올라가는 길은 그리 길진 않았습니다.
이번 여행에 굳이 이곳을 들러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세 신궁(伊勢神宮), 미야자키 신궁(宮崎神宮) 등과 함께 일본의 건국신화인 천손강림의 신화와 관련이 있는 중요한 신궁입니다. 이세 신궁은 일본 황실의 시조신인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곳이고, 미야자키 신궁은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을 모시는 곳이죠.
그렇다면 키리시마 신궁은? 네, 바로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배경 설정이 왠지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죠?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하고 말이죠. 그렇게 따지면 우리의 마니산과 비슷한 곳이 바로 키리시마 신궁입니다.
아, 물론 학술적인 배경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저의 개인적인 느낌이에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 주세요.
참고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신사(神寺)와 신궁(神宮)은 비슷하지만 모시는 신이 조금 다릅니다. 일반적인 신을 모시는 곳이 신사고, 신궁은 황실이나 천황의 조상신을 모시거나 황실과 인연이 깊은 신을 모시는 곳을 신궁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신사는 한 동네에도 몇 개씩이나 보이지만 신궁은 신사만큼 많지 않죠.
키리시마 신궁은 황실의 조상신을 모시는 곳이니까 신궁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곳입니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외국인도 꽤 많이 보여요. 가고시마는 꽤 시골이고, 키리시마는 더더욱 외진 동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외국인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외국인이네요?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의 여유시간은 두 시간. 시간이 빠듯할 줄 알았는데요. 의외로 신궁 구역이 그리 넓지 않아서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느린 발걸음으로 충분히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점심 식사까지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버스 정류장이 있는 로터리로 내려갑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