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Zubiri)로
[7.19 토요일 / 둘째날]
여름철 스페인의 낮은 길다. 아침 7시에 떠오른 해가 밤 10시 무렵 지기 때문이다.
수비리에서는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어 사립 알베르게를 이용했다. 그 덕분에 밤 늦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유럽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타운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밤 10시에 소등이다.
¶론세스바예스의 아침은 분주하다. 모두들 피레네를 넘어온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걸을 길에 대한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둘째날의 아침을 시작한다. 지난 밤 성당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었는데 신부님이 순례자 숙소에 등록된 사람들의 국적을 일일이 불러주며 기도해 주셨다. 물론 한국도 거기에 껴 있었다.
론세스바예스를 출발하면 '순례자 십자가'를 지나 동화 속 마을같은 오리츠를 잠시 지난다. 오리츠 마을 중간쯤에서 서쪽의 흙길로 접어들면 평야를 지나 숲속을 오르내리는 아기자기한 길이 이어진다.
스페인 아저씨 이스라엘(알고보니 나보다 한 살 어린 친구였다)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여기 평야에서였다.
이스라엘은 나바레떼에서 마지막으로 우연히 마주치던 날까지 길의 곳곳에서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알토 델 페르돈(화해의 언덕)에서 큰 감동을 준 친구다.
오리츠베리(Aurizberri)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 돌로 포장된 산길을 돌아내리던 중에 한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이탈리아인들이었는데 소르사 할머니와 그녀의 수호천사 같은 할아버지였다.
할머니는 다 떨어진 샌들을 신고 절룩거리며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 역시 샌들을 신고 할머니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며 걷는다. 나 역시 피레네를 넘어온 뒤 샌들을 신고 걷던 중이었는데 노부부를 보니 엄살 피우던 생각이 나 부끄러워졌다.
잠시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두분은 수비리에서 포기할 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했고 나는 기도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을 길 위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도했다.
소르사 할머니 부부는 결국 수비리에서 포기하지 않으셨다. 앞서의 이스라엘처럼 소르사 할머니 부부와도 길 곳곳에서 마주쳤고, 그 때마다 서로가 반가움에 어찌할 줄 몰랐다.
할머니와의 첫 만남 뒤 나는 샌들을 벗고 맨발로 포석이 깔린 언덕길을 내려섰다.
아리차르떼라는 작은 산의 남쪽, 지도상에는 라란수비(Larranzubi)라고 표시된 길의 원형 교차로즈음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까지 맨발로 걸었다.
다리 앞에는 한 젊은 친구가 견과류를 까먹으며 쉬고 있었다. 독일인 청년 띨과의 첫 만남이다.
그는 까미노 중반까지 순례자들 사이에 화재가 된 인물이다. 기타 하나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즉석에서 모아진 돈으로 여행을 하는 독특한 친구였다. 노래를 썩 잘 한다.
띨은 맨발로 걸어오는 나를 보더니 굉장히 반가워하며 먹고 있던 간식들을 건낸다. 자신도 그 언덕길을 맨발로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까미노를 맨발로 걸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지 않을까?" 라며 신나했다.
소르사 할머니 부부와는 라란수비의 도로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헤어졌다. 할머니는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며 "이탈리아 오면 꼭 연락해야해!" 라고 당부하셨다. 자신과 찍은 사진도 꼭 보내달라고 부탁하셨는데 까미노 이후 할머니께 보내드린 메일은 배달이 되지 않고 되돌아왔다.
그렇게 한적한 숲길을 오르내리며 수비리(Zubiri)에 도착하니 마을입구 다리 위에 띨이 망고를 먹으며 쉬고 있다. 소르사 할머니 부부는 수비리까지 걷지 못하고 중간에 있는 마을에서 숙소를 잡은 모양이었다.
수비리에서는 사립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었다. 공립 알베르게와 숙박비 차이가 꽤 났지만 공립 알베르게에 자리가 하나밖에 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을 때, 주위의 모든 것들이 신비롭게도 나를 이 길로 보내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었다. 그 때 결정적으로 함께 가자고 서로를 꼬득였던 친구가 있다. 함께 여행잡지를 꿈꾸고 실제로 'The Road'라는 잡지를 창간까지 했던 소울메이트 변정호씨다.
출발과 도착을 함께 했지만 까미노 위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정호씨는 라면스프를 준비해 왔는데 그게 까미노 내내 인기였다. 쌀은 엉망인 스페인이었지만 라면스프는 다양한 요리를 우리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 주는 마법의 가루 같았다.
수비리에 도착해서 우리는 라면스프를 이용한 요리를 해먹었다. 면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수퍼마켓에는 다양한 면들이 존재했다. 우리가 선택한 면은 스파게티, 익는데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라면국물과 어울리는 맛이 괜찮았다. 아직 고향의 맛이 덜 그리운 까미노 초반이었지만 오랜만에 먹는 맵고 짠 라면국물은 지친 몸과 맘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식사 후 수비리의 밤거리를 혼자 돌아다녀 본다. 다리 밑에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보기도 하고 골목 끝에 위치한 광장의 밤도 만끽해 본다. 물론 밤 10시가 넘었지만 여전히 하늘엔 노을빛이 남아 있었다.
여름철 스페인의 밤은 늦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