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열 명의 미국 정치인이 있다. 앤드류 잭슨과 존 Q. 애덤스, 새뮤얼 틸든과 루터포드 헤이스, 그로버 클리브랜드와 밴자민 해리슨,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잭슨은 애덤스와 맞붙었고, 틸든은 헤이스와, 클리브랜드는 해리슨과, 고어는 부시와, 클린턴은 트럼프와 싸웠다.
공통점은 또 하나 있다.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받은 사람이 대통령 당선에 실패한 것이다. 아래 연이은 사진들을 보면, 왼쪽에 있는 후보가 최다 득표를 받은 사람이고, 오른쪽에 있는 후보가 표를 적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다. 잭슨, 틸든, 클리브랜드, 고어, 그리고 클린턴, 모두 최다 득표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불운의 후보자들이다.
1824년 대선투표 최다득표자 앤드류 잭슨(좌)과 대통령 당선자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우)
1876년 대선투표 최다득표자 새뮤얼 틸든(좌)과 대통령 당선자 19대 대통령 루터포드 헤이스(우)
1888년 대선투표 최다득표자 글로버 클리브랜드(좌)과 대통령 당선자 23대 대통령 밴자민 해리슨(우)
2000년 대선투표 최다득표자 앨 고어(좌)과 대통령 당선자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우)
2016년 대선투표 최다득표자 힐러리 클린턴(좌)과 대통령 당선자 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우) | 이상 사진출처: 주한미대사관 외
미국 대통령 선거가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도 매번 미 대선이 있을 때마다, 미국 선거 제도가 얼마나 복잡한지, 혹은 시대에 맞지 않게 여전히 비민주적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단골로 거론되는 이야기는, 첫째, 미국 선거제도는 대통령 '직선'이 아니라 '간선'이라는 점, 둘째, 미국 선거가 때로 골치 아픈 결과를 낳는 까닭은 '대통령 선거인단'(The Electoral College)이라는 비민주적인 제도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간단히 답한다면,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우선, 미국 대통령 선거를 '간선'이라고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단번에 떠오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통령 간선 제도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선출했던 제도 혹은 유신 치하와 뒤따른 유사 군사정권 시절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했던 제도 등이기 때문이다. 1972년 한국 대통령 선거를 예로 들어 보면, 12월 15일에 먼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있었다. 총 2,359명의 대의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당선되었으며,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이들 대의원들이 대통령 후보를 추천해야 했다. 닷새의 추천 기간 동안 입후보된 사람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가 유일했고, 이튿날인 12월 23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의 투표로(투표율 100%)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득표율은 99.92%(찬성 2,357표, 기권 2표)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직선이 아니라 간선이라고 말할 때, 혹자는 미국 일반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선거인을 뽑을 뿐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마치 유신 치하 한국 유권자들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특정 대통령 후보이지 선거인이 아니다. 아래에 첨부한 2016년 대선 투표용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유권자들은 명백하게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2016년 대통령 선거 투표용지 | 사진출처: Marylandreporter.com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에게 '직접' 표를 던지는데 왜 미국 대통령 선거가 '간선'이라는 것일까? 그럼 선거인단은 누구이며, 누가 이들을 선출하는가? 이미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들에게 투표한 마당에, 선거인단이 왜 다시 투표를 한다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인단'이라는 연방헌법이 규정한 기관이 선거를 둘러싼 많은 논란의 원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복잡한 (혹은 재밌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연방헌법 조항 역시 주목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선거와 관련한 많은 문제들을 연방헌법이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은 사실상 각 주의 몫이다. 절차와 방법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선출 방법을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라고 규정하고 있는 한국 현행 헌법(67조 1항)과는 달리, 미국 연방헌법은 각 주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배당된 수의 선거인(그 주를 대표하는 연방상원의원 수와 하원의원 수의 합)을 재량껏 선출하도록 명시하고 있을 뿐 여타 중요한 절차와 방법을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일반 유권자들이 공식 선거 날로 간주되는 11월 첫째 화요일에 투표하는 행위는 연방헌법과는 무관한 일인 것이다.
이어지는 네 편의 글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의 복잡한 면모를 연방헌법과 정치사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왜 잭슨, 틸든, 클리브랜드, 고어, 클린턴이 최다 득표에 성공했음에도 당선에 실패했는지도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미리 말해 둘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낙선이 비단 선거인단 제도의 맹점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