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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원 Feb 19. 2016

벤또사의 재회

로그로뇨로 되돌아 가 배낭과 신발을 버리다

[7.26 토요일 / 9일째 걷는중]

바오로! 어디있다 이제 나타난거야?

비아나의 축제, 로그로뇨에서의 도심탐방, 그리고 이 날 나바르레떼에서 다시 로그로뇨로 되돌아가 배낭과 신발을 새로 사는 바람에 예정보다 이틀 정도 뒤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 덕분에 보고 싶었던 소르사 할머니 부부와 벤또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오로는 내 세례명이다)


나바르레떼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가리라 예상했던 이스라엘을 이 곳 수퍼마켓에서 아주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뻬르돈고개에서 두시간이나 기다려 주었던 그 이스라엘을 말이다. 아침 일찍 로그로뇨로 되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다가 들른 수퍼마켓에 그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끄레덴시알(Credencial del Peregrino ; 순례자 증명서 혹은 순례자 여권)을 내밀더니 세요(Sello ; 순례길 곳곳의 알베르게, 바, 레스토랑 등에서 순례자 증명서에 찍어주는 스탬프)를 찍어달란다. 내 이메일을 적어주니 자신도 나의 끄레덴시알에 이메일 주소와 작은 그림을 그려준다.

이후 까미노를 마칠 때까지 이스라엘은 더이상 만날 수 없었다.

나바르레떼에서 모델급의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로그로뇨로 되돌아 갔다. 알베르게의 앙헬 아저씨가 로그로뇨의 데카트론(창고형 아웃도어 매장)에 가면 부탄가스와 아웃도어용품들을 살 수 있을거라고 해서다. 지도어플을 동원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데카트론을 무사히 찾아냈다.

스페인의 국민브랜드 같은 께추아(Quechua)의 신발과 배낭을 샀다. 그리고 첫날부터 그렇게 찾아 헤매던 휴대용 부탄가스를 드디어 장만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버너와 호환이 되지 않아서 버너도 하나 샀다. 이제 드디어 계획했던 스페인에서의 비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쉽지만 그동안 내 발에 꼭 붙어서 큰 물집 하나를 선물해 준 신발과 너무 작아서 음식을 사면 담을 곳이 없었던 38리터짜리 배낭은 데카트론의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보내준 배낭이었는데.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다시 버스를 이용하여 나바르레떼로 되돌아 가 걷기 시작했다.

나바르레떼를 벗어나는 길목의 공동묘지 앞에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그걸 다시 화폭에 담고 있는 화가를 만났다. 까미노를 그림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부러워 했는데 며칠 후 산후안 데 오르테가에서 까미노 곳곳을 그림에 담으며 걷고 있는 아일랜드의 두 여류화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벤또사(Ventosa)의 알베르게(Albergue San Saturnino)에서 뜻밖에도 "바오로!"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소르사 할머니 부부였다. 맨발로 뛰어나오신 할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이틀은 빨리 갔어야 할 사람이 뜬금없이 순례자들이 잘 머물지도 않는 작은 마을에서 나타났으니 반가울 법도 하다. 나 역시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벤또사에서 소르사 할머니와의 뜻하지 않은 재회는 부르고스에서도 이어지게 된다. 한국과 이탈리아에 떨어져 살던 우리가 이 길에서 이렇게 자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벤또사는 작지만 예쁜 마을이다. 언덕 위에 위치한 산 사뚜르니노 성당에는 아이들도 꽤 보였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들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어린 아이들도 꽤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알베르게의 주방에서 나와 정호씨는 오랜만에 짜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가 짜파게티를 어디서 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체일정] http://brunch.co.kr/@by17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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