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생일맞이 가고시마 여행 #9 - 하카타 키키
사실 제가 일본에 여행을 가는 이유 중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다양한 술을 보다 저렴하게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위스키, 와인, 니혼슈, 쇼츄 등 한국의 전통주가 아니라면 일본에서 마시는 것이 더 다양하고 저렴합니다. 특히 저처럼 주로 혼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은 와인이나 니혼슈를 '잔으로' 판매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선택의 폭도 넓죠.
그래서 일본에 여행을 가면 낮에 돌아다니는 관광보다 밤에 돌아다니면서 '음주 활동'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그 마지막에는 항상 '라멘'을 먹습니다. 일본에는 '해장' 문화가 한국만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라멘으로 미리 해장을 해두기 위함이죠.
라멘을 먹을 때 저는 항상 '하카타 라멘'을 찾습니다. 일본에는 지역별로 아주 다양한 라멘의 형태가 존재하는데요. 하카타 라멘은 그중에서 돈코츠 라멘의 원형이자 전국적인 라멘붐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라멘이죠. 하카타 라멘의 특징이라면 뽀얗고 진한 돼지뼈 육수에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얇은 면, 그리고 면의 익힘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것 등이 있는데요. 전국의 돈코츠 라멘들은 결국 이 하카타 라멘에서 파생되어 각 지역의 변형이 일어난 라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튼 저는 바로 그 '진한 국물'과 '가느다란 면' 때문에 하카타 라멘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일본의 어느 지역을 여행하더라도 결국 마지막엔 그 동네에서 유명한 하카타식 라멘집을 찾아내곤 합니다.
서론이 길었는데요. 그동안 가고시마 여행을 갔을 땐 하카타 라멘의 전국 규모 체인 중 하나인 단보(暖暮)라는 가게에서 라멘을 먹곤 했습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후쿠오카가 아닌 도시에서 이 정도의 라멘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이었어요.
헌데 이번에 새로운 가게를 추천받았습니다. 텐몬칸 공원(天文館公園) 옆에 있는 하카타 키키(博多喜喜)라는 가게예요. 이름부터 '하카타'를 쓰고 있으니 뭔가 믿음이 가지 않나요? 심지어 가고시마의 텐몬칸이 본점인데 후쿠오카의 하카타에까지 지점을 냈어요!
가게에 들어서서 메뉴판을 보니 하얀 라멘(白), 검은 라멘(黑), 붉은 라멘(赤)이 있더라구요. 아마도 하얀 것이 원형, 검은 것이 변형(가장 인기), 붉은 것은 매운맛을 가미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얀 것에 삶은 달걀을 넣은 라멘, 그러니까 시로 니타마고이리(白, 煮卵入り)로 주문했습니다. 당연히 면은 카타(硬め)로 주문했죠.
오, 비주얼을 보니, 기대가 커졌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하카타 라멘일 것 같은 기대감.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면은 가늘고, 제대로 카타입니다. 심부의 식감이 살아 있는, 스파게티로 치면 알덴테의 면. 육수는 깔끔하지만 진한 돈코츠 육수입니다. 제 취향이라면 좀 더 끈적하고 냄새도 심하게 진한 육수도 괜찮긴 한데, 이렇게 깔끔하니까 먹기는 훨씬 편하네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두 번이나 방문했네요. 아니 아쉽게도 두 번밖에 방문하지 못했다고 해야겠죠. 이번 여행은 평소와 다르게 늦은 시간까지 '음주 활동'을 이어간 날이 이틀 밖에 안 됐거든요.
어쨌든 가고시마에서 늦은 시간에 해장을 위해 라멘을 먹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새벽 4시까지 영업하니까 돈코츠 라멘으로 해장하고 호텔로 돌아가기엔 충분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