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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5. 2024

제주 동쪽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들

제주 성산읍 맛집 소개

 처음엔 영 낯설고 편의 시설이 멀어 불편했던 제주 성산읍 바닷가 마을도 지내다 보니 정이 간다. 이곳이 좋아진 가장 큰 이유는 맛집이 많아서이다.


 우리 부부는 여행 중 점심 한 끼는 외식으로 해결하는데, ‘맛집 찾아 삼만리 & 웨이팅은 기본’과는 거리가 먼, 인근에 있는 깔끔해 보이는 식당으로 쓱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의외의 선물 같은 맛집을 만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심하게 실망하며 식당을 나설 때도 있다.

     

 성산읍에서 3주 차를 지나고 있는데, 3번 이상 갔던 식당이 3곳 있다. 위의 문장에서 뽑자면 생일도 아닌데 받은 선물과 같은 맛집들이었다. 자극적인 맛을 썩 좋아하지 않는 부부가 고른, 당연히 내돈내산, 성산읍의 맛있는 식당을 소개한다


#쉐프1192레스토랑


나는 이곳에서 먹어본 메뉴 중 해산물 오일 파스타와 스튜가 가장 맛있었다.

특히, 셰프님 아버님께서 당일 아침에 잡아온 생선을 넣어 만들었다던 마레 스튜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아버지는 생선을 낚고, 아들은 그것으로 요리를 하고, 며느리는 요리를 서빙하는 시스템이 인상적이었다. 바다뷰를 마주한 채 식사하며, 음식 재료가 바로 저곳에서 나왔구나 생각하니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사장님 부부 왜 이렇게 친절하신지! 맛있고 친절한데 합리적 가격까지 갖추어서 2번, 3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마레 아이올리 파스타

    

마레 스튜


#효자보말전복칼국수


깅이죽과 칼국수

비주얼은 엥? 스럽지만 맛은 기가 막히다. 특히 칼국수 국물이 담백한데 깊은 맛이 있어 계속 떠먹게 된다. 나는 몸이 찬 편이라 수족냉증이 있는데, 여기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속은 뜨끈하고 손도 따뜻해진다. 밥을 먹었다기보다는 보약을 먹은 느낌이 들어, 목이 칼칼해지며 감기가 오려할 때면 이곳의 칼국수가 생각난다.

+ 만두도 맛있다!


#분식후경


부추김밥과 미나리김밥
이런 음식 철학 좋아요~♡

김밥덕후로서 인정한 김밥 맛집이다. 김밥에 들어간 재료는 세 가지뿐인데 맛은 놀랍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외식 메뉴가 김밥이 아닐까. 집에서 김밥을 싸 보면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데 대체로 볶음밥보다 김밥이 저렴한 것이 이상하다. 맛있는 김밥집을 찾으면 득템이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성산읍에서 갔던 십 수 개의 식당 중 단 한 군데에서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실망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우리가 억세게 운 좋게 맛집만 쏙쏙 골라 들어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가본 식당 중 최하가 일반적으로 평균 이상의 맛이었다. 친구의 남편이 은퇴 후 제주에서 식당을 하며 살고 싶다고 했는데, 제주 동쪽은 웬만하면 피해서 자리 잡으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예전에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런던에서 한달살기를 하는 동안, 우연히 방문한 집 앞 펍이 마음에 들어, 매일 저녁 일정한 시간이 되면 그 펍의 같은 자리에 앉아 늘 마시는 술을 마시며 한 달을 보내다 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며 작가는 굉장히 안정적인 사람이구나 느껴졌다. 그까지 가느라 쓴 비행기 값이 아까워서 하나라도 더 보고 한 군데라도 더 가봐야 한다는 본전 심리가 발동 걸릴 만한데, 여행 중에도 하나의 루틴을 만들어 하루를 정리하는 모습이 여유롭고 멋있어 보였다.

      

 직장 생활 중 3박 4일 꿀 같은 휴가를 얻어 제주에 온 거였다면 나도 지금과 같지 않을 테다. 인터넷상 최고의 평점을 받은 곳들만 방문하는 제주 3박 4일 코스를 엑셀로 만들어 왔을 거다. 암 그러고말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 대문자 J니까.

     

 MBTI가 열풍일 때 나도 그 안에 갇혀서 나와 지인들을 이해하고 재미있어했다. 환경을 달리해서 살아보니 MBTI가 아닌,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고 느낀다. 내일도 다음 달에도 이곳에 있을 거라는 상황이 나를 여유로운 사람이 되게 한다. 


 저녁에는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집 옆의 레스토랑에 슬리퍼 끌고 가보려 한다. 손님이 뜸해져 사장님이 바쁘지 않은 시간이 되면, 인상 좋은 사장님 부부께 이 식당 덕분에 성산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집 앞에 맛집 세 개만 있으면 살만한 동네이고, 마음 맞는 이웃 세 명만 있으면 좋은 동네 아니던가.


성산읍 온평리도 살만한, 좋은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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