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테리언니 백예진 Apr 30. 2024

양계장집 딸의 추억



도시에 사는 지금은 살아 움직이는 닭을 보거나 울음소리를 들을 일이 별로 없지만, 어쨌거나 여러모로 닭을 사랑하는 나라에 살다 보니 그래도 문득 산 닭들을 마주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닭의 얼굴 뒤로 여러 기억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친가는 양계장을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셨던 양계장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의, 아파트처럼 생긴 닭장에서 닭을 키우며 얻은 달걀을 납품하는 농장이었다. 듣기로 축산과를 전공한 아빠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 농장 일을 도우셨다고 했다. 이후 엄마와 결혼을 하고 내가 태어난 뒤 아빠는 고양시 덕양구에서 가축약품 가게를 운영하셨다. 어느 소 농장에서 송아지가 태어나면 상태를 살피러 출장 검진을 가고, 돼지들에게 단체로 예방 접종을 하러 다니고, 가끔은 동물원에 가서 눈병 난 악어도 치료하셨다. 그렇게 왕진을 다니면서 아빠는 본인의 가축 농장을 갖고 싶다는 꿈을 점점 확고히 꾸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우리 가족은 도시를 떠나 아빠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 설립한 양계장이 있는 시골로 귀촌했다. 우리가 사는 조립식 주택 바로 옆에 양계장이 쭉 연결돼 있었다. 아빠의 농장은 할아버지의 작은 농장과 많이 달랐다. 수십 마리 닭이 비좁은 닭장에 다닥다닥 갇힌 모습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컸다. ‘하우스’라 불린 농장은 총 3동이었는데, 1동이 무려 400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게다가 사료도, 물도, 약도 때가 되면 기계가 자동으로 공급해 주는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고, 그만큼 전기 소비량이 상당해서 우리 집 전용 전봇대가 아예 따로 있는 수준이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우리와 다른 외모를 가진 삼촌들 서너 명이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이었으니 당시로서는 정말 최신식 초대형 양계장이었던 셈이다.  





아빠의 농장에서는 달걀이 아닌 닭을 키워서 계육을 대기업에 납품했다. 그러려면 건강한 병아리를 데려오는 것이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한 과정이었다. 2달에 1번씩 병아리가 가득 담긴 박스가 트럭에 실려 양계장으로 왔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그 박스 냄새는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다. 살짝 쿰쿰하고 쾨쾨하고 고릿하고. 그런데 병아리들의 체온이 느껴지는 아주 따뜻한 냄새였다. 아빠 직업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동물과 친밀하게 지내며 자라온 나는 새 병아리들이 들어오는 날엔 항상 아빠를 졸졸 따라 양계장을 갔다. 양계장을 찬찬히 돌아보며, 아빠는 아프거나 기형인 병아리들을 따로 데려왔다. 어린 나로서는 그렇게 아픈 아이들을 보는 게 두려울 때도 있었지만 궁금했다. "얘는 왜 아픈 거야?" 작고 아픈 병아리를 보며 묻는 내 작은 손을 아빠는 잠시 동안 꼭 잡은 뒤 이내 병아리들을 쓰다듬으며 이 병아리들이 어디서 왔고 왜 아프게 됐는지 설명해 주시곤 했다. 





그렇게 남은 초등학교 생활은 먼 가족인 병아리와 닭들, 보다 가까운 가족인 강아지들과 양계장에서, 집 앞마당에서, 또 도랑에서 같이 뛰놀며 자랐다.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는 자연과 탐구 생활이 바로 우리 집에 있었다. 나보다 빠른 속도로 무럭무럭 자라는 병아리들이 벼슬을 다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흰둥이’와 ‘다롱이’라고 불린 우리 강아지들이 낳은 새끼들 대여섯 마리를 집 앞 원두막에 데려가 쭉 늘어놓고는 아직 눈도 못 뜨는 애들의 입에 젖병을 물려 우유를 먹여 가며 키웠다. 엄마가 된장국에 넣을 우렁을 가져오라고 하면 남동생과 함께 작은 바구니를 들고 집 앞 개울로 달려가 우렁을 한가득 가져다 드렸다. 





가끔은 닭들을 노리는 너구리나 족제비, 살쾡이가 새벽에 몰래 들어와 양계장을 초토화시키고 가서 다음날 농장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 녀석들이 꼭 새벽 2~3시쯤 오는 터라 엄마 아빠가 참 고생하셨는데, 어린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 너구리가 너무 보고 싶고 궁금해서 따라가곤 했다. 잠복한 엄마 아빠 옆에서 두더지도 처음 봤다. 만화에서처럼 몽실몽실 귀여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주둥이가 긴 쥐에 가까워서 기겁했던 기억이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니 즐거웠던 기억이 정말 많다. 또래 중에서도 참 특별한 경험을 하며 자랐다. 한가롭고 명랑하고 따뜻한 시골 생활이었다. 우리 집을 한방에 집어삼키고 만 거센 풍파, 조류 독감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이전 02화 나를 키운 팔 할은 자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