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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bi Apr 15. 2024

#05.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제발!

집 고치는 데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 거였어?

집을 사기로 결정한 이후, 내 머릿속에는 온통 '리모델링'밖에 없었다. 유명한 셀프인테리어 카페 가입부터 시작해서 한옥리모델링 키워드로 검색되는 모든 정보를 살펴봤다. 구옥 리모델링 업체부터 하나씩 만나며 미팅을 시작했다. 보통 공사는 짧게는 2개월, 보통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몇개월만에 건물 하나 올리는 대한민국에서 이 작은 집 하나 고치는 데 그렇게 시간이 걸린다고? 싶었는데, 공부하면서 보니 그럴만했다. 이건 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집을 새로 짓는 거라 봐도 무관했기 때문. 오래된 나무 기둥과 골조를 빼두고는 다 허물고 새로 지어야 했다. 이러면 차라리 집을 새로 짓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신축도 알아봤다. 집을 허무는 것부터가 돈이고, 시간이었다. 


휴대폰 사진첩을 가득 채운 시공 사례들. 이때는 스크린캡처만 하고 살았다.


전화 통화부터 실측, 인터넷 문의 등 연락이 닿는 업체에 수없이 문의를 넣었다. 이것 저것 묻고 견적을 받으며 조금씩 지식이 쌓였다. 아파트 인테리어 경험을 들먹인 내가 무척 귀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파트는 바닥도, 벽도, 천장도 있지 않은가! 내가 고칠 집은 벽도, 천장도, 바닥부터 손을 봐야 했다. 


계속 살아야 할 집을 고친다는 것

원래 생각했던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나의 주머니는 한없이 얇고 가벼운데, 그 예산안에서 살 만한 집을 만들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업체에 맡기지 않고, 작업자를 직접 섭외하는 방식, 일명 셀프인테리어도 생각해봤다. 아파트였다면 가능했을 것 같은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를 시골집은 그런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이 집은 내가 잠시 잠시 들러 쉬는 집이 아니고, 계속 살아야 할 집이었다. 우리 두 고양이들이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나야 할 편안한 보금자리여야 했다. 돈을 아껴야 했지만,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 했다. 


온갖 키워드를 넣어 블로그, SNS 등을 샅샅이 뒤졌다. 어떤 업체와 함께 공사할 수 있을까. 너무 거리가 먼 곳은 작업자들의 숙식비가 붙어 그만큼 비용이 증가했다. 주변 업체들과 공사하려니 경험도, 사용하는 자재들도 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없이 편한 아파트를 두고 내가 대체 무슨 짓을...?

공사 업체를 알아보면서 동시에 보관 이사도 함께 알아봤다. 서울집을 전세 주고 나와야 하는 일정과 공사 완료 일정이 맞춰질 수 없었으니까. 다들 공사에 3개월 시간이 걸린다고 했고, 어쨌든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사비를 주려면 전세금을 써야 했다. 자금 여유 없이 이주와 집고치기를 하려니 일정도, 마음도 모든 것이 팍팍했다. 짐 보관료는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대충 하루 7천원~8천원 선. 하지만 이사를 두 번 해야 하는 거라 이사비용은 그만큼 많아졌다. 보관이사 비용만 대충 6백만원, 거기에 잠시 거주할 공간 임대료까지 포함하면 거의 천만원 돈이 들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우리가 살던 아파트


하지만 우리에게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를 데리고 단기 거주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집주인들이 반려동물은 금지하고 있었으니까. 그 마음이 이해되지만 당장 갈 곳을 찾을 수 없으니 그것도 난감했다. 부모님 댁에 잠시 얹어살까 싶었지만, 동물과 살아보지 못한 부모님에게도, 낯선 사람과 적응해야 하는 두 고양이에게도 서로에게 못할 짓이었다. 리모델링 업체, 보관이사, 단기거주 공간 등을 알아보면서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이 찾아왔다. 4년 전에 인테리어 했지만 여전히 하얗고 깨끗한 서울 아파트, 탑층이어서 조금 춥고 더웠지만 한없이 조용하고 뷰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 삶에 딱 맞춰진 공간이라 더없이 부족함이 없었다. 한참 춥던 겨울, 오들오들 떨면서 씻어야 하는 부모님집과 달리 서울 아파트는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벌레 걱정 없고, 치안 좋고, 편안한 이 작고 하얀 아파트를 두고 내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건가...!


헌집 드릴 테니, 새집 주실 분...

그날도 따뜻한 서울 아파트 침대에 배깔고 누워서 인테리어업체 폭풍 검색 중이었다. 주말 동안 리스트 취합하고 주중에 전화 돌려 견적받는 일상을 3주째 보내다가, '한옥 서까래 단열'이라는 키워드로 한 업체를 발견했다. 낡은 한옥 고쳐본 경험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자재 사용이나 마감이 나쁘지 않았다. 공사 과정도 블로그에 사진을 다 올려 확인할 수 있었고, 사장님의 '단열 강조' 화법에 눈이 번쩍했다. 지역도 그리 멀지 않았다. 여기 해볼만 하겠다! 느낌이 왔다.


모든 일에는 인연이 있는 걸까. 사장님과 미팅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장님과 우리집을 고쳐가겠구나 라는 생각. 공사를 끝내고 지금 돌이켜보면, 이 공사가 100% 마음에 흡족했던 건 아니다. 이렇게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어느 누구와 공사를 했더라도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 수는 없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다시 되돌아가 선택을 하더라도 이 업체를 선택할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 사장님과 공사를 한 덕에 보관이사 없이 바로 이사올 수 있었다. 작업 인력을 두 배로 투입하고, 주말 없이 공사를 한 덕에(시골이라 가능했다...) 나의 이사 일정을 맞춰주신 것. 아마도 그만큼 다양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일 거고. 덕분에 우리 고양이들은 한번만 이사할 수 있었다.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해서 다시는 이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양이 이사는 번외로 써야겠다. 억울해서(?) 기록으로 꼭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사장님은 모든 공사 비용을 인건비, 자재비 등 세분화시켜서 견적을 내주셨고, 그 안에서 자재는 내가 선택했다. 거의 모든 걸 내가 다 선택하고, 전구는 물론이고 우수관까지 꽤 많은 걸 직접 사다 나르거나 주문했다. 한없이 예쁘고 좋은 걸 선택하고 싶은 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고, 이 집에 나의 피땀눈물을 갈아 넣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집고치기를 시작했다. 귀촌을 결심하고 2달 반 정도 지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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