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한일옥, 완주옥
뭔 일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팠던 하루가 지났다. 호텔 근처에 있는 약국에서 약도 사다 먹고, 편안한 호텔 방에서 푹 누워 쉬고, 저녁엔 뜨끈한 콩나물 국밥으로 속을 좀 달래고, 알코홀 없이 하룻밤을 보냈더니 컨디션이 최상의 상태. 여행을 출발하기 전 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 느낌.
아침 일찍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개운한 마음으로 군산에서의 하루를 시작~!!
오늘 오전은 군산 시내 그러니까 '근대 유산 거리' 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려면 차는 버려두고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의외로 버스 배차 시간이 길다. 그리고, 아 덥다. 날씨가 좋은 건 다행이지만 걷느라 고생 좀 하겠는걸?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달려 버스에서 내렸다. 첫 번째 목적지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군산을 처음 와보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군산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최근 엄청 유명해진(?) 군산은 내 기억 속의 군산과 좀 다르다. 한적한 거리와 조용한 바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 그러고 보니 차를 가지고 내려온 것은 처음이구나. 항상 기차를 타고 장항에 내려서 배를 타고 군산에 왔었는데...
박물관 가는 길에 특이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떠올려보면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나오는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큰 항구라 번화한 곳이었다. 아직도 그 흔적으로 일제 시대에 지은 적산 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정도.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의 건물들.
군산 여행을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군산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확인하고, 몰랐던 것들을 알 수 있었던 곳. 앞으로 거리 구석구석을 걸으며 보게 될 것들에 대해서 먼저 공부하는 느낌이었달까.
근대역사박물관에는 '건축'에 대한 얘기가 그리 많지 않아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가는 길. 옆에 군산 근대미술관(↗)이 보인다. 들어가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입구까지만 들어가 보고는 그냥 돌아서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쉬운 선택이었네.
지금 잠깐 검색해보니 근대미술관은 '일본 18 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라고.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군산 근대건축관(↗).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하던 건물의 내부. 관심이 있는 내용이다 보니 꽤 오래 구경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진 찍은 시간들을 비교해보니 한 2-30분 정도 구경한 듯.
이런 식으로 군산의 근대 건축물 모형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군산에 이렇게 많은 (일본식의) 근대 건축물들이 있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지도에 모두 체크해두고 일일이 다 방문해볼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봤지만, 굳이 '모두' 봐야 하나...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보이겠지. 하는 생각.
사실 위의 모형이 바로 군산 근대건축관이었다. 건물 모형과 실제 건물의 비교샷. ㅋㅋㅋ
건축관을 나와서 '근대 유산 거리'쪽으로 발길을 옮겨보니 역시나 특이한 건물들이 보인다.
마음 내키는 대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착한 곳. 번호판도 없이 '다림이의 차'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이 차는 바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심은하(다림이 역)가 타고 다니면서 주차 단속을 하던 차다. 초원 사진관(↗)은 한석규가 일하던 바로 그 사진관. 아마 군산을 여행하는 사람들 모두가 들르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 그래서 잠깐 사진만 찍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카페의 이름도 8월의 크리스마스(↗). 방문했을 당시 갓 오픈한 상태라 메뉴판도 임시였고, 살짝 어수선한 느낌이었달까? 근처에 게스트하우스가 많은 건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몇 분 오셔서 카페 사장님께 이런저런 조언과 환영의 인사를 하는 것이 테이블 너머로 들렸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잠깐 쉬다가 다시 출발!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히로스 가옥(↗)으로. 아무래도 군산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 중에서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집이 아닐까 하는 짐작으로 다른 곳들을 포기하고 이곳을 선택했다. (사실 추천도 있었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핸드폰을 들이댔는데 마당이 그리 크지 않아서 도저히 화각이 안 나온다. ㅠㅜ 그래서 파노라마로도 한 컷.
6월의 화창한 초록이 마당에 가득했다. 그냥 집을 빙 둘러보기보다는 집 안에서 마당을 내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풍경.
아, 그러고 보니 여기가 장군의 아들 촬영지였던가?
동국사를 향해 걷는 도중에 만난 재미난 건물. 앞에 보이는 적벽돌에 큰 유리가 붙은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는 것 같고, 뒤에 보이는 회색 벽돌 건물은 근대 건축관에서 봤던 건물 같은데... 뭔지 기억이 안 난다.
근대 유산 거리를 벗어나 동국사로 들어오니 한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 물론 평일 오전이라 근데 유산 거리도 한적했지만.
대웅전 앞의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조용히 들리는 풍경 소리와 바람. 햇살이 뜨겁지만 그늘에서는 아직 시원한 6월의 바람.
나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는 건지, 입구로 들어올 때는 햇살에 한껏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점점 부드럽게 표정이 변해간다. 여유로워서 좋은 곳.
페이스북을 통한 추천이 있어서 '오룡재길' 방향으로 가본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금광 공원. 작은 공원일 줄 알았는데 꽤나 큰 공원이다. 지도에는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으니 '오룡재길'과 '오룡재 안길'을 찾아서 걷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오룡재길에는 '오룡고가'가 있다. 말이 고가도로지 작은 다리 같은 느낌.
어쨌든 오룡재길 옆의 금광 공원에서 내려보면 아까 걸었던 근대 유산 거리 방면을 볼 수 있는데, 엄청난 뷰를 보여주거나 하진 않는다. 그래도 멀리 바다가 보이기도 하고 오룡재길을 따라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들이 꽤 좋아서 산책해볼 만한 길이다. 단, 언덕이라 그리 쉽기만 한 산책길은 아니다.
슬슬 배가 고파져서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아차, 그래도 군산인데 이성당은 들러야 하나?' 싶어서 이성당 빵집(↗)을 들렀다. 평일에도 줄을 서야 한다는 경고(?)들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줄까지 서진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많긴 엄청 많더라. 다들 빵을 전투적으로 사는 모습이 좀 특이하기도 했다.
난 간단하게 빵 3-4개만 집어 들고 나왔다. '분명히 이거 다 못 먹을 텐데...'라는 걱정과 함께.
드디어 점심시간. 바로 전날까지 위가 아팠던 사람이니 무리하지 않고 속이 편안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페이스 북을 통해 정말 많은 분들이 다양한 식당을 추천해주셨는데, 최종 낙찰은 한일옥(↗)의 소고기 뭇국. 원래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한데다가 이 집 음식이 꽤 맛있었다. 손님이 엄청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국물을 한 번 떠먹어 본 다음에는 정신없이 먹느라 손님이 많건 말건;;;;
보통 하나의 포스팅에 지도를 하나씩 첨부하는데, 이번에는 하나 더 넣어봤다. 군산 시내에서 도보로 걸어 다닌 부분만 잘라내서 확대한 지도. 요런 식으로 보면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확 아실 수 있을 듯.
알차게 오전을 보냈더니 꽤 피곤해졌다. 날이 더워서 옷이 땀에 다 젖었을 정도. 그래서 일단 호텔로 복귀~! 돌아가는 버스는 금방 탈 수 있었다. 시간표가 어찌 되는 걸까?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근처에 빨래방이 있는지 검색. 군산대 앞에 코인 빨래방이 있다.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서 차를 몰고 나갔다. 제대로 된 주차장은 없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동네 골목골목을 뒤지다가 적당한 자리 발견! 어차피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되니까.
뭐 이리 빨래를 자주 하나? 싶겠지만, 내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섬에 들어가야 해서 미리미리 빨래를 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애초에 준비한 게 일주일치의 속옷과 양말이니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빨래를 해야 하기도 하고.
군산대 앞에는 놀랍게도(?) 스타벅스가 있었다. 빨래를 돌려놓고 스타벅스에 가서 아커벤헤(아이스 커피 벤티 헤이즐넛)를 사 왔다. 캬, 오랜만에 느끼는 도시의 맛.
뜬금없지만 나는 아메리카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뽑은 커피보다 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좋아한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오늘의 커피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물이 아니라 드립으로 내린 커피가 나온다. 그래서 여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아이스커피를 주문한다.
빨래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내일의 일정을 다시 확인했다. 전화를 걸어 차를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 숙소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체크가 필요했다. 내일의 일정은 20년 만에 다시 찾는 고군산군도의 선유도. 새만금 방조제 덕분에 차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곳. 아, 이 얘기는 다음 포스팅에 하기로 하고.
짐과 일정을 정리한 다음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로 나왔다. 술을 마셔야 하니까 차를 가져올 순 없었고, 호텔 앞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시간표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꽤 시간이 걸린다는 걸 오전에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배가 좀 많이 고프기도 했다.
기사님께 완주옥(↗)으로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대번에 아신다. 한때 군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식당이라고. 요즘엔 너무 비싸서 잘 안 가신다는 말씀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할 때 즈음 '이 앞이 엄청 번화한 곳이었지 왼쪽엔 완주옥, 오른쪽엔 장미칼국수. 정말 유명한 거리였어'라고 한 말씀 하신다.
칼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천만다행. 안 그랬으면 장미 칼국수(↗)도 먹어보고 싶었을 뻔.
예전엔 불갈비라고 불렀다는 완주옥의 떡갈비 2인분(역시나 1인분은 주문이 안 된다)과 미니 곰탕. 미니 곰탕은 생각보다 별로였지만(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밥과 고기를 먹을 때 국물이 있으니 좋긴 했다.
떡갈비는 담양이나 광주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 잘게 다지질 않아서 씹는 맛이 엄청 좋다. 살짝 단 것 같은 양념도 굳. 친구들이랑 자리 잡고 술 마시다 보면 엄청 먹을 것 같은 그런 맛이다.
소주 한 병과 함께 정말 후다닥 먹어치우고는 배를 두드리며 뿌듯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2차로 들를 집을 찾아 골목을 돌아다녔겠지만 나의 작은 위는 갈비 2인분으로 이미 충분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숙소로 돌아와서 갈비 2인분으로 부른 배를 뚜드리고 있자니 상쾌해진 밤공기를 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파 저수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밤에 산책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도 들었던 터. 어제 하루를 침대에서 날렸다(사실은 피로를 회복하고 체력을 충전한 것이었지만)는 사실도 나를 부추겼을 것이다.
잠깐 걸으니 공원에 도착. 꽤 더운 날이어서 그랬는지 해가 저문 저녁에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그래.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쐬면서 살랑살랑 산책하기에 참 좋은 날씨구나. 풍경도 참 좋구나. 사람도 참 많구나. 하면서 호숫가를 걸었다.
군산에서 꽤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발길을 붙잡는 식당이나 카페들도 보였는데, 특히 해물파전이 왜 그렇게 먹고 싶던지. 괜히 이거 먹으면 그냥 눌러앉아서 술만 줄창 마실 것 같아서 발길을 돌려 산책을 계속했다.
처음 산책의 시작은 3킬로 정도? 그러면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호수를 크게 돌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산책로의 구석구석을 다 걸어 보고 싶었다.
어라? 어라? 걷다 보니 다리가 아프다. 시간도 꽤 지났는데 아직 반도 못 온 것 같은 느낌. 가벼운 산책이라고 생각하고 운동화가 아니라 단화를 신고 나왔는데...
두 시간 정도 걸었을까? 내 눈 앞에는 8.5킬로를 넘게 걸었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ㅠㅜ
은파 저수지를 가장 크게 도는 산책로는 대략 9킬로 가까운 거리인 듯. 절대 '가벼운' 산책이 아니었다. 물론 공기도 좋고 풍경도 좋았으니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준비를 좀 더 제대로 했어야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발에 물집이 잡혔다. ㅜㅜ
바늘과 실을 이용해 물집을 터뜨리고 진액(?)을 빼냈다(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 바늘에 실을 끼워 물집이 생긴 곳을 통과시킨 다음 실을 대롱대롱 남겨두면 물집 안에 있는 진액이 실을 타고 빠져나옵니다. 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실을 바꿔가며 세 번 정도 빼냅니다. 물집을 뜯어내는 것보다 훨씬 덜 아프게 아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잠을 푹 잘 수 있을 정도의 피곤함 덕분에 기분 좋게 취침.
이제 내일은 드디어 고군산군도~!! 새만금 방조제를 건너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