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 더 뉴튼 호스텔
“
당신은 꿈꿀 의무가 있습니다.
- 2060 THE NEWTON HOSTEL & MARKET
”
어느새 마드리드의 다섯 번째 숙소, 전 세계 힙스터들이 찾는다는 2060 더 뉴튼 호스텔 & 마켓(2060 THE NEWTON HOSTEL & MARKET)을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 -호스텔 이름이 너무 기니까 앞으로 2060으로 줄여서 쓰기로 한다.- 물론 내가 힙스터라 방문하는 건 아니고 (그래도 과거엔 꽤… 풉.) 한 달하고 보름. 마드리드 생활 동안 쌓인 숙박 누적 포인트와 특가 할인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누가 단체로 예약을 취소했는지 Sold Out이던 2060 호스텔의 여성 전용 객실에 자리가 생겼기에 고민 없이 예약했다. 마드리드행을 결정하면서부터 눈여겨보던 곳이다. 재미난 디자인으로 브랜딩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으니까.
# 최고의 입지조건
여행자의 발걸음이 모이는 중심, 쏠 광장과 마요르 광장에서 도보로 5-8분 사이에 위치하는 2060 호스텔은 동서남북 웬만한 관광지는 다 걸어서 다닐 수 있다. 게다가 호스텔 바로 앞에는 1호선 티르쏘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5호선 라 라티나(La Latina)역과 버스정류장들이 있어 교통편은 끝내준다.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초대형 벼룩시장 ‘엘 라스트로(El Rastro)’도 매주 일요일마다 바로 옆 골목에서 시작되고, 마드리드의 뿌리라 일컬어지는 라파비스(Lavapiés) 지역도 품고 있으니 ‘최적의 입지조건’이란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일테다. 그래서 다른 지역 호스텔들에 비해 이 지역 호스텔들은 시설 차이는 좀 있겠지만 1박에 평균 8~15유로 정도 더 비싸다.
# 최적의 편의시설
2060 호스텔은 7층 규모로, 오래된 마드리드 전통 건물을 현대적으로 리모델했다. 블랙&화이트에 그린을 포인트 컬러로 설정했고 계단과 벽에 식물과 새 둥지들을 부조로 걸어 두기도 했다. 세르히오와 펠리페, 두 친구가 합심해 만든 이곳은 근본적으로 ‘여행자’를 부추기는 곳이다. 여행에서 쉼도 중요하지만 ‘공간’이 가진 특별한 재미와 ‘욕심’을 철학적 개념의 기회로 적절히 둔갑시켜 다루는 곳이다. 밋밋해 보이는 흰색 배경은 사과, 뉴튼, 복어, 문어, 버섯, 토끼 등 각종 동식물을 마스코트로 신박하게 꾸며 놨다. 1층엔 프론트 데스크와 2060 호스텔의 디자인 상품 판매, 로컬 Beer와 커피 등을 판매하는 라운지 겸 카페와 함께 공용 주방이 있다. 출입카드가 있어야 건물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꼭 투숙객이 아니라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스파 사우나, 깔끔한 세탁실, 공용 휴식 공간 벙커(Bunker), 일광욕과 별을 즐길 수 있는 7층의 멋진 루프탑 마저 SNS 업로드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더군다나 녹색호텔(=에코호텔)을 표방하며 에너지 사용을 40%까지 줄이고 있으니 SNS를 사랑하는 힙스터들이 몰려들 수밖에. 하지만 내가 혹한 큰 이유는 아침마다 무료 제공되는 추로스에 있었다. 미쇼 씨 신난다. 많이 먹을거다아-!!
# 최악의 룸메이트
여성 전용실은 8인실이었다. 객실 내 화장실과 샤워실이 분리되어있고, 층마다 여성/남성 화장실과 샤워실도 따로 있었다(대부분의 호스텔은 성별 구분 없이 사용하는 곳이 더 많음). 침대는 견고한 우드 프레임의 2층 침대를 만들어 칸막이도 세우고 커튼도 장착해 여행자의 프라이버시를 완벽히 지켜준다. 각 층마다 반은 객실, 반은 공용시설이 있는데 미쇼 씨가 머무는 층엔 앞서 말한 벙커(Bunker)가 있었다. 책을 읽어도 되고, 드러누워도 되고, 간식을 먹어도 되고, 회의를 해도 되는 이곳에서 나는 주로 브런치 글을 쓰고 SNS 생존신고 활동을 하며 지박령을 자처했다.
침대는 체크인 때 받은 이름표를 자신이 사용할 침대에 꽂아 두는 걸로 선점 끝! 들어가 보니 4개의 1층 칸은 모두 만석 ㅠ 그렇다면 출입문에서 가장 멀고 해 잘 드는 곳의 2층을 잡자. 문어, 버섯, 당근이 그려진 침대도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에로 붕붕 토끼 침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내밀지 않도록 주의해야지 >.<
내 침대 아래층엔 자신이 인도에서 왔다고 소개한 ‘욕심쟁이’가 있었는데 보통 돌+I 가 아니었다. 왕 캐리어로 나와 맞은편 2층 침대의 계단을 한꺼번에 막는 건 대수롭지도 않은 일. 혼자 사물함 4개와 서랍 2개, 옷걸이 8개를 다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난 대한민국의 마흔, 의지의 미쇼 씨가 아닌가. “뭐야” “엥?” “헐”을 서라운드로 들려주며 복닥거리자 내 침대 옆 사물함을 선심 쓰듯 비워줬다. 이후 입실하는 모든 친구들과 끝까지 사물함 쟁탈전을 벌인 욕심쟁이는 관광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침대에 밀착해 케밥과 피자와 감자칩을 먹으며 매일 새벽 2시까지 화상채팅을 했다. 이어폰은 없는 거니? 나는 이미 포기 ㅠ. 다른 룸메이트들과 몇 번씩 말싸움 끝에 겨우 그치는 꼴이 첫 호스텔 파홈베르나베우에서 만난 The Luv과 Job것을 뛰어넘는 끝판왕 캐릭터로 남았다. 여러 만행이 있었지만 쓰다가 심정지 올까 봐 이쯤 해둔다.
# 힙스터는 얼어 죽을, 도둑년놈들아 매운맛 좀 봐라!
호스텔에 주로 머무는 배낭여행 또는 장기 여행자들에게 중요한 게 냉장고와 조리 공간의 유무다. 그런데 불 사용까지 가능한 호스텔은 극소수다. 물품관리의 측면, 도난, 부주의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인데 2060 호스텔은 아주 많은 여행객 인구밀도에 비하면 턱없이 좁지만 어쨌든 인덕션과 프라이팬, 냄비, 칼과 도마가 준비되어있고 공용 냉장고도 사용할 수 있다. 주방의 존재는 여행 경비 절감뿐 아니라 체질적으로 다른 서양 음식을 한동안 버텨낸 자신에 대한 보상이므로 알뜰살뜰 잘 사용하길 바란다. 호스텔 맞은편에 까르푸와 DIA 등 대형 슈퍼가 있고 한국 라면을 파는 작은 구멍가게도 있다. 안톤 마틴과 쎄바다 전통시장도 지척이니 신선하고 저렴한 식재료 수급엔 문제가 없다. 호스텔 측이 제공하는 스티커에 이름과 객실번호, 투숙 기간을 적어 자신이 사 온 물건에 붙인 뒤 공용 냉장고나 선반에 보관할 수 있다. 그리고 퇴실하며 재료를 남긴 경우 Free 코너에 놔두면 다른 여행자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2060 호스텔에 투숙한다면 식품들은 먹기 직전에 구매해 잠시 보관할 용도로만 사용하길 추천한다. 단 하루도 안 빠지고 훔쳐가는 도둑들이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숙소는 그런 적이 없는데, 이곳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심지어 바로 옆이 프론트 데스크인데도!! 물, 음료, 계란, 요거트를 비롯해 양상추 잎사귀도 뜯어갔다. 밀폐용기에 담아놔도 그렇게들 훔쳐갔다. 남의 우유나 주스를 입대고 막 마셔재낀다.
하루는 현장범을 잡았다. 나의 소중한 무알콜 맥주에 손을 댔다. 그게 뭐 대수냐며 “쏘뤼”만 날리고 자신의 무리로 돌아가는 ‘고얀 놈’!!! 대여섯 남녀 혼성 그룹이었던 그들은 주방과 연결된 라운지에 앉아 셀피를 찍고 떠들어대며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고얀 놈은 친구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속삭여댔고, 그들은 일제히 날 바라보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저. 이. 개.ㅆㅑ2$%ㄹ것들!!” 깊은 빡침을 느낀 미쇼 씨. 계란말이를 하려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 한국에서부터 고이 모셔온 신라면 스프를 딱 꺼냈다. 찬물에 스프와 다진 생마늘, 후추 가루까지 넣고 팔팔 끓이기 시작하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 향이 온 동네방네 퍼졌다. 이윽고 고얀 놈과 힙스터 나부랭이들은 에췌췌췌 스타일을 다 구기고 죽도록 기침을 해댔다. 어떠냐 이 도둑놈들아, 매콤하지?!! 신라면 스프에 라비올리(파스타의 한 종류, 만두와 비슷)를 넣고 계란말이에 쓰려던 계란물을 듬뿍 풀어 맛있게 완성! 나는 승리의 V를 그리며 힙스터 나부랭이들에게 썩소를 날렸고 머지않아 그들은 자리를 떠났다.
뭘 만들어 먹든 마무리가 중요하다. 자기가 쓴 도구와 그릇은 깨끗이 닦아 제자리에 돌려놓자. 엄마가 없으니까. 설거지와 환기를 마치고 그릇을 수납하고 있을 때, 내추럴 본 빨간 머리 아가씨가 싱크대에 나란히 섰다. 근데 엄청나게 큰 애플망고를 손에 쥐고 플라스틱 빵 칼로 낑낑거리며 껍질을 벗기고 있네? 심지어 3개가 더 남아 있어. 영어를 못해 쑥스럽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이봐요, 여기 칼 있어요.”
“오 마이 갓, 땡큐. 땡큐 쏘 머취~”
“접시는 이 쪽, 포크는 저 쪽.”
“당신이 나를 살렸어요. 정말 고마워요.”
잠시 후 벙커에서 놀고 있는 내게 빨간 머리 아가씨(=애플망고 1)와 그녀의 친구(=애플망고 2)가 접시를 들고 찾아왔다. 그녀들은 캐나다에서 왔다고 한다. 나도 정말 고맙네.
그리고 다음날, 내가 진짜로 애플망고 2의 생명을 살리는 대형사건이 발생했다.
p.s - 찐 힙스터는 스스로를 '힙스터'라 칭하지 않는다. 힙스터들에 의해 발굴 된 장소나 문화, 키워드들이 소개되고 퍼지다보면 자연스레 그들을 쫒아 경험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래서 요즘엔 '자칭 힙스터'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추세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유행을 따라 살든 다 좋으니 삶의 태도,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 낯선 문화 앞에 관대함을 가진 사람이 되자.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