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 라 카페오테크
" 이 정도면 됐나 ? " 3월 , 무려 21일에 내리는 함박눈 . 완전 무장 꽁꽁 싸매고 난 뒤에 관절까지 파고드는 음습한 기운을 물리 칠 수 있었다 . 눈으로 보고 있으나 비현실적인 풍경에 헛웃음 발사 . 어쨋든 오늘로 쭈쭈가 세상을 떠난지 100일째다 . 열일곱의 해를 함께 했고 녀석의 엄마아빠까지 합치면 스물다섯의 해를 우리가족과 온전히 함께한 개 가문(?)이기에 향과 초를 꺼내 피우고 쭈쭈를 추모한다 . 어디있던 포트에 물을 끓이는 소리가 나면 뽈뽈 달려와 내가 커피 끓이는 시간동안 옆에서 함께 해주던 아이,와 닮은 흰 눈이 펑펑 내린다 . 사고라도 났나 . 밖에선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 잿빛하늘과 무거운 공기 , 낮게 깔린 커피향 위로 향초의 심지 타는 소리 , 사이렌 소리가 더해지자 내 머릿속엔 2015년 11월의 파리로 가는 터널이 생겼다 .
2015년 11월 14일 . 우리는 파리에 있었다 .
테러 이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아주 늦은 밤 . 프랑크푸르트를 경유 해 파리에 도착했다 . 거리엔 경찰과 군인 , 용병까지 넘쳐났다 . 예약한 숙소는 공교롭게 '리퍼블리크(République)'역 주변 .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공연장 '바타클랑(Bataclan)' 과 거리 총격전이 펼쳐졌던 바로 그 지역이었다 . 이미 한 번 휩쓸고 간 곳에 테러범들이 또 나타나진 않을거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 그 시각 한국에선 민중총궐기 때 한 농민께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메이신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음 날 , 그 다음날에도 우리는 voltaire street를 말없이 걸었다 . 함께 걷는 파리의 시민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 끝없는 추모의 물결과 헌화들 , 새로 켠 촛불과 타고 남은 초들이 섞여 거리는 늘 아득한 향기로 가득했다 .
마레지구, 센 강변을 걸어가며 인간이기에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소중한것들을 이야기 했다 . 생루이 섬으로 이어진 다리위에서 거리의 악사들은 다시 노래했고 , 새들과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며 빛나고 있었다 . 상처를 딛고 일상을 지켜가는 파리지앵들을 보며 마음이 포근해졌다 . 순간 지나친 모퉁이에서 구수한 커피냄새가 나 휙~돌아보았다 . 작은 화원처럼 꾸며진 공간 속 테이블에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은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하거나 우쿨렐레같은 작은 악기를 만지작거렸고 그 앞엔 따뜻한 커피임이 분명한 찻잔들이 놓여있었다 .
" 너 커피 좋아하잖아 마셔야지 " A가 말했다 .
" 응 ... 그렇긴 한데.., "
" 가보자 " A가 다시 이끌어 [ 라 카페오테크 ]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
커피를 파는 '집' 보단 공간을 '선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 방과 방을 트고 이어논 구조는 안으로 들어갈 수 록 드넓었고 한 쪽 벽에 쫙 깔린 세계 각국의 스페셜티 커피들과 에어로프레스 , 케맥스 , 모카포트 , 피스톤(프렌치 프레스) , 필터드립 까지 다양한 도구를 선택해 커피를 추출 해주는 곳이 있었다 . 한 쪽은 커피와 관련한 소품들과 엔틱 가구들이 모여있었고 , 생두 마대자루를 이용해 만든 방석이 돋보였던 캐쥬얼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 나직한 음악소리와 그라인딩(원두를 분쇄하는)하는 소리, 유리잔들과 머신들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처음 밖에서 들여다 본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았다 . 서까래가 노출 된 천장과 여기저기 틈이 있어 사람 냄새 나는 테이블을 관찰하고 있으니 곧 점원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 . 둘의 음료는 한 접시에 담겨 나왔는데 어쩐지 다정한 온기가 흐르는 느낌 . A는 책을 꺼내 읽었고 난 음악을 들으며 [라 카페오테크]의 창밖을 바라봤다 . 강변을 따라 씩씩하게 걷는 사람들 , 서서히 개어가는 하늘 , 따뜻한 햇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처로움 보다 새롭게 얻은 소중한 일상을 비추고 있었다 .
♪ Daughter - Human https://youtu.be/MbCeyb9okac
p.s
[라 카페오테크]에 다녀온 후 한참 뒤에 지역명소였다는 걸 알게됐다 . 검색 후 찾아가는 번거로움 없이 내앞에 딱 나타나줘서 고마운 곳 . 요사이 파리에 다녀온 친구들에 의하면 완전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 너무 붐비기도 하고 이따금 친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할때도 있다고 한다 . 그럼에도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하다고 하니 혹시 방문 계획중인분들은 '생폴생루이', '노트르담', '셰익스피어&컴퍼니'에 가는 동선에 들러보시길 .
La Caféothèque de Paris
52 Rue de l'Hôtel de ville, 75004 Paris
https://goo.gl/maps/pRD8xHJP75R2
글/사진 ㅣJumi Kim https://brunch.co.kr/@zzu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