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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an 20. 2022

어스름의 나라에서

발트의 길과 두 번의 독립기념일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처음 임지가 결정되고   있었던 다른 도시들이 속물처럼 너무 좋아 보였다. 대뜸 교원지원센터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임지가 바뀔  있는지를 질문하는 내게 담당 직원은 

“선생님, 빌니우스가 제일 좋아요”라고

행간에서 느껴지는 ‘지금은 뭔지 모르시겠지만’ '가보면 좋아하실 거'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위로인지 뭔지 모를 대답을 했다.       


이름도 낯선  도시, 빌니우스 그리고 리투아니아


“여긴 어딘가?”, “어찌 이런 일이......”하며 배부른 푸념을 하던 나는 백신을 부지런히 맞고 아마존에 초급 리투아니아어 책을 주문하고 시차 7시간을 극복하며 리투아니아 학생들과 새벽 수업을 하며 마치 얼굴도 모르고 시집가는 시골 처녀처럼 출국을 했다. 이제 빌뉴스에 온 지 삼 개월이 되어간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리투아니아에 대한 정보

주입식 교육으로 배웠던 발트 삼국 중 하나, 1990년대 소련에서 독립했지 아마......

그리고 린넨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뭐 하나 시원하게 알지 못하고 마주했던 리투아니아한국어 학습자들은 우선 온라인 줌 교실에 광고용 조명등이 켜진 거처럼 너무나 예뻤다.

뭐지? 이 만화 속 주인공들은? ‘아르미안의 네 딸들’도 아니고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미인들이지?

그리고 조용하고 차분하고 똑똑했다.

학생들의 질문은 늘 더 정확한 설명을 못 건네는 내 부족함을 반성하게 했고

아우구스티네, 아나스타샤, 예바, 다리우스, 나탈리아 같은 학생들 이름은 마치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의 이름처럼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 같았다. 특히 리투아니아어에 있는 독특한 발음들과 인토네이션은 마치 얼음 위를 스케이팅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순식간에 발음해야 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여전히 학생들의 이름을 읽을 때나 지명을 읽을 때 잔뜩 긴장하지만 나의 이 어설픈 리투아니아어에도 늘 사람들은 기분 좋게 웃어 주며 반응한다. 갈 길은 멀고 배울 건 많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굉장한 축복임을 알기에 최대한 비슷한 흉내를 내며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아직은 배운다기보다는 관찰하고 있는 수준이다.               



   주말 아침 학생들이 구시가지를 산책하자고 연락이 왔다.

이곳 학생들은 이상하게도 만나자는 장소를 무슨 공원, 대성당 앞 광장에서 만나자고 한다. 오늘의 약속 장소는 빌뉴스의 광화문 같은 시청 앞 광장이다.

예쁘게 반짝이는 시청 앞 성탄절 트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여전히 빌뉴스의 가장 핫한 장소인 이곳은 아이를 데리고 혹은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로 날씨는 영하지만 온기가 가득하다.

빌니우스  광화문 시청 앞 광장과 대성당 앞 광장

트리가 사라진 게 너무 아쉬워서 트리가 없어졌다고 말하니 예바가

“선생님 이제 독립기념일 행사할 거예요”

“아마 그때는 여기 사람 많을 거예요” 라며 코트리나가 거든다.

시내의 가장 북적이는 곳이라고 해도 한국의 지옥철과 명동 인파를 기억하는 나에겐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 빌뉴스 올드타운인데 의아해하며

“독립기념일 행사가 큰가 봐요?”

“네 선생님 소비에트 유니언에서 독립할 때 여기서부터 에스토니아 탈린까지 사람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었어요.”

“아.... 그렇구나.”

“2월 16일은 독일에서 독립한 날이고 3월에 독립기념일이 또 있어요.”

한 나라에 독립기념일이 두 번있다고 설명하는 학생들의 말에는 힘이 있고 결연하다. 설명하는 은연중에는 독일과 러시아에 대한 반감도 느껴진다.

'짐작도 못할 일들을 겪었겠구나.' 이제야 학교 로비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진전에 왜 탱크 앞에 서 있는 시민들의 사진들이 있었는지 이해됐다.

독립기념일 행사로 진행되는 학교로비의 사진전

리투아니아는 국명이 1009년의 라틴연대기 Annales Quedinburgenses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이후 1차 세계 대전 이후 1918년 독일에서 독립했지만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 후 소련의 몫으로 추가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이후 1940년 다시 소련이 점령하게 된다. 1944년 나치 독일이 패배하면서 다시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소련군은 독일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리투아니아인들을 박해하여 29923가구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12만 명이 국외 추방되거나 북유럽, 미국 등지로 망명했다. 1990년 3월 리투아니아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비로소 1991년 9월에 독립했다.

학생들이 말해주었던 인간 사슬은 1989년 8월 23일 약 200만 명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가로지르는 675.5 킬로미터를 서로 팔짱을 끼고 손을 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어했던 평화시위를 말한다. 발트의 길, 혹은 발트의 고리, 자유의 고리라고도 한다.

학생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찾아본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고 그제야 이 나라의 폐쇄성과 쉽게 마음 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열 정도로 상처가 많았음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빌뉴스 대성당앞의 발트의 길 표시석(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
1989년 8월 23일 발트의 길을 만들고 있는 리투아니아 시민들 (사진출처: https://ko.wikipedia.org/)

어느 도시든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품위가 있다. 빌뉴스의 사람들은 조용하고 타인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차갑지만 조금만 친해지면 친절하고 더없이 따뜻한 미소를 보여준다. 이것은 결코 제국주의 이름으로 함부로 굴었던 몇몇의 부자나라가 가지고 있는 천박함, 표리부동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품이다. 그러기에 역사는 솔직하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이다.  고통을 품고 견디고 이겨낸 사람만이 알고있는 가질 수 있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과 진실된 마음이 도시에 이 나라에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느 날 나에게 찾아와 준 이 도시가 아직은 짝사랑 수준이지만 점점 멋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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