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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26. 2016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밤은 어느 누구의 낮보다 아름답다

가장 오래된 길 그리고 어쩌면 가장 솔직한  그곳

편견은 프레임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프레임을 가지고 외부 정보를 받아들인다.


프레임은 제법 똑똑한 역할을 해낸다. 이제껏 쌓인 프레임으로 생각과 판단의 비효율성을 제거하여 경제적인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치마를 입었으면 바로 여자라 생각하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을 보고는 엮이고 싶지 않아 자리를 피한다. 소년이라면 바비  인형보다는 로봇을  좋아할 것이라 판단하여 로봇 선물을 미리 준비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대부분 맞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예외는 있는 법.

무서운 것은 프레임이 도움이 될 때가 아닌, 우리가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는 것,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 프레임 안에 갇힌 것을 모르고 그 프레임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 그리고 홍등가라는 프레임"


여기 각 나라의 도시들이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섰다.

각자의 매력을 뽐내기 전, 자신들의 가면을 쓰고 관중들에게 그 매력을 사전에 어필하고 있다.


에펠탑 형상의 가면을 쓴 도전자는 낭만으로 가득 찬 사전 심사평을 받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면 속 도전자는 자연과 하나 된 디자인이라며 찬사를 받는다. 두오모 가면을 쓴 도전자는 패션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여기 'Iamsterdam'이라는 유명한 Letter 가면을 쓴 도전자는 퇴폐적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이내 이 도전자는 가면이 빨개지고 관중들은 저럴 줄 알았다며 손가락질을 한다. 어떤 이는 퇴폐적일 뿐만 아니라 마약과 도박을 일삼는 천하의 나쁜 도전자라며 힘을 더한다. 바로 옆 아름다운 풍차와 튤립 가면을 쓴, 같은 곳에서 온 도전자만이 그 어깨를 토닥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암스테르담, 거기에 홍등가라는 단어가 더해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곳은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 또는 배트맨의 고담시티와 같은 환락의 도시로 치부될 지 모른다. 우리네 프레임이 그렇다.


'암스테르담'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연관 검색어에 '홍등가'는 무조건 따라오고, 그리고 그곳에서의 경험담(?)을 나누고 묻는 사람들의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은 엉터리 답변만이 가득하다.




주재원이라는 신분으로 일 년에 몇 번 거래선을 데리고 한국을 들어갈 때, 나는 반대로 네덜란드 사람들의 프레임을 보게 된다. 한 번도 한국을 가 본 적 없는 사람들의 프레임 속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최첨단 도시, 초고속 인터넷, 나라 이름보다 유명한 제조 기업을 떠올려주기 바라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묻는 그들의 프레임은, '한국에 가면 정말 바로 개고기를 먹어야 하냐'라는 것이다. 한국에 간다 하니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문자로 물어오는 질문이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어떠한 프레임 속에 갇혀 있고 그 프레임은 어느 한 존재를 심하게 규정하고 만다.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우여곡절"


그렇다고 나는 암스테르담 홍등가를 강제로 미화할 순 없다. 그곳에서 성매매나 마리화나, 그리고 도박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 '합법적'이라고 하니 사람들의 프레임은 더 강해진다. 우리들에겐 불법인 것들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니, 뭔가 기대가 큰 모양이다.


일단 홍등가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겠다.

암스테르담 홍등가는 지도상 담광장에서 중앙역으로 이어지는 담락 거리의 동쪽에 6,500 square meter로 자리 잡은 곳이다. 암스테르담이면 전부가 홍등가일 것 같지만, 홍등가 구역은 따로 존재하고 또 이 홍등가는 다른 주요 도시들에도  존재한다. 현재는 그 수가 많이 줄어 치즈로 유명한 알크마르 (Aalkmaar)와 몇 개 도시 일부에 소규모로 남아 있고, 역시나 암스테르담 홍등가가 가장 규모가 큰 관광단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Red Light District' (RLD)이라고 더욱 유명한 이 이름은 1894년 미국 밀워키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가 네덜란드로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뉴욕의 조상이라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네덜란드를 알면 뉴욕이 보인다" 글 참조) 물론, 홍등가를 가보면 말 그대로 '홍등 (Red Light)'이 걸려있고, 밤새 그  붉은빛을 내비친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지역 이름이 'De Wallen'으로 통한다. Wallen은 wall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지역이 암스텔 강을 댐으로 막아 든 곳이고 '벽'은 바로 '댐'을 빗댄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구글 번역기에 'wallen'을 쳐보면  '헥헥거리다'라는 뜻이 나온다.)


예로부터 뱃사람과 이주민, 그리고 관광객으로 가득 찬 이곳은 그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 '성매매', '도박' 그리고 '마약'은 자유롭게 거래되고 행해지던 곳이었다. 즉, 네덜란드 사람들이 퇴폐적이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장삿속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덜란드 정부 또한 범죄의 온상이 되는 이곳을 그대로 허용했리 없다. 알면서도 자정의 움직임은 보이는데, 14세기 이전부터 시작된 이 곳의 성매매는 1578년 불법으로 간주된다. 물론, 불법으로 정한다 해도 그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공공연하게 길거리나 도박장, 숙소 등에서 성매매는  계속되어왔다.


18세기 접어들면서 홍등가는 뱃사람들의 도박장으로 변모를 하고, 성매매는 이곳을 파고들어 도박과 함께 암스테르담의 주요 수입원이 된다. 1811년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홍등가는 '합법'의 길에 들어선다.  이때 매춘부들의 건강검진이 처음으로 시행이 되었고 'Red Card'는 일종의 영업권을 보장하는 증표가 되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 후인 1911년 홍등가는 또다시 '불법'이라는 철퇴를 맞고, 1935년 즈음에는 마사지, 네일케어, 뷰티샵 등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진다.


마침내, 2000년에 접어들어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합법'화 하고 음지의 것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라이센싱'제도를 운영한다.  이때,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나이를 18세에서 21세로 개정 하고 매춘부들은 EU Citizen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한정한다. (외국인들도 예외의 경우가 있는데, 남편이 EU Citizen일 경우에 한해 성매매를 할 수 있다.)


현재 300여 개의 독립된 방으로 이루어진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는 주로 동유럽 여성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 75%의 여성들이 동유럽에서 왔다고 추정되고, 이는 경제논리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동유럽의 어느 한 나라는, 이 여성들이 돈을 벌어 자신의 고향 집을  방문하는  그때 나라의 소비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300여 개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는 이 곳, 불법과 합법을 오갔지만 인간의 욕망은 끊이지 않았던 이곳.

바로 암스테르담 홍등가이다.


"암스테르담 홍등가가 아름다운 이유"


출장자들이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난 홍등가 투어를 권유하고 직접 그들을 안내한다. 남녀노소 불문 없다.

이에, 사람들은 그들의 프레임으로 바로 '아니, 거길 왜 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걸 보라고...'라며 손사래를 친다. 결과는? 막상 가보면 그곳의, 그러니까 홍등가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네덜란드가 선진국이라고 느낀 것은 단순히 GDP가 높아서가 아니다. 암스테르담을 제외한 여러 도시들이 빈부의 격차가 크게 없이 골고루 잘 사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암스테르담을 벗어나면 각각의 도시는 그 스스로의 매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되, 전원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각각의 도시와 마을은 자연과 하나 되고 풀을 뜯는 양과 소, 그리고 지평선이 보이는 목초지와 곳곳의 운하는 왜 반 고흐가  탄생했는지를 말해준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네덜란드 곳곳. 그림을 찍는 기분이다.


그래서 혹자는 네덜란드를 여행할 때 '암스테르담'을 가장 늦게 볼 것을 권유한다. 암스테르담을 처음 보고, 암스테르만 거쳐간다면 네덜란드에 대한 프레임이 한정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전원적이고 자연친화적이고, 지평선이 뻥 뚫려 나만의 사색이 가능한 네덜란드의 매력이 순간 환락의 도시로 봉인되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네덜란드를 최종 목적지로 여행 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들이 주로 보게 되는 것은 암스테르담이고, 막상 갇힌 프레임을 가지고 오더라도 실제로 보고 나면 그 프레임이 깨지진 않지만 더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암스테르담 홍등가가 아름다운지, 왜 퇴폐적인 곳이 아닌 즐거운 곳인지 이야기를 한다.


1. 암스테르담 가장 오래된 거리


홍등가가 자리 잡은 Ouder Kerk (Old Church) 주변은 운하와 조그마한 다리, 그리고 오리와 백조들이 어우러진 어느 하나의 향연이다. 중세시대 그대로의 돌바닥과 베네치아보다 오래된 물 위의 집들이 암스테르담의 캐릭터를 확고히 한다. 그 오래된 길을 걸으며 볼 수 있는 건 환하게 웃는 매춘부들의 웃음뿐만 아니라 삐뚤빼뚤 기울어진 집과 유유자적한 보트하우스, 그리고 활기찬 관광객들의 웅성거림이다.


에펠탑이나 가우디 성당같이 그 어느 한 곳에 카메라를 들이댈 곳은 없지만, 어쩐지 눈과 마음으로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며 곳곳의 운하에서 떠다니는 개인 소유의 배 위에서 친구들과 음악을 틀고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각박하게 살아가는 한국 사람으로서 심한 질투가 날 정도다.


홍등가라 해서 성욕에 목마른 남자들만이 가득한 곳이 아닌, 유모차를 끌거나 사랑하는 연인이 손잡고 오붓하게 걷는 거리라는 것을 보면 암스테르담 홍등가에 대한 오해는 풀려야 함이 마땅하고, 퇴폐적인 곳이 아닌 역사의 추억을 간직한 아름다운 거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참고로, 수 백개의 홍등가 안에는 '청등'도 존재한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러분의 그 상상이 맞다고 헤아려본다.


걷다보면 퇴폐보다는 낭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2. 담광장과 중앙역을 잇는 담락 거리


네덜란드 왕궁이 자리 잡은 담광장에서 중앙역까지 이어지는 약 1km의 구간은 아마 한국 사람에게는 가장 유명한 곳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네덜란드는 하루 코스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둘러보는 곳이 담광장 근처 담락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덜란드 관광을 검색해보면 수 많은 블로그에 담락 거리에서 먹은 감자튀김과 홍등가 내용이 만연하다.


네덜란드의 경제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행정 수도는 헤이그다. 고로, 왕과 왕비는 헤이그에 머무르고 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왕궁은 주요 국빈 방문용으로 쓰인다. 네덜란드 왕궁을 마주하고 있는 2차 대전 희생자 위령탑은 담락 거리의 초입에서 관광지의 역할을 다한다.



담광장과 담락 거리가 가장 눈에 띄고 아름다울 때는 Kermis (축제일에 들어서는 장을 의미하는 말로, 네덜란드에서는 왕의 날이나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에 이동식 놀이기구가 들어선다. 이 규모가 생각보다 대단해서 도심 속 장관을 연출한다.)가 들어설 때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런던아이 안 부러울 정도다. 사실, 네덜란드는 산이 없고 지반이 약해 높은 건물이 없는데, 그나마 네덜란드의 야경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때가 바로 이 때다.


만약 당신이 네덜란드에 여행 와서 이 Kermis를 보고, 그 관람차에 몸을 싣는다면 그 누구보다 행운을 맞이한 사람이라고 해주고 싶다.


담광장의 Kermis 이동식이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중앙역 앞 핫스팟. 네덜란드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3. 퇴폐적이기 보다는 유쾌한 라이브쇼


네덜란드 홍등가의 라이브 섹스쇼는 유흥업소가 아닌 '극장'으로 분류된다. 네덜란드 대법원의 판결이니 그러려니 해야 한다. 국회에서도 유흥업소인지 아니면 극장인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최종 '극장'으로 분류되면서 라이브쇼 오너들은 6%의 부가세만 내면 되게 되었다.


실제로 라이브쇼를 보게 되면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커플의 섹스와 여성의 적나라한 스트립쇼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현실을 혼란케 한다. 다만, 그 향연이 기대(?)와는 다르게 매우 유쾌하다는 것이다. 퇴폐적이지 않고 유쾌할 수 있음은 바로 관객 참여의 시간을 겸비한, 철저히 관광객 맞춤 쇼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무대 위로 불려 올라가 강남스타일 댄스를 추며 스트립걸과 호흡을 함께한 경험이 있고, 여성들은 남자 모델의 옷을 벗기며 비명을 지르고, 온 관객이 하나 되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연출한다.

(친구들 단위 또는 혼자 오는 여성 관객도 많다. 그러니 라이브쇼는 문화라 생각하고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 꼭 한 번 관람하는 것을 권유한다.)


어쩌면 퇴폐적인 것은 사람들의 본능과 본질을 숨기려 하는 가식에서 나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외에도, 암스테르담 홍등가는 치안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손꼽힌다.

홍등가 사이사이를 다니다 보면, 말을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순찰하는 경찰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아예 홍등가 구역에 커다란 경찰서가 위치해있다. 밤사이 돌아다녀도 위험이 덜하다. (물론,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이야기이니 안전은 언제나 각별히 챙겨야 한다.)


더불어 이어지는 콘돔 샵과 섹스숍 등을 오가다 보면 처음엔 부끄러움을 마주하지만 이내 호기심과 신기함의 발동이 걸려 순진무구한 눈빛과 얼굴로  이런저런 물품들을 만지고 자세히 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을 좀 더 솔직하게 하고 활기차게 하며 암스테르담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암스테르담 홍등가의 밤은 어느 누구의 낮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지도.


PS

마침내 가면 속 진짜 얼굴이 밝혀지고 사람들의 탄성이 나온다. 이전엔 몰랐던 매력을 깨닫고 환락만 있는 곳이 아닌, 낭만과 사랑 그리고 역사와 스토리에 유쾌한 환락이 더불어 있다는 것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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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 거리 가장 유명한 라이브쇼 극장. 빨간집이란 이름의 그곳은 코끼리 캐릭터가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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