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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영희 Mar 21. 2022

살기위해 미친듯이 일상을 붙들고 갑니다.


코로나 19 !

이 단어를 모르는 이도, 이것으로 생활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이는 이 지구상에 한명도 없을것입니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고 원인은 알수 없지만 정말 진저리치도록 끔찍하고 힘든 바이러스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고 그나마 기본적인 인권이 보호되는 나라에 감사하게 태어난나는 약 3년째 그 불편함과 공포로부터 잘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언론에서 만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마음에 쓰라린 감정들을 가져오긴 했으나 또 이내 망각과 현실의 사연들에 파묻혀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나도 그 피말리는 사연속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일어나지 말았으면 했던 상황을 기어이 맞이하고 만 것입니다.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던 엄마가 코로나가 감염이 된 것입니다. 


그 병원은 재활병원이지만 입원환자의 대다수가 노인이기 때문에 특히나 코로나에 민감한 정책을 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면면회는 애당초 금지였고 갑자기 확진자가 급증한 3월초 부터는 비대면 면회도 중단되었습닌다. 


한달에 한번 유일하게 엄마에게 화이팅을 보내주던 나는 그마저도 중단된 면회소식에 엄청난 슬픔을 만났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건강한 것이 먼저이니 어쩔수 없다 생각하고 특별한 불만없이 그렇게 받아 들였습니다 


사실 조금은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비대면면회도 중단되었던 사유가 병원내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환자들의 동선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같은면 코호트격리를 하는데 바뀐 방역지침으로는 공간만 분리하면 된다고 병실만 옮긴다고 했었습니다. 그때 제가 병원관계자에게 그랬습니다. 


"병원층수를 달리하지 않으면 그곳에서 일하는 간병인, 간호사, 의사, 식당관계자들이 동일한데 감염될 확률이 너무 높아요. 병원의 인력문제가 있겠지만 입원실 층수를 달리해 주세요.  건의드려 주세요."


제 말이 아무리 합당하다 해도 중대본의 지침과 병원의 원칙으로 깡그리 무시되고 엄마는 코로나 환자들이 있는 같은 병동에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주일전부터 오한과 발열이 보여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를 하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걱정으로 기다렸지만 다행히 음성이라 해서 안도를 했습니다. 


음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양성이라고 해도 음성이라고 우기고 싶은 심정인데 당연히 믿었고 의심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힘들었던 겁니다. 그러다 목요일 오후부터 의식이 없어지고 호흡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신속항원은 계속 음성이었습니다. 

다급해진 병원은 그때서야 pcr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어제 양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코로나라는 것이 의심되어도 확정판정이 없으니 그에 맞는 치료처방을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오롯이 몸으로 이겨내어야했습니다. 

엄마는 올해 83살입니다. 보통의 시기같으면 조금은 더 건강할 수 있는 나이지만 2019년 2월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편마비가 온 상태에서 2021.9월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다보니 체력이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그 작은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겁니다. 

의사선생님은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었는지 목요일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또렷히 말씀은 안했지만 분명 뉘앙스는 최악의 경우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엄마가 그 병원으로 간것은 2021.10월 말이었습니다. 


거의 5개월동안 비대면 면회를 빼고는 제대로 이야기도 안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굴도 못보고 그렇게 보낸다고 생각하니 미칠듯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달려가서 엄마를 보고 안아주고 힘내라고 격려를 해주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눈물이 납니다. 이 사실을 안 제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걱정이 쏟아져 내립니다. 일상을 너무 멀쩡하게 살아가려고 하지말라는 걱정들이 봇불을 이룹니다. 


곰곰히 나를 들여다봅니다. 참 미치도록 감정에 푹 젖어 있습니다. 

어제는 점심시간 직전에 엄마의 코로나 양성확진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되었으니 급식소를 갔고 점심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밥 한숟가락과 눈물 한방울, 국물 한숟가락과 서러움 두덩이가 목구멍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고도 꾸역꾸역 밥을 먹었습니다. 

언젠가 쓴 글 처럼 '눈물이 나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모든걸 내려놓고 푹 쓰러져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두려운 생각이 동시에 올라왔습니다. 과거 오래전 정말 우울증으로 그렇게 쓰러져 본적이 있는 나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힘든것을 피하고자 그것을 택하는 순간 몸과 마음이 완전히 블랙아웃되는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일정시간이 지나고 그 수렁같은 곳에서 다시 나오고 싶다고 싶게 나올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몇년동안 끝없이 투쟁으로 얻어낸 이 시간을 한순간에 오롯이 반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살기위해 미친듯이 일상을 붙들고 갑니다. 3000미리 비타민도 꿀떡꿀떡 마시고 홍삼도 먹고 운동도 평소보다 더 오래 힘차게 합니다. 이웃들의 격려에 댓글도 더 열심히 달고 카톡방의 친구들에게도 더 대꾸하고 나는 결코 놓칠수 없는 나의 이 기운을 더 단단히 붙들고 갑니다. 


선택은 두가지입니다. 놓고 눕던지 아니면 단단히 붙들고 걸어가던지~

누군가는 저러다 끊어지면 어쩌나 걱정하지만 어차피 둘다 리스크는 있습니다. 

놓고 눕는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붙들고 걸어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동안 나는 그리도 노력하고 성찰하고 고민해온 시간이니까요. 


엄마가 저리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힘내라고 이겨내라고 빌고 있는데 내가 드러누워 있을수는 없는 일입니다. 나의 이 에너지가 엄마에게 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좀전 병원에 전화를 해 보니 엄마는 여전히 아무것도 못먹고 있답니다. 

언젠가는 헤어질 운명은 분명했지만 그것이 내가 인정하는 상황이냐 아니냐의 차이하나로 마음이 이리도 갈갈이 찢겨갑니다. 설사 가다 넘어지더라도 미리 주저앉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이 서러움의 크기가 너무도 커서 두렵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함께 해주는 여러친구들에게 감사전합니다. 

오늘도 나는 삶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어제와 같은 아침인사를 나눕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의 오늘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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