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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Feb 03. 2021

내 슬픈 전설의 _____페이지

당신의 전설이 슬프지 않기를 <천경자>

"그래, 나는 오직 꿈을 파먹고 살아왔다.
지나온 길이 평탄하지 않아 눈이나 비, 꽃과 친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고독한 행복감에 젖어 오직 작업하는 일만이 편한 길이었다."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화백.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라고 말하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여인.

자신만의 채색화를 구축하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예술가.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고 불리는 여인.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강렬한 색채의 꽃들은 보는 이들을 사로잡고 심연에 빠져있는 듯한 눈동자를 가진 여인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듭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생각하게 만드는 여인의 깊은 눈동자.


여인, 종이에 채색, 27x27cm, 1976


길례 언니, 종이에 채색, 33.4x29cm, 1973


  

천경자, 꽃을 든 여인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목이 길고 멍한 눈동자를 가졌어요.
의상은 화려하고 머리에는 예쁜 꽃을 꽂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숨은 고독을 찾고 싶었어요.


모두의 삶에 희로애락이 존재하지만 스스로 고통 속에 살았다고 주저 없이 이야기하는 그녀는 삶 속의 슬픔과 고독을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고독을 가지고 있지요.

그녀의 작품을 보면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가 뒤덮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베어 나오는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꾸역꾸역 비집고 나오는 강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여러 권의 자서전을 통해 굴곡이 많은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문인으로서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녀의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꼭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에서 벗어나 문학적, 설화적인 면을 강조해 여인의 한과 꿈, 고독을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한 천경자. 일제시대와 6ㆍ25, 70년대의 격동기를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화가로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내야 했던 천경자의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6 출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천경자 저. 책 소개글.



파경,  여동생의 이른 죽음, 이혼, 혼자 개척해야 했던 타지에서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왠지 신비감에 쌓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 점이 참 오묘한 것 같아요.

그녀의 눈동자와 그림에는 숨길 수 없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그림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요?


청춘의 문, 1968


마치 화보같은 그림 .60년대에 그려진 그림 같지가 않습니다.

몽환적이면서도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 들어요. 그녀의 그림은 한껏 우아합니다.


4월, 1982


 

나는 그림을 구상할 때마다 오랜 시간을 처음으로 내 시각 속에 배인 자연의 푸른 빛깔이라든지 무슨 꽃인지 하얀 꽃들의 인상을 쫓아 황홀한 행복을 느끼고, 그 무렵의 아름다운 인정을 그리워하고 비가 내리거나 함박눈이 내리는 날, 산과 마을이 희뿌연 회색으로 물들어가던 때를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낀다.   

이 글을 읽으며 저도 한동안 제 눈 속에 배인 아름다운 순간들과 장면들을 떠올려보았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어, 떠올렸을 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탈리아 기행, 1973


  


그녀는 유랑자였지요.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린 작품들은 또 하나의 독특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쉽게 가고 쉽게 오기를 반복하던 그 남자는 어느 날 정말로 떠났는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천경자는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관계라는 운명으로부터 자유롭기로 마음먹는다.
누구에게나 자기가 생각하는 자유가 있다.
그녀에게 자유롭다는 건 ‘혹시나 그가 오지 않을까’ 해서 이사도 가지 않고 같은 집에 살면서 멀리 떠나보지도 못한 삶을 접는 것이었다.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나라들을 골랐다. 남미에 가서는 흥겨운 리듬감을 찾았고, 아프리카에서는 원시적인 색채를 발견했다. 영국으로 날아가 에밀리 브론테의 생가를 방문하는가 하면, 스칼렛 오하라를 창조해낸 마가렛 미첼의 고향도 찾아갔다.
그녀는 ‘폭풍의 언덕’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주인공의 열정과 강인함을 흡수했다. "

 글 인용:이주은 (건국대 교수)


그녀는 사랑에서 자유를 얻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녀를 자유롭지 못하게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딛었습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자유는 그녀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마음, 뭔지 알 것 같아요.


   

올드 델리


 

재즈, 1987


탱고를 찾아서, 1979


참 재미있는 작품이 많지요~?

그 당시 자유를 찾아 떠난 그녀의 눈에 비친 이국땅의 느낌은 어떠했을까요.


저도 참 여행을 좋아합니다. 미술만큼이나 더 좋아하는 것이 여행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 속에 세계 곳곳을 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 눈에 비쳤던 장소가 그때의 이 여인에게는 어떻게 비쳤었는지 보는 일은 즐겁기도 하네요.

코로나가 끝나면 당장 짐을 싸렵니다.


발리섬의 소녀


뉴욕 센트럴파크, 1984


그라나다 시장, 1993, 종이에 채색. 37.5 X 45
브로드웨이 캣츠, 1984


  

고흐와 함께, 1996, 종이에 채색, 41x 32


제가 참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사랑에 열정적이고 여행을 사랑했던 천경자 화백과 여러 가지 공통분모가 있어 참 좋았는데, 그녀 역시 고흐의 팬이었나 봅니다. 분명 고독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신념을 갖는 사람은 고흐의 팬일 수밖에요.


장미와 여인, 1981


위작 논란에 쌓였던 작품이지요. 그녀는 위작 논란으로 인해 크게 실망하고 한국을 떠났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201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황금의 비, 1982


별나라에서 왔으니까 모든 것이 새롭겠지요. 하도 외로워서 어떤 한 같은 의식이나 감정을 갖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 소녀는 얼마 후엔 지구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보다도 더 많은 가능성을 갖게 되겠지요. 그래서 고(孤)와 한을 아름다운 지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갖게 되겠지요.

천경자 평전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최광진 저 중에서



여인의 옆얼굴


 사람의 눈동자는 참, 신비하죠. 기껏해야 작은 동전의 크기보다도 작은 이 눈동 자안에는 그 사람의 삶이, 사랑이, 고독이, 나를 보는 그 마음이 모두 서려있습니다.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잖아요.

늘 언제나 정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마음에 듭니다.


꽃과 나비
꽃과 나비
그래, 나는 오직 꿈을 파먹고 살아왔다.
지나온 길이 평탄하지 않아 눈이나 비, 꽃과 친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고독한 행복감에 젖어 오직 작업하는 일만이 편한 길이었다.


맨 위에 썼던 이 말, 진솔한 그녀의 고백인 것 같아요.


그녀에게 꽃은 삶에 대한 기쁨이며 위로이며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작가의 애착과 간절한 바람과 희망을 담은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꽃과 여인, 어쩌면 매우 평범한 소재일지 모르지만,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천경자 그 자신의 삶을 삶았던, 그 삶의 애환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굉장히 무게감과 여운을 주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탄치 않았기에 어쩌면 그림 속에서 더 아름답게 피어났던 꽃들, 고독감에 젖어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들.

저 역시 그녀의 꽃들에서 위로받고, 나를 바라보는 그림 속 여인의 시선에서 친구를 만난 듯 고독한 행복감에 젖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4

그녀의 자서전의 제목이자, 49세의 그린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하염없이 밀려오는 고독을 가눌 길이 없었다. 나는 홀로 우주공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걷잡을 수 없는 고독이 거울을 치면서 나를 울게 했다.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얼핏 보면 아프리카 정글을 그린 이국적인 풍경화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체의 몸으로 웅크려 울고 있는 자신을 그린 그녀의 자화상입니다.

홍익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하고 전업작가가 되었던 1974년, 1년에 걸쳐 완성한 이 그림은 그녀가 보았던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여행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입니다. 그녀가 어떠한 감정이었을지.

그리고 이 작품과 비슷한 제목을 가진, 또 하나의 작품.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그녀가 50세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22살의 그 해를 떠올리며 그린 작품입니다.  

사랑에 아팠고 누군가를 보내고 가족을 잃고 많은 것이 아팠던 그 해를 무덤덤히 떠올리며 그린 것 같은, 그녀의 자화상. 늘 아프고 슬펐으나, 화려함 속에 감춰진 고독으로 늘 슬퍼하는 자신과 여인들을 위해 화관을 씌우고 꽃을 들려주고, 꽃을 그려준 아름다운 여인.


박경리 시인 역시 그녀를 노래했습니다.


천경자를 노래함_박경리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다.

매일 만나다시피 했던 명동 시절이나
이십 년 넘게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나
거리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대담한 의상 걸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기도 탐욕도 아닌 원색을 느낀다.

어딘지 나른해 뵈지만
분명하지 않을 때는 없었고
그의 언어를 시적이라 한다면
속된 표현 아찔하게 감각적이다.

마음만큼 행동하는 그는
들쑥날쑥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세월의 찬바람은 더욱 매웠을 것이다.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별나라에서 와, 화려한 색채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간 진정한 여인.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서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함께 슬퍼하고는 합니다.

비록 슬픔이라고 말하였지만 그녀는 전설이었지요.


여러분은 어떤 전설의 페이지를 쓰고 계시는지.

저는 마음이 서걱거리는 요즘,

내 슬픈 인생의 38페이지라고 쓰려다, 50살 즈음엔 내 행복한 전설의 38페이지로 기억했으면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꽃을 씌어주고 꽃길을 걸어가야지요~!

나는 꿈을 파먹고 사니까. 정직한 생애.


올해가

당신의 슬프지 않은,

전설의 한 페이지가 되시길.


내 (          )전설의 (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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