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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셰 Jan 03. 2023

나의 참치마요 보고서

화내고 반항하라.

옳지 않은 일. 불공정한 일.

불합리한 일을 목격한다면

우리에게는 그에 맞서는 말이나 행동을 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침묵해서는 안된다.

- 존루이스 


요새들어 부당함을 참는일이 힘들어졌다. 어릴 때는 "어, 너 욕도 할줄 알아?" 라면서 신기해 할 정도로 유순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그동안 참고 있었던게 분통이 터져서 인지 아니면, 원래 숨겨진 내 성격이 이랬던건지 알수없을 정도로 화가 튀어나온다. 

공무원 시절, 어느날 내가 신분증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서류를 던지며 인격모독을 하는 민원인에게  " 나를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라고 한마디한 적이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그 중년의 남자는 침을 튀기며 여자로서 듣기 힘든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수치심과 두려움에 손이 덜덜덜 떨렸지만 나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꼭 나에게 너 노예 맞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 나는 노예가 아니다!" 라고 맞받아 주고 싶어서였다. 그가 씩씩대며 돌아간뒤 억울함에 치를 떨고있는 나에게 선임이 조용히 뒤편 탕비실로 나를 불렀다. 내가 기대했던 말은  "서희씨, 아까 힘들었지? " 라는 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같은 조직원으로서 소속감을 기대할 수있는 말이겠거니 했지만. 이내 내 기대는 무너졌다. 


 "서희씨 우리가 화를 못낼줄 알아서 못내는게 아니야. 우리도 화낼줄 알아." 나는 그때 그말이 이해가 되지않아 한참을 곱씹었다. 오랜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말속에 숨겨진 본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말인 즉슨, 우리는 다 참고 가만히 있는데 왜 너만 똑똑한척 하느냐. 라는 말이었다. 일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그냥 대충 민원인에게 맞춰주라는 말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어느순간 조직의 트러블 메이커, 문제아로 찍여 있었고 작은 실수에도 크게 혼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조직의 기류에 어긋나는 사람으로 찍힌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더이상 민원인과 맞서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점점 커져갔다. 


하루는 민원인이 몇 평 되지않은 동사무소에 꽉차게 몰렸고, 모두가 내 순서가 언제오나 한숨을 푹푹 쉬며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날이었다. 갑자기 숨이 안쉬어 지더니 눈앞이 새하얘졌다. 모든 민원인들이 나에게 거칠게 화를 내는 것처럼 악마로 보였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나에게 욕설을 날릴것 같은 공포가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누가 내 목을 조르는것처럼 질식감이 느껴졌고 나는 그대로 동사무소를 박차고 나와 겨우 숨을 진정시킨뒤에 업무에 복귀 할수 있었다. 그날 하루 예민했나 싶었지만 날이 갈수록 민원인을 상대할때마다 질식감과 숨막힘은 계속되었고 하루하루 우울감과 무력감이 더해지던 날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혹시나 찾아간 정신과에서


"중증 혼합성 우울장애, 불안장애 입니다. 심각하니 입원을 고려해보세요." 라는 청전벽력과 같은 선고를 받았다.  그길로 나는 더이상 출근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뒤 나는 진단서를 받아 휴직계를 냈다. 

그래서 당신들이 바꾼게 뭔데?



 지난해 우울증 진료인원 중 공무원이 4.3% 1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0.85%포인트 늘어

정신질환 진료받은 공무원의 80%가 우울증과 불안장애

출처 - 서울신문


민원 부담 투신한 9급 공무원에 법원 “공무상 재해” < 노동법 < 노동 < 기사본문 - 매일노동뉴스 (labortoday.co.kr)


공무원 우울증 환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공무원이 밀집한 세종시에서도 업무과중과 우울증 문제로 자살율이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과도한 민원과 우울증으로 공무원 자살 미수 사례가 산재로 처리되기도 했다. 일이 이지경이 되는데도 sns 에는 민원인 뺨을 때리고 동사무소에 불을 지르는 과격한 민원인들의 횡포가 계속되고 있다. 내가 처음 우울증을 진단을 받았을 때는 모두 나를 일하기 싫어 도망가는 나약하고 한심한 인간으로만 보았다. 다들 참고 일 잘만하는 데 너는 왜이렇게 유별나게 구냐는 것이었다. 휴직기간동안 자책도 많이했고, 한번 떨어진 자존감과 몸을 회복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아직까지 불쑥불쑥 올라오는 공황의 느낌은 종종 내 생활에 잔기침 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 물론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민원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선'과'원칙'일 수는 있다. 매번 찾아오는 민원인에게 일일이 대응해봤자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공무원끼리 같은 편에 서주지 않는 것은 문제이다. 외부 민원문제도 물론 심각하지만 공무원 조직 안에서의 알력과 괴롭힘, 따돌림, 낙인찍기 등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마음의 병을 얻은것은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던 그 민원인이 아니라 나를 도리어 유별난 사람으로 만든 그 10년차 선임 때문은 아니었을까. 동족혐오가 나는 이래서 더 무섭다는 생각이든다. 


공무원 동족혐오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0년전 그날과 지금의 공직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종종 블로그로 나에게 상담을 해오는 사람들 중에 강압적인 직장상사 때문에 괴로워요. 사람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해요. 라며 전문의도 아닌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올 때가 있다. 나역시 겪어본 일이기에 최대한 장문으로 그들에게 답변해주곤 한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겪은 동일한 일들이 흉흉한 소문들이 계속해서 들려오는것을 보면 앞으로 더욱더 더 공직에서의 피바람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으로 공무원 멘탈케어를 자체적으로 해주지 않거나, 공무원들끼리의 긍정적 단합이 일어나지 않으면 점점 더 공무원의 자살 소식과 이직, 퇴사율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비단 공무원 조직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조직 곳곳에 숨어있는 갑질문화의 원흉이다. 



차라리 맑은 눈의 광인이 되자

요새 mz 세대를 풍자하는 우스개 영상들이 많이 나온다.  < 회식가서 고기 안굽기, 술안따르기, 커피타는 것 거부하기. 이어폰 꼽고 업무하기.직장상사 한테 대들기, 꼰대조직 퇴사하기.등> 코믹적으로 좀 과장된 면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면을 결코 웃으며 넘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80년대 밀레니얼 세대를 살면서 실제로 20대때 100만원 채 안되는 계약직 직원임에도 10시까지 야근에 커피타기,술따르기, 회식 참석 필수,고기굽기가 필수였던 세대를 살아오면서 소위말하는 꼰대 조직에서의 찍소리도 못했던 수모를 단단히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요즘 MZ 세대들의 의미 있는 반항이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분노하라

예전에는 나는 애써 감정이 올라와도 무시하려했다. 부당한 일에도 예민한 사람으로 몰릴까봐 애써 무시 하려했었다. 그럴 때마다 일상에서 올라오는 화를 다스리기 힘들었고, 이 화의 감정때문에 하루종일 기분이 불편하거나 알콜중독, 식이 장애에 시달리기도 했다. 명상이나 운동은 그저 감정을 지연시키는 도구에 불과했다. 적당히 화를 표출하기 시작한 뒤 이제는 더이상 화병에 시달리지 않는다. 내 인격 손상이나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길만한 일에는 적어도 참지 않고 그때그때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번 생긴 화는 내안에서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뒤에서 곱씹을 일이라고 생각 되면 나는 그때그때 내 목소리를 내고, 수정을 요구한다. 


생각보다 대한민국은 넓고 그들을 다시볼 일은 손에 한번 꼽을까 말까이다. 화내라. 정당하게 내 권리를 요구하라. 화를 오래 품고 있다보면 그것은 큰 구멍이 되고 인생을 좀먹기 시작한다. 정신적으로 트라우마가 생긴다. 쌈닭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지향하는 선을 위해 싸우라는 말이다. 내 인생의 절대 선은 공정함이다.  부당한 것이 있으면 싸우고 불합리한것이 있다면 나를 위해 내 딸을 위해 싸울 것이다. 


불합리한것에 분노할 수 있어야 우리사회는 조금씩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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