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란잔 Jun 15. 2018

거미와 거미줄

1987(1987:When the Day Comes, 2017作)


'거미와 거미줄 - 1987(1987:When the Day Comes, 2017作)'


구멍가게에 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고른 주전부리와 함께 코 묻은 돈을 내민다. 주인집 딸 연희(김태리)는 50원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얼무적 넘어가려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에 못 이기는 척 그냥 계산해준다. 이렇게 말하면서,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쯤 대략 30대 후반 정도 되지 않았을까? 그때의 연희의 세대가 지금 스크린 앞에 앉아 이 영화를 보고 있을, 인생의 중반쯤을 돌고 있을 그들에게 준 것은 단지 50원이 아니다. 뻔한 답이지만, 잘 먹고 잘 살수 있게 만든 사회 정치적 기반, <1987> 홍보영상에서 우연히 보았던 어느 인터뷰이(Interviewee)의 말처럼 '대통령 직선제'라는 당연한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준 기반, 그러니까 민주화일 것이다.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소재로 뜨겁게 만들어질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1987>을 보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30년 전의 역사의 파장이 현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시대를 넘나드는 일종의 사회 환경적 '유사성' 때문일 것이다. 원래 '공명(共鳴)'이라는 것이 두 개의 진동수가 맞아떨어져야 발생하는 현상이듯이, 1987년과 2017년은 같은 공진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87>을 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재작년에서부터 발발해 작년을 관통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한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 '이한열 열사 추모 집회'에 모인 이들의 실제 사진은 재작년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나갔던 우리의 모습과 겹치는 것을 부인할 수 없고, 탁 치니까 억하고 쓰러졌다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은 분야만 달랐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간 사건'과 국가 주도의 은닉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닮아 있다. 내가 말한 유사성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1987>의 흥행과 울림의 원인은 이 지점을 경유한다.


주연, 조연, 카메오까지 2017년 최고 흥행작 <신과 함께 - 죄와 벌> 못지않은 수많은 스타들의 이합집산이 펼쳐진다. 박 처장(김윤석)을 고정시켜놓고 하정우(최 검사)부터 시작해 윤 기자(이희준), 한병용(유해진), 연희 그리고 이한열(강동원)까지, 영화는 사건을 끌고 나가는 핵심 인물을 변주해나가며 군부 독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개인들의 작은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설경구, 오달수, 고창석, 김의성 등 많은 명배우들이 짧게라도 출연해 영화 내외적인 민주화를 위해 조력한다. 이것은 장준환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이른바 '연쇄 리액션의 영화'라는 작법을 위한 것으로, 결국 민주화를 이루는데 기여한 한 명 한 명의 묵직함을 이야기하기 위한 형식일 것이다.


<1987>의 외연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정도가 전부다. 본격적으로 영화 안으로 들어가도 이 영화가 지향하는 계몽, 공명, 울림 등의 큰 줄기는 나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한가지 내 마음속을 휘몰아치며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나로부터 박 처장(김윤석)으로 향하는 모종의 '동정심'. 그에 대해 분노가 일지 않는 나의 침잠의 내면. 나는 왜 그의 무덤에 침을 뱉고 싶지 않은 것일까? (지탄받을 논조 인지도 모르겠다. 오해하지 말자. 나는 그들을 옹호해줄 생각이 없고, 그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영화와 나의 교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할 뿐이다).



근작 중에서 <1987>과 비슷한 소재의 시대극이라면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 정도가 떠오른다. 여기서 박 처장과 비스름한, 소위 말하는 '군부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찾아본다면 <변호인>의 차동영(곽도원), <택시운전사>의 사복 조장(최귀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과 박 처장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차동영과 사복 조장은 단순히 '군부의 개' 그 자체로만 스크린에 전시되는데 비해 박 처장에게는 '개가 된 이유' 그러니까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 속에 나온다는 점이다. 그가 왜 이북에서 넘어와서 자신을 거역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겠다고 말하는 과도한 우국충절의 어긋난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1987>은 변명의 여지를 마련해준다. 그것도 가족의 죽음과 결부된 빼도 박도 못하는 커버를 쳐주면서까지. 이런 설정은 그를 무조건적으로 받드는 부하 조반장(박희순)에게도 적용된다. 다섯 식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가장으로써의 모습, 감옥에서 자신에게 고문당한 이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논지의 발언들은 어느 순간 그 또한 피해자의 위치에 올려놓는다.


<1987>의 포스터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6인의 주요인물들은 편을 알지 못하게 뒤죽박죽 섞여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포스터만 본다면 선과 악 혹은 우와 좌라는 이분법적 잣대도 찾을 수 없고, 일종의 대결구도도 보이지 않는다. 굳이 집어 내자면, 박 처장과 조반장이 한패거린지 영화를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게 위치 선정이 되어 있다. 영화는 애당초 <1987>의 등장인물들 중에 '가해자는 없다'라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이들은 1987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거미줄에 걸려있는 인물들인 셈이다. 그러니까 영화 <1987>은 거미줄을 친 거미가 줄을 한번 흔드니 실을 타고 전달되는 파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인물들의 리액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각자의 리액션은 거미줄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서로에게도 영향을 주면서 서두에 언급한 장준환 감독의 말처럼 어딘가로 끌려가기 시작하여 결국엔 거미에게까지 영향을 주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거미는 <1987>이 선택한 유일한 악역이자 가해자 바로 '전두환'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거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이 박 차장이기에 영화는 그에게 가장 많은 카메라를 허락했던 것은 아닐까?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발사(찰리 채플린)는 자신을 통치자 힌켈(찰리 채플린)인 줄 착각하는 군인들에게 독재자는 당신들을 개, 돼지 정도로 생각하니 절대복종을 하지 말라고 연설한다. 자신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전두환의 사진이 든 액자를 처연하게 쳐다보는 박 처장의 얼굴이 액자 속 전두환의 얼굴에 오버랩 된다. 그는 아마도 그때 자신이 개, 돼지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또한 결국 '각하의 심려'라는 파장에 무력하게 꼬꾸라지는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면 과언(過言)이고 실언(失言)일까? 어쨌든 나는 그의 무덤에 쉽사리 침을 뱉지 못하겠다.




★★★★ (별 4개)

진정한 가해자 '전두환'





작가의 이전글 영화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