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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Jan 23. 2022

남자끼리 캠핑은 안 받는다니


5년 전 여름이었나, 남자 셋이서 밤바다에 소주나 한잔 하고 싶어서 펜션에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차근차근 금액과 위치,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예약자가 몇 명인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길래 30대 남자 세명이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유, 남자 단체는 안 받아요. 저번에 한 팀은 방에서 담배피고 난리를 쳐서... 이거 원."


나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사래를 치며, 저희 모두 비흡연자이고 술도 밖에서만 먹고 들어올 거며 조용히 쓰고 나갈게요, 라고 부탁해서 겨우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얼마나 깨끗한 사람들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퇴실을 할 때 아예 대청소를 하고 나왔다. 그 이후로 나는 언제나 입실보다 퇴실이 깨끗한 여행을 추구한다. 이렇게 하면 선입견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을까.




최근에 중년 남자 단체 손님을 받지 않는 '노중년' 캠핑장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손님이 곧 '돈' 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것은 경제적 이득을 포기함과 동시에 차별 논란, 평판 하락 등의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인데, 꽤 많은 사업주들이 노중년, 노키즈, 노교수... 등등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캠핑이 무슨 클럽 나이트냐? 앞에서 외모 검사하게, 라는 말도 곧 나오겠지)


게다가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구간이 40-50 대 인 것을 감안했을 때, 그들의 소비력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확실히 높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돈 쓰는 스케일이 달라진다는 시기. 이러한 그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당장의 엄청난 수익을 포기할 만큼, 노OO 으로 일컬어지는 집단이 사업주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인지는 상황마다 다르니, 이거라고 딱 정해서 말하긴 어렵겠지만.


자영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당분간 할 계획도 없는 입장에서 그런 사업주의 심리가 흥미로우면서도 조금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얼마나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 몇 년만 하면 누구나 인간 혐오에 든다던데, 그걸 어떻게 평생 동안 할 수 있을까. 공무원이나 은행원들이 빨리 승진해서 데스크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백화점... 지못미...)


아이러니하게도 식당 사업주가 가장 좋아하는 손님이 20대 남자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말도 없이 밥만 먹고, 남기지도 않고, 빨리빨리 나가고, 클레임도 없고, 머리카락 나와도 그냥 빼고 먹는 쿨함의 절정체. 그리고 가장 꺼려지는 손님이 50대 남자라는 충격의 결과(?). 도대체 3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노OO 로 한꺼번에 묶인 집단에서 분명히 억울한 사람들도 많겠지, 같은 나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죄. 사실상 이런 손님 가려 받기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일 것이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조용히 밥만 먹는 다소곳한 아이, 꼰대 아닌 교수, 신사적인 중년.



필자는 운이 좋은 건지, 여태껏 다행히 누군가에게 을이 되는 상황이 별로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비슷하겠지. "내가 누군 줄 알아?" 라는 말을 쉽게 들을 일도 없거니와, 만약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쪽이 누군지 관심 없어요. 그냥 가세요."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갖고 있음에 가끔은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고, 이제 50대까지 15년 정도 남은 입장에서, 조금만 지나면 친구들이랑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겠구나, 하는 조금의 걱정도 있다. 마치 이를테면, 강변북로에 실수로 들어온 오토바이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지하철 여성전용칸에 모르고 들어간 남자의 심정, 멋모르고 신입생 엠티를 따라간 시조새 고학번 선배님의 마음을 간접 체험하는 날도 오겠지. (여기 왜 오셨어요?) 


앞으로 어디 가고 싶어도 캠핑장이나 펜션에서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차박을 배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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