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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인단이란 무엇인가?

[미국 헌법과 대통령 선거 시리즈 3편] 오해와 편견, 그리고 진실

by 발태모의 포랍도

11월 3일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이제 코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이라는 독특한 제도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더 문제인 것은 이 제도를 "쉽게" 설명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또 다른 오해와 편견을 낳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최근에 접한 다음과 같은 해설은 단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잘못된 설명이다.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는 헌법의 설계자들이 각 주별 선거인을 일반 유권자가 뽑고, 그렇게 선출된 선거인들이 수도에 모여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고안된 간선 제도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을 민주정이 아니라 공화정으로 여겼으며,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직선이 아니라 선거인단을 통한 간선으로 기획했다. 아직까지 이런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공공연한 반-민중, 반-민주주의 정서를 계속 승인하는 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거인단 제도 덕에 인구가 적은 주의 의견이 배제되거나 무시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선거인단 제도가 폐지되면 결국 인구가 많은 몇몇 주들이 모든 것을 좌우할 것이다.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 미국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바로 헌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헌법이 신성시된다. 따라서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헌법 기관인 선거인단이 폐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개헌을 통해 선거인단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간혹 최다 득표자가 당선에 실패하는 것과 같은 비민주적인 사태를 근절할 수 없다.


일견 옳아 보이는 이와 같은 설명들의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미국 연방 헌법 본문을 직접 참조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다룬 2조 뿐 아니라 수정헌법 12조 역시 함께 보아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도가 실제로 운용되어 온 역사와 그에 따른 정치적 지형의 변화다. 이번 글과 이어지는 두 편의 글에서 이런 점들을 상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연방헌법 2조 1항은 대통령 선거인단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각 주는 그 주의 주 의회가 정하는 규칙에 따라, 그 주가 연방 의회에 보낼 수 있는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의 총수와 같은 수의 선거인을 임명한다. 다만, 상원 의원이나 하원 의원, 또는 연방 정부 내에 위임에 의한 관직이나 유급 관직에 있는 사람은 선거인이 될 수 없다." (강조는 필자)


역순으로 하나씩 정리해보자. 먼저 선거인의 자격. 연방 의회의 일원이거나 연방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제외다. 그 외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그다음은 선거인의 수. 각 주 선거인의 수는 그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 의원 수와 하원 의원 수의 합이다. 전자는 모두 동일하게 2명씩이고, 후자는 각 주별로 인구 비례로 산출한다. 하원 의원 수가 인구 비례로 결정되는 만큼, 대통령 선거인의 수도 그에 따라 유동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하원 의원 수는 각 주의 등록된 유권자 수가 아닌 전체 인구에 따라 비례적으로 계산한다. 둘째, 하원 의원 수는 10년마다 행해지는 나라 전체의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결정한다.


건국 당시 대통령 선거인단은 총 69명. 인구가 가장 많았던 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메사츄세츠에는 각각 10명, 가장 인구가 적었던 델라웨어에는 3명의 선거인이 할당되었다. 2020년 현재 대통령 선거인단은 총 538명이며, 선거인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로 총 55명(53+2)이고, 그다음은 텍사스(38명), 뉴욕과 플로리다(각각 29명), 펜실베니아와 일리노이(각각 20명) 순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선거인 선출 방법. 선거인은 헌법이 명시하는 대로 각 "주 의회가 정하는 규칙에 따라" 임명된다. 다시 말해서, 선거인을 일반 유권자들의 선거로 뽑든, 주 의회가 선출하든, 주지사가 임명하든, 이는 전적으로 각 주의 권한, 더 정확하게 말해서 주 의회의 권한이다. 따라서 일반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는 헌법 상 의무 사항이 전혀 아니다. 아래의 표에서 보듯이, 실제로 초기 미국 역사를 보면, 일반 유권자들이 선거인 선출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경우도 많았다.

각 주 별 선거인단 선출 방법(1788-1832) | 표 출처: Michael Dubin,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s, 1788-1860


표에서 "L"은 주 의회에서 선거인을 선출하는 방법을, "PV-S"는 일반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주 전체 선거인을 선출하는 방법을, "PV-D"는 일반 유권자가 투표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선거구 별로 선거인을 선출하는 방법을 말한다. 1800년까지는 주 의회에서 선거인을 선출하는 방식이 대체로 우세했다. (첫 대통령 선거의 경우, 뉴욕 주는 할당된 8명의 선거인 지명에 실패해서 선거를 아예 치르지 못했으며, 로드 아일랜드와 노쓰 캐롤라이나는 아직 헌법을 비준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1800년대 들어서면서, 일반 유권자의 투표 방식이 점점 더 각광을 받았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1832년 이후에는 사우쓰 캐롤라이나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일반 유권자의 투표로 주 전체의 선거인을 선출하게 되었다.


각 주별로 선출된 선거인들은 어떻게 대통령을 뽑는 것일까? 연방 헌법 2조 1항의 이어지는 대목을 보자.


"선거인들은 각기 자기 주에서 회합하여 비밀 투표에 의하여 2 인을 지지하는 투표권을 행사하되, 그중 적어도 1인은 자기와 동일한 주의 주민이 아니어야 한다. 선거인들은 모든 득표자들의 명부와 각 득표자의 득표수를 기재한 표를 작성하여 서명하고 증명을 받은 다음, 봉인하여 연방 정부 소재지의 상원 의장 앞으로 보낸다. 상원 의장은 상원 의원 및 하원 의원들 앞에서 모든 증명서를 개봉하고 개표에 돌입해야 한다. 최고 득표자의 득표수가 선거인단 총수의 과반수가 되면, 그 득표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과반수 득표자가 2인 이상이고 득표수가 같을 때는 하원이 즉시 비밀 투표로 그중 1 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에는 하원이 동일한 방법으로 최다 득표자 5명 중에서 대통령을 선출한다. 다만, 이러한 방법으로 대통령을 선거할 때에는 선거를 주 단위로 하고, 각 주마다 1표의 투표권을 가지며, 이 선거에 필요한 정족수는 전체 주의 3분의 2 이상이고, 전체 주의 과반수 찬성을 얻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어떤 경우에서나 대통령을 선출하고 난 뒤에 선거인단으로부터 최다수의 득표를 한 사람이 부통령이 된다. 다만, 최다 득표자가 2인 이상 있을 때에는 상원이 비밀 투표로 그중에서 부통령을 선출한다." (강조는 필자)


역시 주요 항목 별로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장소. 미국인들조차도 각 주의 선거인들이 어느 한 곳에 모여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으로 간혹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건국 초기도 지금도 각 주 선거인들은 개별 주에서 회합하여 투표하고, 투표용지를 상원의장에게 발송한다.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없다. 연방 헌법 입안자들에게 이점이 사실 중요했다. 그들이 바라던 것은 완벽하게 연방 의회, 연방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그 어떤 정치적 계략과 음모에 빠지지 않은 채, 공평무사하게 순전히 자신들의 양심과 지혜에 따라 자유 재량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후에 상술하겠지만, 현실에서의 선거인단 제도는 이와 같은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운용되었다.


그다음은 투표 방법. 연방 헌법에 의하면 선거인은 두 명의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어 있다. 물론 선거인 자신은 투표를 함에 있어서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를 각각 마음속으로 정해 놓았을지는 몰라도, 투표용지에 적힌 이름만 보면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선거 결과 과반수 이상을 얻은 후보 중 최다 득표자가 대통령,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보를 제외한 최다 득표자가 부통령이 되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다음 글에서 상술하겠지만, 이러한 절차 상의 이유로 1800년 선거 당시 대 혼란이 초래되었고, 결국 이를 부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수정 헌법 12조가 통과되었다)


마지막으로 2라운드 선거. 연방 헌법은 선거인단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2라운드 선거 규정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제 결정권은 연방 하원으로 넘어간다. 하원에서는 마치 연맹 규약 하의 연맹 의회에서처럼 모든 주가 인구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한 표씩 행사하게 된다. 1라운드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선거인을 할당받은 인구가 많은 주들이 유리하다면, 2라운드 연방 하원 선거에서는 인구가 적은 (그래서 선거인단 수도 적은) 주들이 상대적으로 과대 대표된다. 재미있는 점은 연방 헌법 입안자들 중 많은 이들이 대통령 선거가 대부분 2라운드까지 갈 확률이 높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대표 조지 메이슨의 경우, "스무 번 중 열아홉 번"은 결국 2라운드 선거까지 치르게 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의 통념과는 달리 인구가 적은 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연방 헌법 입안자들의 묘책은 1라운드 선거인단 선거라기보다는 바로 이와 같은 2라운드 선거였다.


여기까지 설명한 헌법 입안자들의 의도를 다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 선거인단이라는 독특한 제도는 각 주로 하여금 "재량껏" 각기 할당된 수의 선거인을 선출하도록 하고, 그렇게 선출된 선거인들이 각 주에서 따로따로 회합하여 한 선거인이 두 명의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한다. 선거인단은 아무래도 각 지역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잘 알려진 사람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기에 일반 유권자들에 비해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 취합 능력이 좋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또한 이들은 정치인들로부터의 독립성 역시 보장되니 최적의 후보를 선택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선거인단 표 중 과반수 이상을 얻은 후보가 없거나, 과반수 이상을 얻은 후보들이 같은 수를 득표한다면, 연방 하원이 "한 주 한 표" 원칙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한다.


이런 좋은 의도가 유명무실해지기 시작된 것은 1796년 선거부터다. 다시 말하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 나자마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제헌의회에서 워싱턴의 존재는 그 자체로 축복이었다. 독립전쟁의 영웅 워싱턴이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에 직접 참석하여 국난 극복에 또다시 앞장선다는 사실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국가 전체의 통합을 위한 귀중한 자산이었다. 워싱턴의 참석으로 말미암아 다른 대표들의 참석율도 덩달아 높아질 수 있었고, 헌법안 아래에 보이는 워싱턴의 서명은 원활한 비준 캠페인을 도운 촉매였다. 초대 대통령이 워싱턴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혹자는 대통령(President)이라는 직함 자체가 이미 워싱턴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가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의 의장(president)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 본다면, 워싱턴의 존재는 축복을 가장한 재앙이 아니었을까? 당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제헌의회에서는 그의 대통령 당선을 당연시했고, 예외적 인물인 그가 떠난 뒤 도래할 "정상 상황"에는 어떻게 대통령제를 잘 유지하고 어떤 방법으로 가장 공평한 선거를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치열하게 검토할 동기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주요 정당의 계보 | 사진 출처: Americanhistory.si.edu


1796년 선거부터 뚜렷하게 드러난 현상은 바로 정당의 대두였다. 연방 헌법은 정당에 대해 규정하는 바가 전무할 뿐만 아니라, 헌법의 입안자들은 대체로 정당을 공동선을 해치는 주범으로 경멸했다. 그러나 파당과 정당의 등장은 거스를 수 없는 정치 현실이었고, 주 의회를 장악한 정당은 곧바로 선거인단 제도의 설립 취지를 무력화시켰다. 선거인은 이제 정당이 선출했고, 선출된 선거인은 정당이 지명할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것을 서약했다. 이제 선거인은 정당의 대리인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인단이라는 독특한 제도는 도입된 지 10년도 채 되기 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미국 헌법과 대통령 선거 시리즈>

1편: 대통령 당선에 실패한 최다 득표자?

2편: 연방 헌법과 대통령의 탄생

3편: 대통령 선거인단이란 무엇인가?

4편: 35번의 실패?: 결선 투표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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