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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y 06. 2019

중국의 제주, 따리 (Dali)

중국 윈난 여행


한 달 살기 : 따리 & 베이징/상하이


제주 한 달 살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

무언가 드라마 속 장소처럼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와 결정이 이뤄지는 공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울 수 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반짝이는 햇살을 느낄 수 있는 곳.

내가 이번 윈난 여행 중 따리에서 느낀 인상들 중 하나다.



중국 윈난에서도 많은 현을 지니고 있는 중소 도시 따리.

이 곳으로 중국 각지의 여행자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마치 한때 우리 나라의 제주도처럼.

자신만의 속도와 관점의 삶을 찾아서, 외부의 시선에 잘 맞춰진 자신의 삶인지 타인의 삶인지 모를 일상에서 빠져 나와,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정착하고 있는 곳.


그렇게 따리를 여행하러 온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따리를 집과 같이 느끼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짐을 싸러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 갔다가 큰 캐리어와 함께 돌아 온다.

많은 이들이 이런 과정을 겪으며 하나 둘 정착하고 있는 곳.

이런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는 곳.



나 역시 이 곳에서 비슷한 스토리를 지닌 친구들을 만났다.




베이징 출신의 Cathy

여행 중 만난 친구들 중에서 내겐 지켜보는 것이 가장 흥미진진한 친구였다. 그만큼 마음이 가장 잘 통하고 맞는 친구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그녀는 따리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가장 드라마틱한 삶의 변화 과정을 거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베이징에서 소위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회사에 근무하는 좋은 직업을 지닌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나와 만나기 열흘 전,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정하고 회사를 그만 둔 당일 밤에 바로 따리로 날아온 친구였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드라마틱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는 따리에서 커피 맛으로 유명한 한 까페의 바에 앉아 있다가 중국 남동부 관광 도시 샤먼에서 온 여행자 Yezi를 만난다. Yezi는 샤먼이 여행 비수기인 시간을 활용해 여행을 일상적으로 해오고 있는 여행 경험이 많고 여러 가지에서 취향이 확실한 큰 언니같은 사람이었다. 둘은 대화를 하며 마음이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Yezi가 머물고 있는 아파트의 빈 방으로 숙소를 옮기기로 한다. 어쩌면 Cathy가 이 곳으로 숙소를 옮기지 않았다면, 그녀의 다음 여정은 180도 다른 얘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파트의 주인 역시 베이징에서 생활하다가 몇 년 전 따리에 정착한 젊은 부부였다. 그들은 여행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세밀히 이해할 수 있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생활을 추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함께 논의하며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회색빛 바쁜 도시 베이징에서 벗어나 따리의 느긋하고 밝은 여유로운 하루하루에 Cathy는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이 곳에서 지내면 적어도 베이징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녀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던 야외 까페와 당시 우리 눈 앞의 풍경

그녀가 나와 함께 얘기를 나누었던 사시 마을을 여행하는 동안, Cathy는 호스트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꽤 깊게 고민하고 나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적어도 이 곳에서 몇 달은 더 머물게 된다는 얘기이니, 그녀에겐 낯설고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얘기하는 베이징의 생할과 그녀의 심경 변화가 나, 그리고 보통의 젊은 한국인들이 고민하는 것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았던지라 손뼉소리와 맞장구가 계속해서 터져 나온 공감의 시간들이었다.

그녀보다 조금 더 앞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나는 내가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나의 생각과 경험들을 조심스레 꺼내 놓아 보기도 했다.


그녀는 따리로 돌아가서 연락을 해왔다.

자기 자신에게 기회를 줘보고 싶다고.

지금은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따라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그녀는 이 곳 따리에서 정착해서 할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일들을 함께 배워 나가고 실습해 보고 있다. 이 곳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때로는 깨뜨리고 때로는 배워 가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이 새로운 생활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두며 정해지지 않았지만 매일 새롭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 가고 있다.



역시 베이징의 그녀, Kuang

내가 Kuang을 만난 곳도 바로 그 따리 까페의 바에서였다. 이렇게 얘기하니, 이 곳이 마치 예전 미국 시트콤 < 프렌즈 >의 그 'Central Perk'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그 곳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훌륭한 커피를 찾기 위해 모여 드는 흥미진진한 곳인 것은 분명했다. 감사하게도 이 곳에서 참 많은 중국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 역시 베이징에서 온 2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또 이런 상투적인 스토리라니!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그녀의 완벽에 가까운 유창한 영어는 미국 유학 덕분이었다. 그녀는 무려 예일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그녀에게는 너무나 뻔한 삶의 다음 단계인 하버드 대학원 진학이 싫어서 스위스에서 석사 과정을 한 후 오랜만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건축 사무소에서 낮이고 밤이고 일하고 있는 전형적인 대도시 직장인이었다. 남편 또한 중국의 잘 나가는 Tech 스타트업의 엔지니어였다. 꽤 뻔하지만 보편적으로 선망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6개월 만에 제대로 처음 쉬어 보는 그녀는 이미 그 기간 동안 베이징 생활이 너무나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Kuang은 애초에 따리로 이주하는 것을 희망사항에 두고 휴가를 온 친구였다. 그녀는 이 곳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했다고,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다고 했다. 이 곳에 살게 된다면, 저 햇살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생활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며칠 동안 Cathy, Yezi, 까페 바리스타 친구들과 함께 따리의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던 Kuang은 환하게 웃으며 다니는 우리를 한참 보다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건넸다.

"넌 늘 웃고 있는 것 같아. 니가 이 순간을 진짜 행복해 하며 즐기고 있는 것이 느껴져.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난 사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드러내는 것에도 익숙치 않지만, 늘 긴장 속에 지내온 것 같아.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어. 너희가 부럽고 참 좋아 보인다."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던 다른 이유 하나도 조심스레 꺼내 놓았다.

"난 여전히 부모님의 영향력 안에 있는 것 같아. 그게 늘 나에게 긴장과 부담을 주고 있어. 내 의지대로 결혼도 했고 원하는 직장도 가졌고 늘 내 주관을 따라서 주도적으로 선택하지만, 부모님은 내게 단 한 번도 잘 했다거나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이나 응원을 해주신 적이 없어. 늘 더 잘 해야 한다거나 저 옆의 다른 사람들만큼 잘 할 수 없냐고, 좋은 대학을 나온 만큼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없는 거냐고 하셔 지금도."


나는 너무 놀라서 말 그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 보았다.

"그렇게 제일 좋은 학교와 대학원을 나오고, 젊은 나이에 경제적으로 완벽히 자립해서 이렇게 멋지게 살아 가고 있는데도?"

"사실 아이비리그 대학을 간 것도,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정해진 코스에 따른 거였어. 어렸을 때부터 해외 유학을 위해 코칭해줄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따로 있었고 나는 부모님이 계획해주신 걸 따르기만 하면 됐었어. 그리고 지금도 부모님은 나와의 관계를 철저히 give & take의 관계로 여기고 계셔. 그래서 늘 더 잘 해야 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래서 마음을 놓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늘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있는 것 같아."

그녀가 눈물을 짓는다. 하아아...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 것일지 조금은 짐작이 되는 것 같아, 갑자기 마음에 돌덩이가 앉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그녀의 눈물이 쓰리게 느껴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그 쉽지 않은,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 여기서도 듣게 될 줄이야! 무엇보다 드라마 <SKY 캐슬>을 보진 않았지만, 뭔가 그런 얘기를 바로 현실에서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 교육제도,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맞물린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여기는, 너무 좋다! 나 꼭 여기에서 살고 싶어. 내 남편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겠지만, 돌아가자마자 설득해서 곧 함께 이 곳에 정착하고 싶어 꼭!"

어쩌면 그녀에게 따리로의 이주는 단순히 각박한 베이징 생활을 탈출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인생에서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쫓아서 '선언'과 같은 결정을 해보고 그 마음을 따라가 보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주체적인 행복을 간절하게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조금 더 편하게 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더 행복하게, 그녀만의 삶을 따라서!




내가 따리에서 만난 이들이 이 둘만은 아니었다.

이미 이 곳에 정착해서 지내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Cathy의 호스트

윈난 북부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나는 Cathy를 따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하루를 매우 알차고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녀 숙소의 호스트이자, 이런 자생/자립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각자 중국어/영어를 전혀 할 수 없어 직접 궁금한 점들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 서글서글 선량한 웃음에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Cathy가 '너도 만나 보면 정말 좋아할 꺼야'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숙소를 두 군데 운영하며, 사람들과 독립적인 듯 가족같기도 한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 날도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to-be-따리 주민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Cathy를 따라가서 본 그의 숙소는 그 어느 곳보다 감각적인 곳이었다. 호스트도 자신만의 아트상품을 제작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차를 즐겨서 차 관련 일도 하고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안에서 누군가는 이 곳에서 농작물을 직접 재배해서 그것으로 이국적인 요리를 선보일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또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방식으로 영어를 교육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그 정제되지 않은 시끌시끌한 에너지가 나는 오히려 좋았다. 적어도, 이들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새롭고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겠다는 약간의 부러움도 들었으니 말이다.



따리의 사시마을 산골짜기 까페 주인

Cathy와 Yezi를 처음 만났던 곳은 따리 시내에서 3시간 떨어진 산골 마을 사시마을이었다. 그녀들이 근처 산골 마을 꼭대기에 맛있는 까페를 가려 한다며, 함께 할 것을 권해 가게 되었던 곳이다. 그야말로 여행자들이 따로 찾아 오지는 않을 완벽한 현지 마을 꼭대기에 딱 지리산 산골마을의 집같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곳에서 까페와 숙소를 겸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위치상의 이유로 당연히 이 곳 사람일 꺼라 생각했지만 그는 쓰촨성의 도시에 있다가 이 곳으로 몇 년 전에 이주했다고 했다. 이런 조용한 곳을 늘 찾았는데, 이 곳에 왔을 때 한 눈에 반해 자리 잡고 지내오고 있다고. 그는 그 전보다 정말 행복하며 자기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나만의 속도를 찾아서"
"모두가 따라 가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 나서"

"도시에서는 행복하지 않기에"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 특정 단어의 모음들인지!

참 닮았고, 그냥 한국에서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들이 얘기하는 자신들의 생활이, 자신들의 소망이.



사실 장소의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이 곳,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가장 자신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을 새로운 이상적인 장소를 꿈꾼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서울 내에서도 다른 동네일 수 있고, 전혀 다른 이국일 수도 있다.

내게는 최근 몇 년 간 양평이 그런 곳인 것처럼.


따리는 햇살 가득한 봄날씨와 선한 이 곳 주민들, 평안한 자연 등 많은 조건 상의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거기에 더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만한 분위기가 이미 조성되어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디서건 자신의 마음을 따라서 삶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리는 지금, 그 초기의 단계에서 사람들을 조금씩 끌어 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곳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지, 자못 궁금해졌다.


언젠가 이 곳에서 나도 주말의 Four Season Market에서 호떡이나 불고기와 같은 한국 음식을 팔면서 재미나게 지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Cathy가 알려준 따리의 어학원에서 잠시 중국어를 배우면서! :) 이렇게 외국인의 마음까지 끌어 당기는 것을 보니, 따리는 과연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는 곳이긴 한 것 같다.

무엇보다 이번에 내가 만난 친구들이 이 곳에서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그려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적어도 그들이 하는 지금의 고민과 시도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값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내게도 따리로 돌아 가는 그런 날이 생각보다 빨리 왔으면 하고 바래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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