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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Sep 12. 2019

본격 시내 진입 , 마드리드 첫 호스텔 입성 !

 일 해다오 자물쇠여 - ,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 토마스 풀러



바르셀로나에 갔을 땐 입국 심사 없이 바로 짐을 찾아 나간 것 같은데 (기억의 오류 일 수도), 마드리드는 초고속이지만 어쨌든 입국 심사를 하고 있었다. 6월에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으니 첫 도장이 MAD로 남는 것 역시 운명이 아닌가! 이젠 별의별 구실을 다 갖다 붙여 마흔의 ‘마드리드 드림’ 대장정을 스스로 응원하고 있다. 백드롭을 워낙 일찍 했으니 캐리어도 늦게 나올 테고, 비행기에 느그-읏 하게 앉아 설레는 마음을 만끽한 후 나가기로 했다. 덕분에 입국 심사가 좀 늦어졌는데 결정적으로 캐리어도 그 이후에 나왔으니 좋네 좋아~



가끔 혼자가 아닌 출장 혹은 가족, 여럿과의 그룹 여행에 나설 때가 있다. 그럴 땐 시간이 곧 돈이라 그 어떤 일정에서도 실패할 수 없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미친 듯 블로그 검색과 구글, 옐프, 트립어드바이저를 뒤져가며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고 여정에 맞춰 이슈들을 쳐낸다. 요즘은 현지에 도착해 있거나, 주차별, 월별 출발 예정인 여행 카페 동호인들이 만든 단체 톡방이라는 게 있다. 실시간으로 서로의 여행 경험과 감각을 공유한다. 꼭 가보겠다 물색한 상점이나 식당이 있었으나, ‘나는 이러한 대접을 받았으니 가지 마세요.’라는 한줄평에 일정을 새롭게 변경하기도 한다. 뭔가 사고가 났다거나 혹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의 정보교류도 활발하고, 이 곳은 반드시 가 봐도 좋다는 추천지, 한국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의 정보를 비롯한 시시콜콜한 객지 생활, 여행의 팁들이 넘쳐흐른다. 이렇게 여행의 기술도 변화하고 있다. (나는 이따금 진심으로 영화에서처럼 EMP 한방에 모든 전자기기가 불통되는 사태를 걱정한다.) 하지만 이번에야 말로 이런 사전 정보를 차단해보고자 했다. ‘3개월 여행 계획’보다 늘 ‘자신에 집중하자’는 계획으로 떠난 여행이니, 머물게 될 숙소를 중심으로 동네에 익숙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면 숙소에서 추천을 받기로 했다. 사실은 항공권만 덜컥 결제해 놓은 뒤 초반에 머물 호스텔 몇 개만 예약했다. 서울에서 예정된 이사 계약이 한 번 불발되어 다시 준비하느라 신경을 많이 쓸 수 없었기도 하고.



영어를 잘하냐고? 앞서 국영수를 잘했어야 한다고 발차기 몇 번 날리지 않았던가. 인간에게 허락된 만국 공통어 바디 랭귀지를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문법에 맞는 영어 구사력 다 필요 없다. 스페인 사람들도 누구나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고, 나도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구사하지 못한다. 우리의 경우도 외국인들이 정확한 지명, 낱말만 들려줘도 혼신을 다해 도와주려 하지 않는가? 구글 번역기와 지도만 구동된다면 두려울 것은 없다. 그러니까 마흔이여, ‘HOLA(올라)’ 하나 기억한 뒤 첫 숙소로 가는 길만 완벽 대비하자. 호텔, 호스텔, 한인민박 모두 숙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항 또는 중심 시내에서 오는 법을 설명한다. 현지에 도착해 인터넷이 안될 경우를 대비 해 출국 전 여권과 항공권 챙길 때 프린트 해 두거나, 최종 공항을 벗어나기 전 스마트폰에 캡처도 충실히 해 두자. 이제 적진에 뛰어들 차례니까.


마드리드 교통카드(좌), 지하철 역 출구 안내(우)


어디든 출구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직진이다. 꽃할배의 직진 순재를 생각하면 딱 좋다. 길을 모르겠고 잃어버린 것 같으면 자주 튀어나오는 대형슈퍼(DIA, LIDL, Carrefour 등이 대표적)와 대형 의류상점(자라, 망고, 데카트론) 및 스타벅스 커피, KFC, 맥도날드로 들어가자. 입구 밖은 부랑자 또는 직업적 홈리스가 기부해달라고 요청하니 반드시 실내로 들어가야 한다. 대형마트는 경비원도 있어서 좀 더 안심이 된다. 그를 제외한 집시 또는 나를 집요하게 쳐다보는 눈이 있는지 둘러본 후 가방을 앞으로 메고, 캐리어가 있다면 다리 사이에 넣고 등 쪽이 벽을 향하게 선 뒤, 준비한 프린트나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할 차례다. 위에 언급한 매장들에선 무선 와이파이를 제공하므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스페인은 예상외로 길 찾기가 쉽다. 이제 좀 적응되고 있는 한국의 새 주소 시스템인 “광화문대로 1번 길” 같은 표시가 잘 되어있다. 지도 APP을 열면 도로에 길 이름이 다 쓰여 있고, 고개를 들어 건물 2층 정도를 살펴보면 “CALLE de Bravo”와 같은 명칭이 새겨져 있다. ‘Calle(까예)’가 ‘길’이라는 의미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이름을 기억하고, 분기점을 미리 캡처 해 두면 큰 도움이 된다. 큰 건물 은행, 병원, 대리점, 시장과 같은 곳에서 목적지가 같은 길인지 건너편 길인지 확인하는 것도 아주 좋다. 절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길 한복판에서 두리번거리며 폰에 빨려 들어가는 자세로 걷지 말자. 1초 후에 당신은 하이에나 떼들에게 만두처럼 둘러싸일 테니.


마드리드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면 대부분 SOL 인근에서만 하루 이틀 머물며 레알마드리드 축구장만 후다닥 보고 바르셀로나로 넘어 가버리는 것 같다. 명색이 수도인데, 일종의 경유지가 돼버린 건가. 나 역시 바르셀로나, 세비야, 그라나다 등은 가 보았어도 마드리드는 ‘다음에 시간 되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으니... 미안해 마드리드 ㅜㅠ

시간이 촉박한 여행자의 경우 마드리드 왕궁과 마요르 광장, 프라도 미술관, 레티로 공원을 한 번에 누빌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필요하겠지만 나에겐 현지 생활을 엿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주어졌기에 중심가에서 떨어진 지역을 물색했다.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주요 거점을 정하는 나만의 법칙이 있는데, 중심가에서 대중교통으로 2,30분 도보 40분 이내의 지역을 찾는 거다. 거점에서 중심가까지 버스 또는 지하철 한 번의 연결 또는 도보 10분 이내에 직통 연결 지하철역이 존재하는 곳으로 범위를 좁힌다. 이를테면, 종로권을 거점으로 잡았다면 지하철 1,3,5호선 인근의 숙소 가운데 역에서 도보 10분 내에 있는 곳들을 후보지로 정하는 거다. 서대문구, 은평구, 마포구 정도가 될 것이다. 각종 예약처의 후기(해외의 경우 구글, 트립어드바이저 사이트도 확인)와 공식 홈페이지 또는 SNS의 업데이트가 얼마나 활발한지 점검한 후, 최종 후보 3개 중 시설 대비 가격, 특전들을 비교해 3일간 고민해보고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예약 완료!


찬란한 공용 테라스(좌), 배정받은 F침대(우)


그렇게 간택된 마드리드 드림, 마흔의 정리여행 시발점이 될 첫 서식지는 <파 홈 베르나베우 Far Home Bernabeu>로 낙점! 첫 일주일을 함께 할 숙소다 ‘Far Home Hostel’ 체인이 마드리드에 소유한 몇 군데 중 가장 서민적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다인실 및 1,2인실, 여성 전용실로 구성되어 전 세계 다양한 여행자들을 동등하게 수용하는 제법 규모가 있는 호스텔이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는 오히려 SOL광장을 중심으로 한 숙소들보다 가까워서 공항철도라 불리는 Renfe(렌페)를 탈 필요도 없었다. 마드리드 시민들에게 ‘가장 마드리드 답다’ 불리는 전통시장 <마라비야스 Mercado de Maravillas>가 근처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스페인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이라고도 한다. - 투숙 후, 우연히 마라비야스 시장을 노닐다가 ‘서울식품’이라는 한국 식료품점을 발견했다. 시시콜콜한 정보는 차차 알려드리겠음. -



여성전용 6인실을 예약했다.(호스텔에 남성 전용실은 없다시피 하다. 대부분 가장 저렴한 가격에 혼성으로 운영된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진과 싱크로가 거의 100%에 가까웠다. 바깥은 블랙톤이지만 실내는 화이트에 포인트 컬러로 레드를 배치했다. ‘모던 시크의 기본 공식을 잘 살렸군.’ 정도의 첫 감상은 뻥 뚫린 테라스에서 ‘와우!’로 변했다. 리셉션은 “0”층이다. 한국에서 대부분 로비라 부르는 1층이 스페인에선 대부분 0층으로 시작한다. 나의 객실과 테라스는 “3”층(4층)이었다. 방문을 여니 하이얀 철제 2층 침대가 3세트 있었다. 문 열자마자 A & B, 가운데 C & D, 가장 안쪽이 E & F 였다. 다행히 내가 가장 빨리 체크인을 해서 안쪽 1층에 위치한 F를 배정받았다. 테라스로 향하는 문이 내 침대 머리맡에서 이어져 있었다. 우리 방 테라스 좌측에는 아까 마음을 뺏긴 공용 테라스가 있었다. 소파와 햇볕 가림막이 있어서 아늑해 보였다. 재떨이도 보였다. 밤마다 머리맡이 시끄럽겠구나. 그럴 줄 알고 귀마개도 준비했지롱! 그래도 내 침대가 햇볕이 비추는 유일한 자리라서 마음에 들었다. 


가방을 내려두고 산뜻한 하늘색을 뽐내는 전용 사물함에 주요 물품을 수납하고 번호키로 사물함을 잠갔다. 잘 잠겼는지 돌려봤다. 응, 왜 맹렬히 돌아가니? 번호키 꽉 물어놓고 왜 벌떡벌떡 열리니?? 내가 사용법을 모르는 거니??? 왜 안 잠기니???? 철제 사물함 안쪽을 살펴보니 잠금장치가 매우 부실한 건 사실이었다. 돌림으로 암, 수가 맞춰진 구조인데 문 안쪽면의 잠금장치가 다 풀려 버린 거였다. 말도 안 통하는데 리셉션에 가서 뭐라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브로큰 록커?? 마치 내 부주의로 크게 부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줄까 봐 그런 말은 안 될  것 같았다. 13시간의 비행에 지쳐 배는 고프고, 씻고 싶고, 답답한 배가방도 푸르고 싶은데 눈앞이 캄캄했다. 이놈의 국영수!!!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킥이 다 뭐냐 허공에 대고 주먹질까지 하며 괴성을 질러보는 마흔의 주미쇼씨.


크윽 -, 어쩐지 순조롭게 잘 찾아왔다 싶었어 ㅠ


천하장사들이 자물쇠를 돌려 댄 흔적


BGM l 노선택과 소울소스 (NTS & The Soul Sauce) - Heaven is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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