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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bi Apr 22. 2024

#06. 100년 된 집을 고친다는 건...

수명을 담보로 집고치기

들뜬 마음으로 드디어 집공사를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절반은 다 한 거라며 스스로 기특해 하고 있을 무렵, 철거를 시작한 지 1시간만에 사장님께 전화가 온다. 


"이거 공사 일정이 길어지겠는데요?!" 


천장을 걷어내 보니 대들보가 부러져 있단다. 작은 서까래 하나 부러진 정도면 보수 작업하면서 철거를 진행할 수 있지만, 대들보가 부러진 건 위험한 상황이었다. 퇴근하고 가서 보니, 집을 가로지르는 큰 기둥이 부러져 있었고, 그래서 그 부분 지붕이 푹 꺼져 있었다. 이 나무 기둥이 온 집을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숙련된 전문가들의 손이 필요하다고 한다. 앞이 깜깜했다. 저 나무를 갈아치우려면 돈이 얼마나 더 드는 걸까, 시간은 얼마나 더 드는 걸까. 


철거 1시간만에 발견한 부러진 대들보. 저걸 보는 내 마음도 함께 부서짐.


당연히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음에도 직접 마주하니 달랐다. 원래부터 걱정 근심을 이고지고 사는 스타일인데 집을 고치다보니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철렁였다. 의연하자고,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다듬었다. 철거부터 시작된 공사, 그후 매일같이 다양한 변수가 나를 맞이해줬다. 오수관 누수, 지붕 수평, 바닥 꺼짐 등등. 그리고 순진하게 '집'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던 안일함완전히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철거 과정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군데군데 보강 설치
부서진 대들보 대신 새롭게 넣은 나무 기둥


집은 '집 안'이 다가 아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집은 '집 안'이었다.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집'이라는 건 그 내부 공간이었던 거다. 보통 인테리어를 하는 공간 그러니까 집구조와 바닥, 벽지를 무엇으로 할지는 열심히 검색했지만 집 주변 우수관을 어떻게 묻어야 할지, 대문은 무엇으로 할지, 대문부터 현관까지는 어떻게 길을 놓을 건지, 집 주변은 어떤 자재로 마무리를 할 건지 등은 고민하지 못했다. 처음이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당연함을 핑계로 집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했다. 업체에 다 맡겨도 되겠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알아야 고장이 나더라도 고칠 수 있고, 공사가 잘 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그 시절에는 눈만 뜨고 있으면 검색하고 검색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집을 고쳤는지, 이런 집은 어떻게 고치는 건지 찾아보고 뒤져봤다. 유명 인테리어 까페부터, 오*의집,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핀터레스트, 스테이 숙박업 플랫폼, 온갖 인테리어 업체 포트폴리오까지. 


기존 오수관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새로 공사. 오수관 공사 전 지나가는 길 표시
이게 과연 집이 될까...싶었던 나날들


수많은 의심과 집착으로 보낸 시간

원래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모조리 걱정하고 나서야 잠에 들고, 꿈에서도 그 걱정을 또 걱정한다.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건 어느 순간 걱정으로 고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은 내가 살아야 할 곳이었다. 계속 생각하고, 집착 수준으로 매달렸다. 하루 공사를 보고 걱정하며 잠들었다. 꿈에서 공사하고, 꿈에서 미팅했다. 꿈에서 집이 무너지기도 했고,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른 공간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온갖 걱정에 뜬눈으로 새벽을 보내기도 했다. 


'단열 자재가 이게 들어가는 게 맞나. 더 사양 높고 좋은 걸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시멘트 미장이 마르지 않으면 어쩌나. 지붕에서 틈이 생겨 비가 새면 어쩌나. 공사 잘못하면 쥐들이 천장에서 우다다한다는데. 어제 깔았던 배관이 제대로 들어갔나, 한번 더 확인했어야 하나. 아까 보고 왔던 그 치수가 맞을까...' 


공사 일정은 촉박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더뎠다. 공사 일정이 길어지면 내게 먼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대체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런 고민을 사서, 스스로 하고 있는 걸까.


(왼쪽) 바닥이 꺼진 자리를 어떻게 매워야 하나 고민하던 시간 (오른쪽) 기둥 아래쪽이 삭아서 새 기둥으로 덧댄 모습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집

집을 살 때까지만 해도 한번 고쳐졌던 집이었던지라 언제 지은 집인지 알 수 없었다. 막상 철거하려 천장을 드러내니, 대들보에 경신 2월 30일에 상량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바로 안 건 아니고 엄청나게 검색해서 알았다...) 경신은 1920년과 1980년이 있는데, 1980년이라 하기에는 이 집 건축물대장 자체가 1945년에 등록되어 있다. 전쟁 이후 일괄 등록된 것 같으니, 아마도 이 집은 1920년에 지어진 집일 것이라 추측했다. 


1920년이라니...! 100년도 전에 이런 집이 지어졌다니 갑자기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 나무들이 100년 넘게 이 집을 이고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허물지 않길 잘했다. 새집을 짓지 않기로 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2월 30일이라니..? 조금 찾아보니 1920년은 윤년이었고, 그래서 음력 2월 30일이 있고, 이걸 양력으로 하면 4월 18일. 그러니까 1920년 4월 18일에 상량을 했던 모양이다. 양지바른 너른 땅에 좋은 봄날, 이 새집에서 가정이 화목하고 평화롭길 바랐겠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켜켜이 시간이 쌓여 나도 이 집의 시간에 한 축을 보탠다고 생각하니 지금 내가 집을 고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이 집의 시간에서는 너무 ‘순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100년 넘게 이 터에서 자리잡은 집이 몇십일의 공사 기간을 못 버텨낼까 싶었고. 나는 가늠할 수 없는 1920년부터의 시간을 생각하니, 집을 다듬어가는 이 시간도 이전의 시간들이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자 잘 모르지만, 경신 2월 30일은 겨우 읽었다. 가지런한 서까래.


결국 좋은 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으로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30분씩 집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는 질퍽한 마당을 걷기도 했고, 가만히 집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살아갈 삶을 상상하고 상상했다.      


이곳에서의 삶을 생각하고 생각하며 지낸 시간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치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고양이들 응가를 치워주고, 물을 갈아준다. 마당에 나와 잡초를 뽑고, 밤새 채소가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보고, 병에 걸리거나 아픈 곳은 없는지 돌봐주고. 마당을 걸으며 화단에 핀 꽃을 보고, 산을 보고, 좋은 공기를 마시고, 또 힘을 얻고. 그렇게 살아야지.


아직 아무것도 없는, 심란하기 그지 없는 공사 현장에서 매일 아침마다 내가 살아갈 삶을 상상하고 생각했다. 그 시간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이 그렇게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흙을 밟으며 하늘을 볼 수 있는 삶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시간이 소중했다. 아침마다 집을 거닐며, 우리의 꿈과 소망이 이 집의 벽돌 한 장, 나무 한 조각이 되길 기도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집이 고쳐졌고, 이사할 날이 다가왔다. 귀촌을 결심한 지 4달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전 05화 #05.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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