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불태웠어 >.<
머릿속 뇌의 주름이 다 펴졌는지 지우개의 크기가 기억 저장소보다 훨씬 커진 느낌이다. 뭐 기억은커녕 애초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게 맞나 싶을 만큼 무식이 판을 친다. 프라도 미술관 역시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하는 규모다. 관람에 앞서 정보를 확인하려고 N포털을 검색해봤는데, 좋아하던 화가들 이름도 가물가물, 활동 시대도 가물가물, 머릿속에서 완전히 이상하게 재조합되어 괴상한 미술사조가 등장한 꼴이었다. 엄마가 노랫말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가사로 바꿔 부를 때마다 깔깔 거리며 고쳐주곤 했는데, 지금의 날 보면 ‘거봐라, 너도 왔지?’라며 웃을 테지. 어딘가에 노화를 막는 방법이 있다면 나도 동참하고 싶어진다.
숙소 문을 활짝 열고 나설 때마다 배낭의 어깨 끈을 두 손으로 꽉 잡아 쥔다. 오늘도 잘 해 내리라는 다짐과 설렘, 용기를 담아 발을 내딛는 순간은 반복돼도 지겹지 않다. 그리고 바로 오늘, 미쇼 씨는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상징적 미술관 ‘프라도’(Museo Nacional del Prado)를 향해 나아간다. 배낭 속엔 한인 민박 스탭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준 참치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한 팩 챙겨 넣었다. 아주 든든해!
솔 광장 한 블럭 위에서 씩씩한 진군을 시작해 세비야(Sevilla) 역 방향으로 걷는다. 프라도 미술관이 건너편에 보이지만, 우선 그에 비해 한산하다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Museo Nacional Thyssen-Bornemisza)’을 먼저 찾았다. 이 곳에서 <파쎄오 델 아르떼 카드(Paseo del Arte Card)>라는 걸 구매하기 위해서다.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이라 일컬어지는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을 통합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이 바로 파쎄오 델 아르떼 카드다. 하나하나 격파하는 것보다 이 통합 관람권을 구매하는 것이 여러모로 저렴하다. 구매일로부터 1년간 유효하니 앞으로 2개월은 더 마드리드에 머물 나에게 손해는 아닌 것이다. 온라인으로 예약 구매하면 바로 QR코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것을 통해 프라도 미술관에 입장할 수 있지만, 나는 손에 잡히는 종이 입장권을 원했으므로 현장발권이 필요했다. 게다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발권한 통합 입장권에만 명화가 그려져 있다는 카더라 통신을 접하곤 여길 먼저 들른 것이다. 어차피 가는 길, 돌아가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중세시대 유럽 떼부자 귀족들의 저택은 대충 봐도 다 멋지구나. 천장도 높—고, 해가 쨍쨍하게 잘 드니 앞뜰도 멋지고, 물론 엉덩이는 매우 시렵겠지만 고풍스러운 대리석 의자도 멋지다(그래서 며칠 후 여기서 뽀라-추로스의 일종, 앞선 글에서 열광한-를 폭풍흡입한다). 지금은 명품 의류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특별전도 진행 중이다. 기다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내가 프라도를 정복하고 와 줄게!
어제 저녁 내가 마라탕 집으로 인도했던 두 명의 친구들이 말하길, 프라도 미술관은 대충 봐도 3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또 다른 민박의 친구는 2층의 ‘고야’ 전시부터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게 좋다고 말했다(한국에서 갤러리 관련 일을 한다고 했으니 이건 무조건 따라야겠다). 민박 스탭은 2시간 보고 지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1층을 관람하라고 한 마디 보탰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도 3시간 이상 있었지만 다 보지 못했는데, 프라도 미술관도 규모가 비슷한가 싶어 내심 긴장했다.
오후 1시. 티센 미술관에서 구매한 파쎄오 델 아르떼 카드를 들고 총총총 길을 건너 (중간에 공원이 있는데, 씨벨레스 광장과 이어지는 공원이다. 가끔 격렬한 집회도 열리고, 부랑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으며, 2인용 자전거 데이트 족이 쌩쌩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니 항상 주의하기.) 프라도 미술관 앞 광장에 도착했을 땐 문을 닫은 줄 알았다. 공사 중이라 미술관 외관은 볼 수 없었고, 티켓 판매처와 입장하는 곳에 진짜 아무도 줄 서 있지 않아서 씨에스타라도 하는 줄 알았다.
프라도 미술관은 안 쉰다고 했는데? 그렇다, 한인 민박 친구들의 조언이 바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여러분, 프라도는 9시 30분 땡하고 가지 말고 밥을 챙겨 먹은 뒤 1시에 가세요.) 이렇게 한산할 수가 있나! 계단 위로 올라가 기웃거리니 보안요원이 들어오란다. 그가 이동식 카드 단말기 같은 걸 손에 들고 내 티켓의 QR코드를 확인했다. 드디어 파쎄오 델 아르떼 카드도 개시! 공항처럼 보안검사를 했고 라커룸(무료)에 가방을 맡기고 맨몸으로만 입장할 수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내부에서 모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카메라도, 핸드폰도 큰 소용이 없어 보여 지갑만 빼고 가방에 다 집어넣어 맡겼다. 그리고 큰 후회를 했지!!
관람에 앞서 가운데 회랑에 한국어로 된 간략한 안내 팸플릿이 있길래 집어 들었다. 초 유명 대작들이 몇 번 전시관에 있는지 표기되어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안내 된 그림의 절반은 다른 미술관, 다른 나라, 다른 전시로 출장을 가서 보지 못했다는 슬픈 현실... (여러분, 유명인처럼 명화도 출장을 다닙니다.)
어쨌든 팸플릿에 표기된 미술관 구조도를 파악해 본다. 미쇼 씨는 엄청난 길치라 직진 밖에 못한다. 핸드폰 왜 집어넣었니, 검색도 못하고 ㅠ 그래도 가만히 보니 2층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감상을 시작한다. 궁정 미술가 시절의 고야와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의 작품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궁정 미술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을 담아낸 그림이 많은지라 물감의 발색이나 보존력, 질이 굉장히 높았다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었다. 2층의 다음 구역으로 가야하는데 응? 길이 없네? 다시 팸플릿을 본다. 저쪽에 다른 구역이 있는데, 어디로 가야되니?? 들어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나가는 무모한 나. 벌써 다리는 아파오고 관람 시작 1시간이 지나버렸다. 왼쪽 발목과 무지외반증 라인은 교통사고 이후 툭하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제 하루에 조금씩 나눠 1만보는 걸을 수 있으니까 잘할 수 있을거야. 힘내자, 일하자 두 다리야! 제발 버텨다오!!
그래도 전시관 중간에 의자들이 놓여 있기에 힘들 때마다 잠시 다리를 쉬게 해 줄 수 있었다. 앉아 다시 팸플릿을 들여다보니 1층에 내려가 회랑을 가로질러 반대편 기둥으로 올라가야 했다. 근데 여기가 대박일세. 루벤스와 라파엘로의 그림이 한 다발 있었다. 일단 가면서 한쪽 벽만을 보기로 했다. 루벤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둥글고 역동적인 몸짓, 날아갈듯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걸어갔다. 무사히 반대편 2층을 감상하고 내려와 다시 1층 회랑의 반대편 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라파엘로의 그림들이다. 세심한 그의 터치들에 고개를 한쪽으로 젖히고 그림에 빨려 들어갈 듯 서있었다.
1층 예술품들을 마저 본다. 유럽의 명화들을 감상할 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내가 심각하게 가톨릭의 이야기 즉, 성경을 모른다는 것이다. 진짜 웃기는 게 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익숙한 표현으로 미션스쿨)를 다녔다는 것이다. 학교 내 목사가 있었고, 매일 수업 전후에 주기도문을 외웠고(고3 땐 그걸 영어로 외워야 집에 갔다), 종교 수업도 있었다. 매주 금요일엔 학교재단 내 중고교 통합 예배를 강당에서 함께 봤는데도 기억에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시험 볼 땐 잘했는데, 깨끗이 잊었다. 찬송가만 좀 기억이 날 뿐. 옛 유럽 예술품의 절반 이상은 어쩔 수 없이 종교화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저 예수님과 마리아, 천사들, 마귀들, 제자들, 사도들인가 보다.. 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는 게 못내 아쉬웠다.
인상 깊은 작품들이 물론 있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최후의 만찬을 풍자한 그림이었다. 대개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의 것이 그러하듯 진지하고 경건하기 마련인데, 이 그림은 태도부터 판이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최후의 만찬 그 이후의 행오버 상태를 그린 그림이라고나 할까! 개들과 함께 술독에 나뒹굴고 있는 제자들, 예수님을 향해 주정 부리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린 게 정말 신선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역시 그랬다. 인체의 묘사와 배경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특이하게 사지가 각각 못 박힌 자세였다. 그동안 대부분 예수의 양 발이 포개진 그림 또는 조각상들만 봐 온 것 같았는데, 명화가의 명작임에 앞서 해석력이 흥미로웠다. 스페인 왕가는 정말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구나.
이제 램브란트, 반 다이크, 보쉬, 보티첼리의 그림을 마구 지나치는 가운데, 한쪽 방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여기 거대한 게 있나 보다. 가이드와 단체 관광객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 마침내 입성! 어머나, 고야의 ‘블랙 페인팅’이 여기 모여 있었구나! 궁정 미술사 시절 그의 그림들이 오색창연 몽실몽실 아름다웠다면 일명 ‘블랙 페인팅(검은 그림)’이라 묶여 불리는 시절, 고야 말년의 그림은 어두운 광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라도 내에 고야의 작품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웹소설을 공장처럼 돌려 자신의 이름만 부착해 발간하며 다작 하는 작가도 있다는데, 고야의 시대라고 그런 방식이 없었을까? 연애도 많이 하고 자손도 많이 낳고, 방탕한 시절도 보낸 고야가 아니던가? 이렇게 많이 그릴 수가 있나?? 어쨌든 그 유명한 <거인>(마드리드행 비행기 안에서 본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도 이 거인의 오마주가 나온다.)과 <사투르누스>를 보고 난 뒤 제목이 붙여지지 않은 여러 블랙 페인팅 작품 앞에 섰다. 분명히 윗층에서 ‘성 이시돌 축제’를 그린 고야의 멀쩡한 그림을 보았는데, 블랙 페인팅 속 사람들은 좀비 아포칼립스 뺨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염소의 탈을 쓴 악마와 함께 광기를 뿜뿜 발산하는 게 으슬으슬 무서워졌다. 그림의 혼들이 나를 두들겨댔다.
얼른 정신을 차려 자리를 피하니 그 유명한 <1808년 5월 3일>이 나타났다. 그림 속 총살을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분노와 공포와 의지와 참담함이 교차하는 그 선연한 눈빛. 그런데 나는 점점 다리를 절룩거리는 상황,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은 찰나 커피 냄새가 나를 부른다.
아! 민박 스탭이 커피를 마시라고 했었지!! 좌석을 보는데, 자리가 없어ㅠ 나보다 연로하신 백발의 노인들이 그 드넓은 프라도 미술관의 지하 카페테리아에 빼곡했다. 다 여기 계셨구나. 그래서 미술관이 한산했구나. 아아아아, 저 좀 살려 주세요 ㅠ 애절한 눈빛을 보내도 유럽의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차를 다 마셔도 수다 삼매경이다. 바닥에 잠시 주저 않았다가 양다리를 톡톡 다독이며 일어났다. 잠깐 다음 무료 개장 때 올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것이고 어쩐지 오늘 다 봐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0층도 격파! 이곳은 스페인이 유럽을 정복했던 시절에 각 국의 문화재(교회)를 뜯어 왔나 싶은 풍경이었다. 그림 한 점, 유물 한 점이 아니라 벽을 뜯어 조립한 모습이었다. 라스코 동굴벽화 뺨치는 한 교회의 벽화가 기억난다. 원시적이고 동양적인 묘사였다. 마치 이집트 신전 벽화에서 보듯 평면적인 그림은 잘 그렸다기보다 독특했다. 신기하고, 진귀한 모습이었다. 프라도 오피셜 굿즈에서 이 벽화를 엽서로 팔면 꼭 사야지 했는데, 안 팔아. 사진도 못 찍어. 핸드폰도 두고 와서 뭔지 검색도 못해. 에잉!!
한 도시에 여행자로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게 좋구나. 앞으로 산책하듯 프라도 미술관에 또 들를 수 있다. 밖에 나와 보니 오후 5시. 곧 6시부터 무료 개방이라 사람들 줄이 어마어마하다. 나도 얼마 후 저 줄에 합류하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승자가 된 기분을 만끽하며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입구 잔디밭에 걸터앉아 주스와 샌드위치를 꼭꼭 씹어 먹는다. 맛있구만! 이 날 처음으로 2만보를 넘게 걸었다.
피곤에 쩔었기에 창밖에 한창 버스킹 중인 보라레 사나이가 뭘 연주해도 숙면할 거라 예상했지만, 같은 방에 새로 입실한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삼촌 뺨치는 무호흡 병행 코골이를 시전해 그를 뺀 나머지 3명이 모두 못 자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고얀 것. 몸살이 난 나는 조식을 먹고 오후 1시까지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주말이지만 비가 내린 덕분에 아무도 창 밖 광장에서 버스킹을 개시하지 않았다.
프라도로 진격해 하얗게 불태운 미쇼 씨. 패잔병처럼 다리는 절룩거리지만, 지지 않는다.
다음엔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네 차례다!
BGM ㅣ Joe Satriani - If i could 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