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나는 계속 책만 읽고 있다.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잡히는 대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무언가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제일 쉽고 제일 좋아하는 일을 붙잡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는 글을 쓰는 시간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쉽고 즐겁다.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는 가장 편안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읽고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읽고 나면 삶이 조금은 또렷해지고, 내가 원하는 방향이 생기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아 막연히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 반대에 가까운 상태다. 책을 읽을수록 길이 선명해지기보다 질문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 적이 있는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그게 어디로 향하는지는 잘 모르겠는 순간.
시작은 겨울이었다. 하염없이 도서관과 집을 오가며 보내던 어느 날, 내가 겨울잠 같은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걸 느꼈다. 나는 겨울아이인데도 겨울이 제일 힘겹다. 추운 게 너무 싫고,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둔해지고, 모든 것이 느려지고 귀찮아진다. 거기에 아이들 방학까지 겹치면 '삼식이'들을 보필하느라 하루가 훅훅 지나간다. 겨우 기본적인 일들만 해내고 나면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책을 편다.
사람에게도 계절이 있는 걸까.
유독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기가 찾아올 때가 있다.
분석 일을 마친 뒤에는 오로지 책이다. 이불속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있는 시간이 어느새 세 달째다.
사실 이렇게 계속 읽을 수 있는 데에는 나만의 작은 방식이 하나 있다. 나는 보통 한 권의 책만 붙잡고 읽지 않는다. 두세 권을 동시에 펼쳐 둔다. 어떤 책은 술술 읽히고, 어떤 책은 이상하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그냥 다른 책으로 손을 옮긴다. 그렇게 책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읽은 책들이 자연스럽게 쌓여간다.
물론 완전히 고립된 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부르면 어김없이 나간다. 만나서 웃고 떠들고 회포를 풀고 돌아온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책을 편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진다.
그래서 지금 이 글도 꾸역꾸역 쓰고 있다. 글을 놓아버리면 아예 쓰지 않게 될 것 같아서다. 브런치도 멀어진 느낌이고 글도 멀어진 느낌이 들지만, 억지로라도 붙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 3년은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돈 공부, 독서, 새로운 일들. 부지런히 배우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까.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어느 날 문득 멈춰 서 있는 기분이 드는 순간.
돌이켜보면 그 시작도 책이었다. 돈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도, 부자들의 생각을 다룬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묘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겪었고, 어떤 사람은 아주 평범한 삶에서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읽다 보니 '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경제 공부를 시작했고, 투자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의 루틴을 만들고 작은 습관들을 붙잡으며 살아갔다. 그때의 독서는 분명 방향이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어디로 가고 싶은지는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내가 더 낯설다.
3년 전보다 삶은 훨씬 윤택해졌다. 즐거운 순간도 많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묘하게 정체된 느낌이 든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걸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들이 생활화되어 기본이 되어버린 걸까.
예전에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삶이 힘들어도 재미가 있었다. 시간을 쪼개고 겨우 해내고, 그날의 뿌듯함으로 하루를 마감하며 성장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루틴이 당연해졌다. 돈 공부도, 독서도, 생활도 모두 익숙한 일이 되었다.
결혼 13주년 즈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둘만의 데이트를 하던 날 우리 둘은 같은 마음을 확인했다. 우리도 요즘 조금 루즈해졌다는 것. 삶이 나쁘지 않은데도 심장이 덜 뛰는 느낌이 있다는 것.
주식도 그렇다. 배당주나 주식을 하며 경제 상황을 지켜보고 공부하는 일은 이미 루틴이 되었다. 최근 한국 주식장이 달릴 때 저점에서 모아둔 것들이 두 자리, 세 자리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이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팔아야 할 때 팔기도 하고, 그대로 두기도 하며 지켜보고 있다.
나는 주로 안전하게 움직이는 돈그릇이다. 한방이 없다. 그래서 가끔 흔들린다. 누군가 1억을 투자해 한 달 만에 2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잠깐 마음이 찌그러진다.
나는 너무 조심만 하는 건 아닐까.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나는 너무 느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다가도 다시 돌아온다.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게 오래간다. 흔들려도 버틸 수 있고, 장이 좋지 않아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느긋하게 지속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주식은 내 스타일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크게 동요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무언가 새로운 삶. 새로운 루틴. 새로운 성장의 발판. 다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어떤 것.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다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아하"하고 떠오르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예전에 지인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책은 키스를 문서로 배우는 것 같아."
요즘의 나는 딱 그 상태인 것 같다.
경험과 행동으로 나아가야 할 때 계속 책으로만 배우고 있다. 읽을수록 삶의 방향이 또렷해지기보다 질문이 더 많아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오늘도 책장을 넘긴다.
읽고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상하게 책을 덮고 나면 아주 잠깐은 안심이 된다.
방향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완전히 멈춘 삶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