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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Life Jul 15. 2015

타일의 미학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의 어느 세입자





젊음은 어리석으며 아름답다.



어리석기 때문에 무모한 시도 속에서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이 발하는 것이리라. 한때, 젊음을 만끽했을 우리 모두 정해지지 않은 삶의 단계를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일조량이 턱없이 모자라던 어느 겨울, 원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종로구 서촌 일대 구석진 골목 끝으로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옮긴 것이 2011년 즈음이었다.



"화장실도 밖에 따로 있어 사실 번거로운 점이 있죠. 그래도 가능한 한 여기 오래 살고 싶어요. 이 동네가 한옥 보존 지구라 마음대로 건물을 헐고 지을 수 없거든요. 거기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이 좋아요. 살고 있는 동네가 너무 휙휙 바뀌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잖아요. 여기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 2012년 여름. 마리끌레르 인터뷰




재계약을 하고 한 해가 더 지난, 그러니깐 한옥에서 지낸 지 3년이 넘어가고 있을 때다. 처마 밑으로 스미는 따스한 볕도 좋고 수시로 변하는 시절이 피부로 와 닿는 것도 좋았다. 비가 내리면 지붕 위로 튕기는 빗방울 세례도 음악 소리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슬며시 권태가 밀려온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삶의 단계를 한 발 오르려 했기 때문일것이다. 한옥에서 가장 처음 손을 본 공간이 부엌이었다. 수십년 꽉 막혀 있던 합판과 벽지를 뜯어 냈더니 두 평 남짓한 작은 부엌이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합판과 벽지로 둘러싸인 가벽을 뜯어 내자 옻칠한 기둥이 나왔다. 풀 먹은 벽지를 벗기느라 애를 먹었다마는 감춰진 속살이 슬금슬금 드러날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던 짜릿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골조에 문지방과 실외 장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전통 한옥의 부엌처럼 실내외 중간 개념의 공간이었을 듯 싶다. 


못질과 '소로'가 붙어 있던 흔적이 확연히 드러나는 뼈대. 1930년대 무렵, 근대화라는 과업을 떠안은 도시 주택을 비롯한 도심 근린 시설은 '개량'이라는 명목 아래 변화의 바람을 맞았다. 이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이 바로 그 산물이다. 한옥의 기본 골조는 갖추고 있으나 전통한옥의 모습과는 다른 요소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 가구 다리 붙여 싱크대 높이를 맞추고 인조 대리석 재단까지 손수 설계한 한옥의 주방

* 세라픽스와 타일 간격재, 줄눈 시멘트와 타일 절단기가 있다면 타일 작업은 언제나 기꺼이. 

* 때마침 한국에 상륙한  IKEA는 싱크볼과 수도꼭지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 중간 보에 설치한 선반은 한옥의 시렁 느낌이 제법 나네요. 

* 중간보에 덧씌워진 페인트 자국이 자꾸만 거슬리다가 불현듯 미감이 밀려오더이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 벗겨지고 빛바랜 프레스코 벽화의 아우라 같이요. 회칠을 머금은 자국은 다락을 받치고 있던 지지대의 흔적입니다. 애초에 이 부엌은 복층 구조였던 셈이죠.  




* 조리대와 마주한 공간은 수납장과 냉장고로 채웁니다. 



* 모양과 색감이 모두 다른 바닥 타일은 셀프 시공의 허물을 기꺼이 덮어줍니다. 



도시가스가 대대적으로 보급되자, 배관 구조물이 주택과 건물의 벽과 기둥을 뚫고 지나간 시절이 있었다. 밸브와 버튼 하나로 현대인을 따스하게 감싸안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가스 대신 전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자 주방으로 침투한 가스 배관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배관 구조물 철거는 가스 공사에 의뢰하면 된다. 




외부 공간을 실내로 들여오며 증축한 알루미늄 샷시, 오래된 집인 만큼 다양한 주거 형태가 켜켜이 쌓였다. 



한옥집 마당 한편에 옥상이 딸린 외부 화장실이 증축될 때부터  있던 수도꼭지 일체형 세면대는 구청에서 발행한 스티커와 함께 작별을 고했다. 2015년 여름, 또다시 삶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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